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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사랑을 나르다

by 서소시


싱가포르에 온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매일매일이 똑같은 날씨다 보니 시간의 흐름을 잘 느끼지 못하곤 했다. 돌아보면 어느새 한 달이, 한 해가 쑥 지나가 있었다.

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이만큼의 시간이 흐르면 낯선 나라라도 많은 일들이 익숙해지고 걱정거리가 줄어들겠지 싶었지만.. 하나가 익숙해지면 또 다른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기고 언제나 해결해야 할 난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방인으로, 남의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눈에 안 보이는 어떤 경계 밖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아이가 셋이라 제일 기본적인 문제였던 교육적인 부분에서도 외국인이라 로컬학교에서 공부할 기회도 어려운 시험을 쳐 합격해야 가질 수 있었고, 학비도 엄청 많이 내야 하니 뭔가 억울했다.


외국인.. 우린 분명 외국인이니 그 차이를 감수해야 하지만, 생활 물가 비싼 이 나라에서의 생활은 늘 어려움이 따라다녔다. 외국인으로 싱가포르에서 아이들 키우며 살아가기란 익숙해진다고 쉬워지는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불만만 쌓아갈게 아니라 이곳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먼저 가까워질 수 있는 일이 있나 찾아보자 싶었다. 경계선 밖에 서 있기보다 한발 안으로 걸어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분의 소개로 이곳에도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찾아갔다.


<Willing Hearts>라는 곳으로 독거노인이나 한부모 자녀, 장애인이나 이주 노동자 등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준비해서 배달해 주는 곳이었다.

재료 손질부터 그날 배달할 음식을 요리하고 포장, 설거지, 배달까지.. 여러 파트에서 다양한 도움이 필요했고, 필요한 모든 재료와 인력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이뤄진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매일 6천500명 분의 식사가 준비된다고 했다.





어떤 단체에 속해서 찾아간 게 아니라 남편과 둘이 좋은 일에 동참하고 싶어 찾아간 거라 센터를 찾아가면서 무슨 일을 하게 되려나 설레기도 했던 첫날..

들어가자마자 그날 오전 시간대 책임자였던 S와 인사를 나눴다. 혹시 몰라 준비해간 앞치마를 두르자마자 그녀는 바로 일을 배정해줬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설거지였다. 도착한 시간이 막 아침 식사가 포장되어 배달이 시작되는 시간대라 그 타이밍에 할 일은 설거지였던 거다. 씻어도 씻어도 끝나지 않을 거 같은 설거지를 하느라 입고 간 옷이 다 젖었고 한참 동안 허리를 못 펴서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요리용 식기라 크기도 커서 더 씻기가 어려웠다. 다 씻은 식기는 살균소독기에 넣어 소독까지 해야 했다.

(우리 부부가 씻은 그릇들)

겨우 설거지가 끝나고 한숨 돌릴 수 있었는데 책임자 S는 우리에게 너무 일 잘한다며 엄청 칭찬을 하더니 다음 일을 주었다.


이번에 해야 할 일은 다음 식사에 주재료로 쓰일 6천500명 분의 닭고기 씻어 건지기였다.

'아~ 양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뜰채로 닭고기를 건져 올려야 했는데 무거워서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거지하느라 허리가 아팠는데 또다시 뜰채와 씨름을 해야 했다. 이 많은 닭도 자원봉사자들이 기부해서 모인 재료라고 했다.

정신없이 닭고기를 씻어 건지다 보니 어느새 커다란 통은 바닥을 보였고, 드디어 끝났구나 싶은 순간.. 어디선가 S가 갑자기 나타나 어쩜 이렇게 잘하냐는 칭찬과 함께 또 다른 일을 부탁해왔다. 순간 너무 열심히 빠른 속도로 끝냈나 싶었다. '좀 천천히 할 걸..' 부끄럽지만 이런 마음도 들었다.

좋은 마음으로 오긴 했지만 일의 강도가 세지니 점점 지쳐갔다.


우리가 해야 할 다음 일은 빵 포장하기였다.

수북이 쌓인 빵 더미 앞에 앉아 두개씩 봉지에 담아 포장했다. 너무 많으니 눈앞에 있는 게 빵인지는 고소한 냄새로만 확인될 뿐 정신없이 움직여야 했다.

같은 시간에 함께 봉사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생각보다 할 일은 많았고 나름 힘들었다. 이런 일을 매일매일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꾸려 나간다니 같은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존경스러웠다. 몸은 잠시 고단해도 누군가는 따뜻한 한 끼를 먹으며 배부를 수 있다 생각하니 마음 가득 따뜻함이 샘솟았다.




봉사를 다녀온 후 두 번째 방문 때는 좀 더 이른 시간에 가야겠다 싶었다. 설거지는 분명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지만 솔직히 또다시 하고 싶진 않았다. 봉사하며 맘에 드는 일만 골라할 순 없지만 혹시나 하고 지난번보다 조금 더 일찍 찾아갔다.


이른 시간에 갔더니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그날 요리할 야채 재료 손질이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야채들이 쌓여있었고, 테이블마다 칼과 도마가 많이 놓여 있었다.

적당한 크기로 야채를 다듬고 썰어야 했는데 막상 해보니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매운 양파를 썰어도 썰어도 끝나지 않으니 눈이 많이 매웠다. 양파의 매운 맛에서 벗어나니 어디서 이렇게 커다란 연근을 구했는지 단단한 연근 써느라 손목이 아팠다. 많은 인원이 둘러앉아 열심히 야채를 다듬고 썰고 옮겨도, 준비해야 하는 도시락 수가 많으니 그 양은 정말 많았고 한참을 열심히 썰어도 계속 쌓이는 다른 재료들에 놀라울 뿐이었다.


이렇게 많은 재료가 들어가는 맛있는 식사를 받고 따뜻한 한 끼를 먹을 이름 모를 이웃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움직였다. 언제나 우린 외국인이라 눈에 안 보이는 경계 밖에서 차별받는 거 같아 서운했는데, 이렇게 봉사하다 보니 그런 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이 도시락을 받고 한 끼 맛있게 먹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싶으니 그저 열심히 썰고 나르고 움직였다.


재료 손질을 끝낸 후 음식 포장 일도 하게 됐는데 쌀밥이나 누들류 중 하나와 야채 두 종류 그리고 돼지고기를 제외한 고기 요리 한 종류가 포장된다고 했다.

(사진출처; Willing Hearts)

그렇게 포장된 도시락은 지역별로 인원수별로 구분 지어 묶어서 분류되었고 바구니에 담겼다. 하루 이틀 해 본 솜씨가 아닌지 서류를 확인해가며 빠른 속도로 착착 분류되는 도시락들을 보니 안 먹어도 배부른 기분이었다.


이렇게 포장된 도시락을 배달하는 봉사도 다 자원봉사자들의 몫이었다. 차량이 많이 부족해 배달 봉사에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침 우린 차가 있었기에 그날 마지막 일은 도시락 배달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뺄 시간도 없이 처음 가본 HDB 라 지나가던 분께 길을 물었더니, 음식 배달하는 딜리버리냐 물어보셨다. 그분 시선에 앞치마를 두르고 도시락을 들고 뛰고 있는 우리 부부 모습이 이상했었나 보다. 자원봉사라고 했더니 외국인이 이런 일도 하냐며 좋은 일 한다고 칭찬해 주셨다. 칭찬 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지만 어르신의 그 말씀에 그날의 피로가 다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배달 일손이 제일 부족하다고 하셔서 세 번째 봉사 때는 차량으로 배달하는 봉사를 신청했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우리가 배달해야 할 지역을 알려주며 집주소가 프린트된 서류를 주고 수많은 도시락을 차에 가득 실어주었다. 뒷좌석과 트렁크가 도시락으로 가득 찼다. 예상보다 여러 지역의 많은 집으로 배달해야 했다.

(사진출처; Henry Lim in Google Map)

배달할 곳은 대부분 HDB 였고 동호수 잘 찾아서 대문 앞에 도시락을 걸어두고 오면 된다고 했다.

처음 가 보는 지역이고 HDB마다 구조가 달라서 길 찾기 어려워 헤매기도 했다. 행여 HDB 내에서 잘못 배달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고 잔뜩 긴장한 채 확인 또 확인하며 열심히 뛰어다녔다. 이 도시락이 오기를 기다릴 누군가가 오래 기다리지 않게 해야 할 거 같았고, 식어서 먹으면 맛이 없을 테니 식기 전에 배달하려고 남편도 나도 열심히 뛰었다.


(사진출처; Willing Hearts)

커다란 여러 묶음은 노인정 같은 곳에 모여서 운동하고 계시던 어르신들을 위한 도시락이었는데 우리가 배달을 가자 와국인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생각을 했냐며 칭찬하시고 목 마르겠다며 물도 나눠 주셨다. 배고프지 않냐며 도시락 나눠 먹고 가겠냐 물어주시는 분도 계셨다. 우리네 할머니들과 똑같이 정을 나눠주시는 모습에 오히려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가득 채워지는 감사한 경험이었다. 다른 곳도 배달을 해야해서 돌아서야 해 아쉬웠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구나 싶다. 그 뒤로 몇번을 더 가봐도 설거지도, 재료 손질도, 포장도, 배달도.. 쉬운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작은 도움들이 모여서 누군가는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걸 경험해보니 순간순간 마음 가득 따뜻했다. 나눈다는 건 오히려 내가 따뜻함으로 가득 채워지는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한 걸음씩 천천히 적응해 나가고 있는 해외 생활인지라 매 순간 급한 불 겨우 꺼가며 지내고 있지만, 푸르른 초록 나라 싱가포르에서의 생활이 더 푸르를 수 있도록 그렇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며 사랑을 나누고 있다. 코로나 상황이 심해지면서 돕지 못했는데 다시 앞치마를 챙기고 나서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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