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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한시사십구분 Mar 21. 2023

나만 힘든 게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힘들다.

모두들 우울과 불안을 느끼며 산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그렇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를 격리하고 고립시키기 시작했다. 

학교 연구실과 각종 모임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정확히는 결국 집에만 있게 되었다.

게다가 우울과 불안이 함께 손을 잡고 끌어당긴 이 깊은 늪은 유난히도 긴 올해의 겨울과 흐린 날씨를 만나 한층 더 깊어졌다. 


그 깊이에 압도되어 허우적거릴 힘도 없이 침대 속에서 무기력을 이어가고 있을 때,

침대에서 가장 많이 봤던 건 정신과의사들의 유튜브와 브런치를 포함한 각종 블로그의 글들이었다. 


브런치에서 우울증, 불안, 항우울제등을 검색해서 나온 글들을 읽고 있으면 위로를 받았다.

다른 이들이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글들을 찾아봤다고 생각했었지만,

나는 어쩌면 내가 심각하게 망가진 복구 불가능의 존재가 아님을, 나도 그냥 보통의 존재임을 확인받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을 때면 한편으로는 내가 겪는 힘듦이 하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난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낸 것도, 회사에서 잘린 것도, 갑작스럽게 암에 걸린 것도 아니었다.


난 내가 겪은 비교적 순한 맛에 견디지 못하고, 

나 우울이요! 하고 방패 삼아 불을 뿜고 지금의 어려움을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닌지 자괴감과 죄책감마저 들었다.

또다시 나는 '난 역시 나약한 녀석'이라며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순한 맛일지언정 직접 겪어보고서야 깨달은 것은

우울이나 불안들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최악인 말 Top 3은 아마도:

1. "너만 힘든 거 아냐. 힘내."

2. "여유가 있어서 그래. 우리 때는 먹고사는 게 바빠서 우울증에 걸릴 틈도 없었다!"

3. "우울은 인간의 회피작용이야. 지금 피하고 싶어서 그래."

가 아닐까 싶다.


막상 우울과 불안의 늪에 빠진 사람들은 이 세 가지를 모르는 게 아니다.

크고 작던 보이든 보이지 않던 그들은 그들 나름의 상실을 겪고 힘들고 아픈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비난의 칼날은 보통 스스로에게로 향하고 있다. 


우리는 유독 마음의 병에는 엄격하다. 

손가락이 부러진 환자에게 팔이 부러진 사람들이 있으므로 아파하지 말라고 하진 않지 않는가.


내 마음이 아픈 것. 

그것을 그 자체로 '내가 힘들구나 아프구나'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회복의 첫걸음이 아닌가 싶다.

난 그것조차도 어려워 자책을 하며 며칠을 괴로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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