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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Apr 28. 2022

동남아시아 3대 미친 여자..

"재밌는 이야기 들었는데 들어봐. 참고로 우린 이미 모두 미친 여자야!"

"예???"

사춘기 아이들 데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낯선 나라 와서 학교 적응시키느라 고생한 엄마들.. 영어며, 문화, 낯선 교육과정, 거기에 사춘기까지.. 아이들도 적응하기 어렵고 힘들지만, 그걸 지켜보는 엄마들도 힘들었다. 서로를 격려하고 의지하며 친해진 지인분이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동남아시아에 사는 3대 미친 여자 이야기야."

무더운 동남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이 볼 때 이해가 안 되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우리가 왜 미친 여자예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들 눈엔 그럴 수도 겠구나 싶었다.

그냥 웃고 넘겼는데 생각해보니 싱가포르인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야기구나 싶다.


동남아시아 3대 미친 여자..

1. 무덥고 비 자주 오는데 비싼 명품 가죽 가방 들고 다니는 여자  이건 해당이 안 된다.


"이별 장면에선 항상 비가 오지 ~ 열대우림 기후 속에 살고 있나 ~"

Ref의 <이별 공식>.. 신나는 리듬으로 오랫동안 좋아했던 노랫말에도 나온다..

그렇다.. 난 그 비가 자주 오는 열대우림 기후 속에 살고 있다.


일 년 내내 기온이 높고 강수량이 많은 대표적인 열대우림 기후 지역인 싱가포르..

햇빛 쨍쨍하고 무더워서, 날씨에 속아 우산을 놓고 나갔다가 낭패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만나게 되는 짧고 강렬한 비..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참 적응하기 어려운 날씨였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찾아와 시원하게 쏟아지다 한순간에 금방 그치고.. 그리고 언제 비가 왔나 싶게 다시 햇빛이 쨍쨍해지는 나라..

작은 도시국가인 이곳.. 집에서 너무 덥고 햇빛이 뜨거워 아이 데리러 가면서 더위를 걱정하며 출발했다가, 차량으로 15분 이동거리인 아이 학교 앞에선 앞이 안 보이는 폭우를 만나기도 다.


강렬한 햇빛에 의해 지표면이 가열되면서 뜨거운 공기가 위로 상승하여 발생하는 열대성 소나기인 스콜이 자주 쏟아지는 탓이다. 쏟아지는 비는 세차고 무섭게 내린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기도 해서 아이들 학교에선 번개를 조심하라고 번개 알람이 울리기도 한단다. 그러면 건물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일 년 내내 이런 날씨니 거의 매일 비를 만나면서 값비싼 가죽 가방을 들고, 신고 다니는 여자들이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이었다.

가죽 가방의 최대 적은 비로, 비에 젖게 되면 변색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선 관리가 어렵다는 뜻일 게다. 동남아시아 사람들 입장에선 이 조건에도 고가의 가죽 가방 든 여자가 이상해 보일지도..

(그런데 실제론 그런 가방 든 싱가포리언도 많다는..)


언젠가 우스갯소리로 명품 가방의 진품과 짝퉁 구분법을 들었는데, 비 오는 날 보면 바로 알 수 있다고 했다.

비 오는 날 가방 위치가 품 속이냐.. 머리 위냐에 따라 구별할 수 있다고..

이곳에서 살면 가방을 메고 다니는 게 아니라 매일 품고 다녀야 할지도..



2. 메이드 (안티 또는 헬퍼 또는 입주 가사도우미) 없이 사는 여자 우리 집엔 메이드가 없다. 그러니 미친 여자란다.


이곳에 와서 조금 놀랐던 문화가 바로 이 메이드 문화였다. 안티 또는 헬퍼라고도 불리는 입주 가사도우미인데 싱가포르 많은 가정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두 명 이상 있는 집도 있다.


인구가 적고 일할 노동력이 중요한 싱가포르에선 정부 주도로 이 메이드 제도를 관리한다고 한다.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주변 국에서 일하러 오는데,  이곳 물가 대비 저렴한 가격(대략 세금까지 포함 매달 SD$1000불 정도)으로 24시간 집에서 같이 거주하며 육아, 청소, 장보기, 요리, 노인 돌봄, 세차 등 다양한 집안일을 하는 메이드..

 

이 메이드 제도 덕분에 싱가포르 여성들은 자신의 일에 집중하며 사회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다고 한다.

아이 맡길 곳이 없어 고생하는 한국의 직장 여성들과 비교해 보면 정말 좋은 제도임이 분명하다. 어린아이들이 있는 가정이나 노인을 돌봐야 하는 가정에도 아주 큰 도움이 되는 제도다. 그래서 대부분의 가정에 메이드가 있다.


메이드 제도에 대해 알고 나서 솔직히 하루에도 여러 번 메이드 있는 집이 부러웠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여기선 당연한 듯 도움받을 수 있는 분위기니 아이 셋 키우느라 고생한 내 입장에선 싱가포르 여성들이 부럽기도 했다. 청소기 한번 돌려도 온 몸에 땀이 비 오듯이 흐르는 무더운 싱가포르니..


막내의 유치원 친구맘들은 아이가 셋이라 일이 많지 않냐며 왜 메이드 안 쓰냐고..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며 물어오기도 했다. 그들의 삶에서 메이드는 필수조건인 거 같았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메이드를 고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 그 비용도 내겐 부담스러웠다. 비용도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이 반대해서 더 이상의 미련은 접어야 했다.


사실 싱가포르에 와서 처음 메이드 존재를 알게 된 건 우연히 들어간 쇼핑몰에서였다. 지인 집에서 봤다면 첫인상이 좀 달랐을까 싶다.

 안에는 작은 규모의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우리 가족이 통로로 지나가니 가게마다 같은 티셔츠를 맞춰 입고 앉아있던 여성분들이 차례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어.. 우리 이 가게 가는 거 아닌데 왜들 일어나시지?'

아이들도 나도 괜히 미안해서 어째야 하나 싶었고 그녀들이 왜 그러는지도 궁금했다.


간판을 보니 그곳은 메이드들과 고용할 가족을 연결해주는 에이전시였고, 그녀들은 우리 가족이 메이드를 고용하러 온 줄 알고 일어나 인사를 한 것이었다.

우리가 에이전시를 찾아온 게 아님을 알게 되자, 그녀들은 마침 식사 시간이었는지 한쪽 구석 바닥에 모여 앉아 각자 싸온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처음 본 광경에 마음 아파했다. 그들을 보며 예전에 우리나라 역시 독일로 가서 고생한 광부 분들과 간호사 분들이 계셨다고 이야기해 줬지만, 멀리 집 떠나와 가족과 떨어져 이렇게 돈을 벌러 온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 자기 나라가 부유하고 일자리가 많은 잘 사는 나라면 멀리 이렇게 오겠냐고..


이곳에 와서 일하는 워커분들이 트럭 뒤 짐칸에 탄 채 도로를 달리는 모습을 보고도 너무 마음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는 아이들이었다. 넓게 보면 그들에게 일할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가족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겠지만, 그들에 대한 처우가 안타깝게 느껴진 아이들에겐 마음 아픈 모습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만약 메이드가 같이 살면 어디서 자요?" 아이가 궁금했는지 물었다.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보통은 부엌 바깥쪽 외부 베란다에 있는 창고나 창문이 없는 방공호 같은 곳에서 지낸다고 들었어. 작은 화장실이 외부 베란다에 하나 더 있는 이유도 메이드를 위한 거고.."

내 설명에 아이들은 더 슬퍼했다. 얼마나 더운데 창문도 없는 공간에서 지낼 수 있냐며 너무 속상해했다.

"방을 하나 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메이드는 절대 반대예요."

아이구나.. 여기 렌트비가 얼마나 비싼데.. 우린 메이드 없이 살아야겠구나..


물론 우린 맞벌이 상황도 아니고 아이들이 아주 어린것도 아니라 메이드의 도움이 절실하진 않았지만, 그들의 노동력을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사서, 유용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경제적인 개념보다 같은 사람으로서 그들의 삶의 환경을 먼저 고려하고 열악한 환경을 마음 아파해주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예뻐 보였다.


그 뒤로 "메이드가 있으면 이럴 때 참 좋을 텐데~" 하고 푸념하는 내게.. 아이들은 메이드는 절대 반대라며, 자기들이 돕겠다고 나서서 청소기도 돌려주고 빨래도 널고, 서 정리하는 일까지 다 도와줬다. 고맙게도..


그 다음부터 왜 메이드 안 쓰냐고 누가 물으면 우리 집엔 헬퍼가 많다고 이야기 한다.



3. 더운데 불 앞에서 삼시세끼 밥하는 여자 - 어쩌다 보니 이것도 대부분 해당이 된다. 미친 여자 확정이다.


처음 싱가포르에 와서 남편이 구한 집을 보고 많이 놀랬었다.

콘도 카드키가 있어야 우리 층 불이 켜지는 엘리베이터부터.. 커다란 수영장이 있는 거..

벌레가 앉아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천장과 수많은 에어컨 수..

에어컨이 방마다 있고 거실엔 무려 2대가 있었다.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3달에 한 번은 무조건 에어컨 청소를 해야 하고 그 영수증을 주인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정말 무더운 나라는 다르구나 싶었는데 아뿔싸.. 부엌엔 에어컨이 없었다.

제일 더운 곳인데 왜 없지 싶은 마음에 돌아보니 어째 거실 크기나 방 개수 대비 부엌이 너무 작았다.

게다가 냉장고 크기도 너무 작았다. 왜지? 이렇게 더운 날씨니 냉장고는 제일 큰 사이즈가 필요할 거 같은데..


나중에 알게 되었다. 무더운 나라 싱가포르는 집에서 요리해 먹기보다 나가서 사 먹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호커센터나 푸드코트가 집 나서면 근처 곳곳에 있고,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열려 있으며 다양한 음식을 골라 저렴한 가격으로 사 먹을 수 있다. 굳이 더운데 집에서 매끼 밥하는 문화가 아니었던 거다.


실제로 요리 한번 하면 한증막이 따로 없을 정도가 되는 부엌..

집밥을 좋아하고 한식을 주로 해 먹는 우린 냉장고 두 대가 필수였다. 급하게 냉장고부터 구해야 했는데, 나중에 우리와 친해진 부동산 에이전트 J는 이 상황을 재밌어하며 자기가 만난 한국인은 다 그랬다고.. 모두 냉장고가 2대 이상이었다고 했다. 커다랗고 넓적한 냉장고도 봤다고 했다. 김치냉장고를 말하나 보다 싶었다. 그렇게 넣을게 많냐며.. 매끼 집에서 요리해 먹어 그런 거냐고 궁금해했었다. 당연하지.. 한식에 얼마나 많은 재료와 양념이 들어가는데..


아이들 도시락을 싸야 해서 아침 일찍부터 부엌에서 바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맛있고 영양가 있는 급식이 정말 그립다.)  친구들 도시락을 보고 와선 사서 도시락 통에 옮겨 담아 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아이 도시락을 나눠 먹은 싱가포리언 친구는 이러면 반칙이라고.. 누가 도시락을 이렇게 맛있게 싸오냐고 했다고 한다. 그냥 간단한 주먹밥이었는데.. 색다른 음식이라 그리 느꼈나 보다.


언젠가 앞집 이웃을 저녁 무렵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부부가 같이 맞벌이를 해서 바쁜 가족이었는데 아이와 함께 탄 그들 손에 음식이 잔뜩 들려있었다. 저녁 식사냐 물었더니 싱가포르에 얼마나 맛있는 게 많냐며, 퇴근하며 자주 식사를 포장해서 온다고 했다. 옆에 있는 아들에게 이 음식 좋아하냐고 물어보니 아주 좋아하고 만족한다고 했다. 메이드가 있는 집인데도 사 먹는 식사를 선호하는 건 메이드가 있고 없고의 문제는 아닌가 보다 싶었다.


우리 가족 역시 호커센터 음식을 좋아하게 되고 자주 이용하면서 지금은 매일 매끼 집밥만 고집하진 않는다. 그러니 난 미친 여자 아니라고 우기고 싶다...




더운 나라에서 사는 그들 기준으로 바라본 이야기..

무더운 날씨와 지리적인 특징, 문화적 요인에 맞춰 그들의 삶이 이런 방향으로 자리 잡았으리라.

웃자고 하는 이야기에 화를 내며 아니라고 덤빌 순 없는 일..

다만 그들의 삶이 들여다 보이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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