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들은 건가 하고 고개를 돌리다 나도 모르게 "으악~" 비명이 절로 나왔다.목이 찢어질 정도로 아팠다.
창문이 열려 있었는데 바로 눈앞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날개를 접으며 창틀에 앉는 게 아닌가..
창문 바로 아래에 침대가 있어서 눈 뜨자마자 날아오는 비둘기 빨간색 눈이랑 눈 맞춤했으니..순간 너무 놀라 계속 꿈이었으면 싶었다.
'왜 이렇게 커 보이는 거지? 약기운에 착시 현상이 보이나?'
열이 높아서인지.. 약기운 때문인지 너무 거대해 보이는 비둘기가 행여 방 안으로 들어올세라 엉금엉금 기어가서 온 힘을 모아 창문을 겨우 닫았다.
'안으로 들어오지 마!' 텔레파시를 보내며 비둘기랑 눈싸움을 하면서..
이 친구 포스가 보통이 아닌 거 같았다.
분명 놀라서 "으악~~"부터..
"어떻게 ~~ 어떻게 ~~"로 이어지는 하이톤 비명을 들었을 텐데도.. 날아가지도 않고 태연히 앉아서 오히려 부리로 창문을 툭툭 쳐대며 날 쳐다보고 있었다.
"친구 너 뭐냐.. 병문안이라도 온 거야? 여기 32층이거든.. 왜 하필 여기 앉아 있니?"
계속 빤히 쳐다보는 비둘기 때문에 겨우 눈을 뜨고 앉았다. 삼일째 고열에 들떠서 정신이 없었는데.. 갑작스러운 이 친구의 등장으로 막 일어나 앉는 참이었다. 체온을 쟤보니 39.3도.. 아직 너무 높았다. 코로나! 이름만 들어도 공포스럽던 그 이름.. 피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내게도 찾아오고야 말았다.
며칠 전 막내가 자다 끙끙 앓는 소릴 하더니 열이 39도였고 코로나 검사를 해보니 양성이었다.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와 먹였는데도 39도를 넘어서며 열이 안 떨어져서 물수건을 해다 열심히 닦였다. 혼자 격리하라는데 너무 고열인 아일 혼자 둘 수 없어 자꾸 가서 닦이고.. 열에 들떠 못 먹으니 억지로라도 좀 먹이고 하느라 아이 옆을 지켰더니.. 나 역시 아프기 시작했다.
그나마 막내 열이 내리고 나아진 다음에 아프기 시작해 다행이다 싶었는데.. 열만 나던 막내와 달리 난 모든 증상이 다 나타나서 너무 아팠다. 이렇게 아플 수 있다니.. 정말 무서운 코로나다!
비둘기는 한참이 지나도 가지 않고 계속 고갤 갸웃거리며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뭐가 그리 신기했을까? 아파서 정신없어 보이는 내가 이 친구 눈에도 신기했을까?
"나 많이 아파.. 뭘 그렇게 자꾸 쳐다보면서 부리로 찧냐?"라고 나무랐더니.. 말귀 알아듣는 것처럼 등을 돌리고 돌아앉았다. 그러고도 한참을 안 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비둘기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지켜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아마 저 친구도 인간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 있었나 하면서 날 구경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둘이 창문을 사이에 두고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다.
(몸단장하며 쉬러온줄 알았더니.. 맹랑한 친구였다. by 서소시)
깜짝 놀랐지만 이 친구 덕분에 조금 정신을 차리고 앉아 사진을 찍어 식구들에게도 보냈다. 안 가고 계속 날 보면서 앉아 있다고..남편은 심심하지 말라고 찾아온 손님인가보다 했다.
왠지 그만 아프고 정신 좀 차려보라고 찾아와 준 거 같아서 괜히 반가워지려고 하던 찰나..
이 친구가 몸을 둥글게 부풀리더니 막 깃털을 움직였다. 왜 그러는 걸까 날아가려나 싶던 그 순간.. 엉덩이 쪽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으~~ 이럴순 없다!!! 이 친구가 창틀에 한 무더기 똥을 싼 거였다.
"아~~ 진짜.. 똥 싸러 온 거야?"
어이없어 버럭 소리 지르는데도 등 돌리고 우아하게 서서 고개만 갸웃거렸다. 난 모르는 일인걸요 하는 것처럼..
이런 괘씸한 친구를 봤나.. 여기 여러 해 살아도 이런 일 없었는데.. 왜 여기 와서 이러나 싶던 그 순간..
몸을 또 부풀리며 엉덩이를 들썩이더니 한번 더..
아.. 정말 울고 싶었다.. 뭘 이렇게 많이 먹었던 거야? 똥을 엄청나게 많이도 싸 놨다.
"친구야.. 나 엄청 아프거든.. 너무한다!!!"
뻔뻔함까지 갖춘 건지.. 내가 아무리 소릴 질러도 날아가지도 않고 앉아서 고고히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다. 못 알아듣는 척 하나.. 아파서 소리 지를 힘도 없거늘..
이런 일은 처음이다 진짜!!!
아픈 것도 서러운데.. 똥 폭탄 선물 들고 와준 비둘기 친구라니..
그렇게 똥을 싸고 편안했는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앉아 쉬고 있는 게 아닌가..
얄밉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고.. 저 똥은 어찌 치우냐고..
그러다가 순간, 아차 싶었다. 저 친구가 방에 들어올 수 있게 창문을 닫지 말았어야 했나.. 왜 해외에선 새똥에 맞으면 운이 좋다고..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던데.. 일부러 찾아와 준 건데 내가 막았구나 싶었다.
'나 지금 뭐래니.. 이런이런..'
아픈 와중에도 이런 생각이 들다니.. 참.. 너무 열이 높은가보다..많이 아픈게야..
얼른 나으라고 똥 폭탄 선물을 주고 간 걸까? 그래도 좀 과했다. 친구.. 엄청 많이 싸고 가서 저걸 어찌 치울지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다. 비는 언제 오려나.. 비가 와야 저 똥 씻어낼 수 있을 텐데..
잠시 반가웠다가 오래 미울 이름이 된 비둘기 친구는 그 이후로도 안 날아가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래.. 네가 편하다면 좀 더 쉬어가렴."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보니.. 이 친구 덕분에 며칠 만에 하늘을 봤구나 싶었다. 고열에 시달리다 보니 아침인지 밤인지 시간도 모르겠고 끙끙 앓기만 했었는데..
쨍하게 맑은 하늘 보니.. 어서 나아서 나가고 싶어졌다.
정말 똥 싸러 온 건지.. 얼른 나으라고 병문안 온 건지 이유는 모르나.. 덕분에 오랜만에 푸른 하늘도 보고 정신도 좀 차릴 수 있었다. 어서 낫고 싶다는 의지도 생겼고..
"힘내서 나을 테니.. 그만 가.. 여기 똥 싸러 다시는 오지 말고~"
거짓말처럼.. 정말 말 알아듣는 것처럼.. 고개 돌려 빤히 쳐다보더니 휙 ~~ 날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