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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한시사십구분 Mar 21. 2023

약을 처방합니다. 아, 근데 효과는 몇주 기다리세요.

약을 먹고 나으면 그게 나인가. 난 의지가 부족한가.

아, 그럼 적어도 2주는 여전히 지금 같아야 한단 말인가..

병원에서 Prozac (프로작) 이란 항우울제를 처방받아 집 근처에 약국에서 약을 사 왔다.

주황색라벨의 병에 Fluoxitine (Prozac의 성분명)이라고 적힌 약병을 한참 쳐다보았다.


결국, 약을 먹어야 하는 것인가.

이미 우울함과 불안을 겪고 있는 내 상태를 나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지만, 

막상 진단을 받고 약을 받아오니 약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나름 마음이 단단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우울증에 범불안장애?'

마치 나는 어딘가 망가져버린, 반품도 안 되는 불량품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었고, 

비난의 화살은 또 나에게로 향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이런 단어와 말들에 익숙했다.

노력, 끈기, 정신력으로 버텨라,...


결국 약에 기대야 하다니, 난 의지박약인 건가.

'만약 약이 내 기분을 나아지게 한다면, 그게 나인가? 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있는 걸까?'

또, 어디선가 들은 말이 날 다독였다. 

"우울은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약해진 사람에게 오는 감기이고, 항우울제는 해열제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감기든 우울이든 나는 나아져야만 했다. 

그렇게 약 한 알을 집어 들어 물과 함께 꿀꺽 삼켰다.

나아지고자 약을 먹는 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의지이자 노력인 것이다.


하지만, 의사가 말한 대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2-3주까지 기다려야 했다.

항우울제는 날 바로 우울에서 건져 올려주지는 못했다.


약을 처방받으면서 의사에게 제일 처음 물은 것은 금단과 약에 대한 의존성에 대한 걱정이었다.

약을 먹다가 나중에 먹지 않으면 약을 갈망하게 되지는 않는지, 일상에서의 기능을 제대로 못하게 되는지 않은지 걱정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Prozac (Fluoxetin) 은 체내에서 반감기 (약물의 농도가 체내에서 반으로 줄어드는 필요한 기간)가 길어 의존성과 내성이 없다는 답변을 듣고서야 복용에 동의했다.


프로작의 작용기전에 대한 전문적 지식은 없지만, 

내가 이해한 바로는 체내의 세로토닌을 재흡수하는 뇌의 수용체가 재흡수를 덜하게 만들어 체내의 세로토닌의 농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뇌라는 차에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 세로토닌이라는 기름을 추가로 더 주유하는 것이 아니라,
 성능 개선으로 연비를 높이는 것' 정도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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