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척이 버거워 사람들을 만나는 게 힘들어졌다. 날 고립시켰다.
항우울제는 날 바로 우울에서 건져 올려주지는 못했다.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기 시작한 다음주에 내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었다.
미국에서는 보통 서로 만나 인사를 할 때, 보통 "Hi, how are you?"라고 묻는데,
마음이 힘든 기간에는 그 인사말이 너무 싫었다.
학교에 나갈 때 교수님이나 동료 박사생들이 지나가며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
사실은 "난 지금 매우 우울하고, 무기력을 겨우 이겨내고 여기 나왔어"라고 말하고 싶은 나는 애써
"pretty good"이라고 말하며 가면을 썼다.
난 학교에서는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게 편하지 않아 괜찮은 척을 하려고 애를 썼다.
어떻게 내 추천서를 써주고 논문을 심사하는 교수님들 앞에서
"전 우울하고요, 연구도 재미없는 것 같고요, 졸업논문은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고요, 다 때려치우고 싶어요"라고 말하겠는가.
그때 나는 우울 = 감정조절실패 = 무능력이라고 생각했고,
남들에게 그러한 신호를 주고 싶지 않아 열심히 두껍고 무거운 가면을 썼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을 하는 것은 매우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었고,
나중에는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하는 일로 발전되었다.
어느 순간에는 학교에서 세미나가 있는 날이면 학교 주차장에서 한동안 숨을 가듬고 마음을 안정시켜야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었다.
이내 학교에서 사람을 만나는 게 어려운 일은 가까운 친구와 이웃에게까지 확대됐다.
내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남들에게 전이시키는 것 같아 불편하고,
그때는 웃음이라는 것은 내게 자연스럽지 못한 표정이었다.
어쩌다 여럿이서 만나게 되면 빨리 집에 가기만을 기다렸고
결국에는 집이, 집에서는 침대가 내 피난처가 되었다.
사람 좋아하고, 강의가 즐겁고, 발표를 할 때는 기분 좋게 뛰었던 가슴은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불안감으로 불편하게 뛰었고
나 스스로를 격리하고 고립시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