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수오지심_ Conscience_ 3. 덕(德)
잘 나가던 외식사업가가 있었다. 그 이름은 백종원.
‘흑백요리사’ 대성공으로 개인 인기는 절정에 달했고, 그의 기업 [더본코리아]도 코스피에 상장하며 전성기를 맞는 듯했다. 그런데 근래 갑작스레 방송 하차를 선언했고, 회사 주가는 공모가 밑으로 떨어진 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 대단한 백쌤이 왜 이렇게 됐을까?
발단은 ‘빽햄’이었다. 명절을 맞아 빽햄 선물세트를 원가의 45%에 팔며 “역사는 빽햄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 호언했는데, 정말이지 말이 씨가 됐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애초에 할인한 가격조차 업계 1위 스팸보다 비싸고, 고기 함량도 낮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뒤늦은 해명 영상은 “후발주자라 생산단가가 비싸서 어쩔 수없다”는 말로 기름을 부었다. 더구나 SBS예능 [골목식당]에서 솔루션을 줄 때 강압적인 말투로 “고기 함량은 무조건 높아야 한다”라고 강조하던 모습과 정면으로 배치되며 내로남불 비판이 터졌다.
한때 백종원을 (요리)천재라 여겼던 대중은 그 진정성과 실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한식대첩]이라는 요리경연 프로그램에서 지역고수들만 알던 재료와 조리법을 척척 맞추면서 대단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냈지만, 이 역시 대본으로 녹화된 설정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도 생겼다. 이후 지역축제를 둘러싼 특혜의혹과 식품위생법 위반 논란까지 이어지며 그의 신화는 거짓말처럼 무너졌다. 크고 작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나여 백종원'하면 만사 오케이던 자만심 때문이었을까? 적당히 성공한 요식업자였다면 괜찮았을 걸, 진짜 실력을 뛰어넘은 뻥튀기로 쌓아 올린 바벨탑이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그만큼 그의 성공을 아니꼽게 보던 안티들도 많아졌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과 방송조차 자기중심적 변명으로 일관하는 태도에 안티팬덤은 그야말로 활활 타올랐다. 백종원은 방송에 퇴출되는 건 물론 검찰조사를 받을 처지에 몰렸다.
'샤덴프로이데'
Schaden = 해, 손해, 불행 Freude = 기쁨, 즐거움
라는 단어를 합친 독일어로, 다른 사람의 불행이나 실패에서 느끼는 기쁨을 뜻한다. 우리말에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같은 속담이 있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은 타인의 성공을 시기하는 습성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안티들에게 백종원의 헛발질은 물어뜯기 좋은 먹잇감이 됐을 것이다.
허상의 이미지로 바벨탑을 쌓으려던 한 인간의 탐욕, 그리고 바벨탑에 오르려는 자의 성공을 시기하는 못난 자들의 발목 잡기, 이 두 콜라보가 요식업에서 잘 나가던 거물을 쓰러뜨리고야 말았다. 실력은 없으면서 포장된 이미지로 자신을 부풀렸던 사짜의 자업자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뒷맛이 씁쓸한 건 왜일까?
이유야 어쨌든 백종원이라는 브랜드가 거꾸러진다면 그 빈자리는 꽤나 커 보인다. 그 공백이 우리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리던 도전자들을 성장시킬 절호의 기회일까? 아니면 그래도 해외 한식대중화에 영향력을 가진 브랜드가 힘을 잃어 안타까워해야 할까? 그 피해는 정작 누구에게 올까? 우리는 이른바 '백종원 사태'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회사, 일터에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동료 간, 상하 간, 팀 간 서로 협조하고 희생하기보다는 타인의 성공, 잘나감을 시기 질투하고 견제하고 어떻게든 끌어내리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더 잘 보인다. '졌잘싸' 정당한 경쟁을 통해 승부가 갈리면 패자는 승자를 기꺼이 축하해 주고 승자는 패자를 위로할 줄 아는 페어플레이 정신은 한가한 나약함으로 평가절하되기 일쑤다. 오늘날 기업 조직에 사일로 현상이 만연해진 이유.
'회사는 전쟁터, 밖은 지옥'이라는 밈meme이 유행하면서 동료는 더 이상 동료가 아니고, 그저 내 성공을 위해 어떻게든 짓밟아 쓰러뜨려야 하는, 내가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위협적 존재로서 의미만 남은 듯하다. 20대 중반부터 50대 중후반까지, 하루 8시간 이상 인생의 황금기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일터가 온통 시기하고 끌어내리지 못해 안달하는 못난이들로 가득 차 있다면 얼마나 끔찍한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자는 동등하게, 그렇지 않은 자는 달리 대우해야 한다. equals should be treated equally, and those who are unequal should be treated unequally.”
나는 그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작은 특혜는 참지 못해도 차이가 엄청난 사람들의 큰 특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법이다."
나 역시 나와 비슷한 실력, 연차를 가진 동료의 승승장구를 지켜보며 부러웠던 적이 있다. 부끄럽지만 어떻게든 무언가 깎아내릴 거리를 찾아 술자리에서 속닥거리는 짓도 종종 했었다. 그때마다 남는 건 숙취와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뿐이었던 것 같다. 차라리 깨끗이 인정하고 그 누구도 아닌 나의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 왜 같은 노력에도 누군가의 눈에 들지 못했을까?를 묻고 더 가열차게 노력하는 것이 더 발전적이라는 깨달음을 뒤늦게 얻기도 했다. 그럼에도 샤덴프로이데는 그 음험한 고개를 수시로 쳐든다.
"내일부터 절대 OO팀에 협조하지 마! 팀장 명령이야."
직장인 시절, 직접 진행한 워크숍에서 모 리더로부터 들은 실제 이야기다. 서로 기능적으로 긴밀하게 협조해야 하는 두 부서 중 누가 더 성과를 가져가야 하느냐? 의견차이로 충돌했고 결국 팀 리더 간 불화로 이어져 두 팀은 한동안 갈등상태를 유지했다. 그 해 연말, 두 팀이 소속된 사업본부는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며 본부 전체에 한기가 불어닥쳤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부단한 자기 성찰: 마음속 샤덴프로이데를 인지하고 경계하라
타인의 성공에 대한 시기심은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먼저 인정하는 자세다. 그 후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혹시 내가 지금 동료나 팀원의 성공을 보며 내심 불편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솔직한 자기 인식만이 감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첫걸음이 된다.
말투와 태도는 내 무의식을 드러낸다. 술자리에서 타 팀이나 경영진을 ‘우리’라 부르는가, 아니면 ‘그놈들’이라 칭하는가? 스타일은 달라도 같은 울타리에 있는 이상, 서로의 성장과 성공은 결국 조직 전체의 수준을 끌어올린다. 그렇다면 누구든 결코 배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시기, 질투를 성장의 동력으로 전환하라
샤덴프로이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졌지만 정당한 결과에 대해서까지 그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주변의 모두가 패배자에 쓸모없는 잉여로 점철된 삶보다는 능력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찬 환경이 백만 배는 낫다. 자기 성찰을 통해 질투나 부러움의 감정을 깨달았다면, 단지 부정적인 감정에 머무르지 말고, 나 역시 그 무리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성장의 동력으로 활용하면 그만이다.
타인의 성공을 깎아내려 자신을 높이려는 하향평준화의 유혹을 뿌리치고, '나도 저렇게 성공해야겠다'는 긍정적인 자극으로 전환하라. 주변을 온통 성공한 사람들로 채우고, 자신 또한 그 부류의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진정한 리더는 경쟁자의 성공에 박수 치고, 그 성공의 비결을 배우는 데서 한 단계 더 발전한다. 하향평준화는 결국 나 자신도 손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큰 그림을 보는 시야: 팀 이기주의를 경계하라
리더는 개인이나 소속 부서의 이익을 넘어 조직 전체의 성공을 바라보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 사일로(Silo) 현상은 부서 간의 협력이 단절되고, 각 부서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조직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현상을 뜻한다. 극단적인 개인주의나 부서 이기주의는 결국 조직 전체를 망가뜨리는 원인이 된다.
부서 전체가 이기주의로 흐르는 건 어디까지나 리더 탓이다. 한 조직의 머리쯤 됐으면 보다 큰 시야로 오늘의 내 손해가 내일의 전체 이익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얕은 숨으로는 결코 깊은 잠수를 할 수 없다. 더 깊이 들어가야 묻혀있던 보물이 보인다. 리더의 안목과 호흡이 조직의 미래를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