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울증이라는 이름의 증상에 항우울제라는 약을 먹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이번에는 정신과전문의를 찾아가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도무지 찾지 못해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삶의 의미와 의지를 상실했다고 생각됐을 때, 완전한 상실을 막아주는 것은 결국 가족이었다.
내가 삶을 스스로 포기한다면 내 아내와 부모님은 얼마나 큰 고통에 시달릴 것인가.
하지만, 내게 한참 우울에 허덕이고 있는 내게 그것은 죽음을 막아주는 요인이지 살아가야 할 의미와 의지까지 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제발 모두가 날 내버려 두면 고요한 평화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머리로는 알았다.
지금 내가 겪는 것이 일시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돌아보면 별 것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내 감정은 이미 무관심으로 모두 비워져 있었고 몸도 축 쳐져 있었다.
"죽는 옵션을 제외하면 난 어디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 걸까?"
"이 우울이란 몸살을 어떻게 떨쳐낼 것인가?"
상담자를 만나서 얘기하고 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내 생각의 패턴을 더듬어가며 생각의 전환을 이뤄낼 수도 있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생각과 시각의 전환이 내게 스트레스에 대한 면역력을 높일 수 있게 해 준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상담자에게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내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는 한계점이 있었고, 무엇보다 상담자에게 내 모든 배경과 상황을 다 설명하고 길을 찾아가는 것이 지금 내게는 너무 버거웠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믿음의 힘이 내게는 없었다.
신앙은 선물이라고 하는데, 내가 가진 신앙심은 너무 얕았다. 종교가 아직은 마음에 깊이 와닿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학교 병원에 있는 정신과의 문을 두드렸다.
의사와 만나기 전 대기실에서 설문지를 Patient Health Questionnaire (PHQ)를 작성하고 있었다.
아래의 우울과 불안의 정도를 묻는 모든 문항에 '거의 매일 (Nearly every day)'를 선택하고 있었다.
단정한 자주색 양복에 검은색 부츠를 신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하고, 귀와 코에는 피어싱을 하고, 눈에는 아이라이너를 손톱에는 매니큐어를 칠한 남성의 의사는 내 이야기를 정말이지 차분하게도 들어줬다.
그렇게 나는 두 시간에 걸쳐, 중간중간 가빠지는 숨을 추스르고자 이야기를 잠깐 멈추고 다시 하기를 반복해
내 성장배경에서부터 현 상황까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며 공감의 눈빛을 간혹 던져주던 의사는
진단이라는 것은 증상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Major depression (우울증)과 GAD (generalized anxiety disorder; 불안장애)로 인해
Passive death wish (수동적 자살충동; 자살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생각보다는 죽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 것)를 겪고 계신 것 같군요."
놀랍지 않았다. 결국 쉽게 말하면 불안과 우울한 감정에 시달려 삶의 의지를 잃은 정도라는 것이다.
진단하게 된 배경을 자세히 설명한 후 의사가 이어서 제안했다.
"프로작 (Prozac)이라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 (SSRI;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를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10mg으로 시작해 봅시다."
그리고 약의 부작용과 작용기전을 묻는 내게 약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덧붙여 말했다.
"SSRI는 효과가 나타나기 전까지 시간이 좀 걸립니다. 2-4주는 지나야 효과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럼 적어도 2주는 여전히 지금 같아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