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소시 Aug 31. 2022

친구를 통해 그들의 세상을 배우다.

"엄마, 새로 전학 온 Y라는 친구가 댄서래요. 굉장히 얌전하고 말수가 없는 편인데 춤을 춘다네요."

새 친구가 왔다고 하더니 그 친구 이야기구나 했다.


"친구들에게 자기소개를 하면서 자긴 댄서인데 클래식한 전통춤 (classic traditinal dance)을 다고 했어요. 그러자 H가 '클래식'이란 이야기에 너무 당연하다는  발레 배우냐고 물었거든요."

"발레를 한대?"

"아니요. 얌전해 보이던 Y가 조금은 정색을 하고 발레만이 클래식 춤이 아니라며 자신이 추는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 보였어요."

"그러면서 최근에 공연한 팸플릿을 보여줬는데 공연 제목이 자기 패밀리 네임이래요."

가족이 같이 공연을 하는 건가? 어떤 춤을 추는 아일까 호기심이 생겼다.


그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아 금방 풀렸다. 며칠 뒤 학교에서 작은 행사가 있었는데 Y가 화려한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혼자 무대에 올라 춤을 췄다고 했다. 그녀의 변신에 한 번, 놀라운 실력에 또 한 번 깜짝 놀랄만한 공연이었다고 했다. 정말 다른 사람인 것처럼 표정을 변화무쌍하게 바꾸며 멋지게 춤을 추는데 내가 아는 그 구가 맞나 싶을 만큼 당당하고 멋졌다고 했다.


너 정말 멋지다고 했더니 고마워하아주 어릴 때부터 춰 온 춤이라고 했단다. 알고 보니 그녀가 춘 춤은 인도 전통 춤 중 하나로 인도춤을 대표하는 바라타나티얌 (Bharatanatyam) 이었다. 그녀 집안이 이 전통춤을 계승하는 이름 있는 가문이라 외동딸인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이 춤을 배워 오고 있다고 했단다.

가족 이름으로 전통을 계승해야 하는 거면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꼭 해야 하는 거라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었는 그녀도 이  추는 걸 아주 좋아한다고 했단다.


Y는 친구들이 모여 주말에 풀 사이드 파티를 할 때나, 생일 파티를 할 때도 댄스 연습을 하러 가야 해서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Y는 거의 매일 댄스 연습을 가야 하나 봐요."

"거의 매일? 그럼 그 친구는 나중에 대학 가서 그 전통춤으로 무용을 전공하고 싶어 하니?"

"아니요. 그 전통춤은 평생 추는 거고 컴퓨터 쪽 공부하고 싶어 해요."

참 다르구나 새삼 놀라웠다. 왠지 어릴 때부터 전통춤을 매일 연습하며 연마하면 보통 무용을 전공하고 프로 무용수가 되고자 하던데.. 전공할 생각도 없는데 거의 매일 연습한다니 그녀가 자신이 잇고 있는 전통춤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대단한가 보다 싶었다.




여러해 같이 공부하며 지켜본 Y는 늘 자신이 추는 전통춤에 진심이었고 열심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Y가 첫째를 초대다.

개인 공연을 하게 됐는데 공연 보러 올 수 있냐고..

힌두 사원에서 열리는 행사 중에 중요한 공연으로 독무를 춘다고 했다는데 아이는 친구위해 공연을 축하해주러 가고 싶어했다. 공연장도 아니고 힌두 사원에서의 공연이라면 종교 행사일 텐데 그들의 종교를 잘 모르니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응원하러 마음 담은 편지와 , 작은 선물준비한 첫째함께 찾아갔다. 사원에서의 개인 공연이라니 의미있는 중요한 공연일 거 같았고 얼마나 많은 시간 연습하고 노력했을까 싶어 열렬히 응원해주고 싶었다.


공연 당일, 저녁시간인데도 사원엔 사람이 많았다. 관광객 모드로 구경하러 힌두 사원을 가본 적은 있지만 종교 행사 중인 사원은 처음 들어보는 거라 긴장됐다. 그들의 문화를 잘 모르니 힌두 사원 안으로의 입장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조금 난감했다. 가만히 지켜보니 들어가는 분들이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한쪽으로 있는 수돗가에서 발을 씻고 들어가고 있었다.

"아~ 발을 씻어야 하는구나!"하며 그들을  따라서 신발을 벗고 발을 씻고 그렇게 맨발로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Sri Muneeswaran Temple, 힌두 사원, 싱가포르     photo by r. sakthi)
( 사원 내부. 안에 사람이 많았다 by 서소시)



공연 준비 긴장되고 바빴을 Y는 그 와중에도 첫째가 와 준걸 무척 반가워해줬다. 공연을 위해 의상을 갖춰 입은 Y는 내가 아는 앳된 소녀가 아니었다. 꽃으로 꾸며진 화려한 머리 장식에 의상은 힌두 신부의 의상과 비슷하다고 했다. (허리 앞쪽으로 덧댄 파란색 천은 춤출 때 아코디언처럼 펼쳐져 더 화려해 보였다.) 곱게 의상을 차려입고 여러 가지 장신구로 꾸민 그녀는 아름다웠다. 화려하고 돋보이게 화장을 했는데 무대 위에서 표정 연기가 잘 보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손과 발에 온통 붉은색 칠을 한 것도 역시 동작이 잘 보이게 하기 위한 거라고 했다.

(초상권을 보호하려니 이상해졌지만 화려하게 꾸민 오늘의 주인공 Y.. by 서소시)


알고 보니 그날 공연에는 Y뿐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도 무대에 오른다고 했다. 꽃을 하나만 사 왔는데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뻔했다. 가족이 참여하는 공연이라 그런지 Y의 가족이 총출동해 있었다. 그녀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한 많은 가족과 인사를 나눴다. 그만큼 Y에겐 중요한 공연인 거 같았다. 온 가족이 반가워해 주시니 오길 정말 잘했구나 싶었다. Y 다음 차례로 공연할 그녀의 어머니도 Y의 춤을 녹화할 준비하고 긴장한 듯 그녀의 무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한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냥 공연장이 아닌 힌두 사원이라 진행혹시 방해가 되는 건 아닌가 조심스러웠다. 숨죽이며 기다린 끝에 신비로운 음악과 함께 Y의 독무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말로만 들어왔던 Y의 공연을 드디어 보게 되는구나 싶은 순간, 시작과 동시에 입이 안 다물어질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손과 발을 빠르게 움직이는 그녀의 춤사위는 보통 어려운 동작이 아닌 듯했고 한두 번 춰 본 솜씨가 아니기에 가능한 춤인 듯했다. 화려한 손동작과 복잡하고 빠른 발놀림, 여러 가지 감정을 표현하는 듯한 얼굴 표정.. 힘든 동작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그녀의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얼마나 많은 시간 연습하고 준비해온 무대일까.. 이런 무대를 볼 수 있게 초대해줘서 고마울 정도였다.

(공연 중인 Y.. 초상권 보호를 위해 안경 씌움. by 서소시)
(공연 중인 Y.. 초상권 보호를 위해 꽃  by 서소시)


수줍음 많고 조용한 Y가 저렇게 과감한 표정을 짓고 대범하게 춤을 추다니.. 너무 멋지고 신비로웠다. 표정과 , 발동작으로 이야길 들려주고 있는 거 같았다. 그녀의 춤을 보면서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그 속뜻이 궁금해졌다.


공연이 무사히 끝나고 곧바로 그녀의 어머니도 무대에 올랐다. 화려한 춤사위에 흠뻑 빠져 공연을 관람했다. 종교적인 의미를 모르지만 그녀들이 보여주는 춤은 그냥 춤사위가 아니라 아름답고 애절했으며 절절한 사랑이 담긴 이야기고 노래 같았다.

이렇게 멋진 무대를 우리만 보는 게 아까울 만큼 너무 멋졌고 훌륭했다. 너무 멋지다며 축하와 함께 꽃을 전했더니 환하게 웃으며 고마워하던 Y..

그녀가 자기 가문의 전통을 멋지게 잇고 있구나 싶어 너무 대견해 보였다.


그녀의 춤사위가.. 손짓이.. 표정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종교적 이해가 부족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해 줄 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춤을 통해 그들의 힌두 문화 속 한 페이지를 열어 가만가만히 보여주는 거 같았다. 무슨 이야기인지 가만히 들어보라고.. 느껴보라고.. 그 진심이 우리에게 감동으로 닿아 더 알아보고 싶게 만들었다. 전통을 이어 지켜온 문화가 가진 힘이란 이토록 단단하고 진심이라 감동적이며 아름다운 것이리라.


초대해줘서 고마웠다. 이런 귀한 경험을 어디서 또 할 수 있을까..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공연이 아니라 매일 한 동작 한 동작 열심히 노력해온 친구를 봐왔고, 그 친구가 추는 춤이기에 그 진심이.. 그 노력이.. 더 잘 전달돼서 더 감동적인 무대였다.


양한 나라에서 저마다의 문화를 보고 듣고 자란 친구들을 이곳 싱가포르에서 만나.. 아이는 친구를 통해 그들의 세상을 배워가고 있다. 우리에겐 생소하고 낯선 문화지만 누군가 매일 노력하고 애정 하며 지켜온 전통문화..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이런 경험들에 감사하게 된다.











< 브런치 인기글에 실린 글 >










이전 06화 싱가포르 초등 생활백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