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의미 없게 느껴졌다.
불안이 떠민 낭떠러지의 끝은 우울이라는 무거운 이불을 덮고 누운 침대였다.
불안의 악순환에 빠지자 곧 난 무기력의 늪에 빠졌다.
한번 패닉어택을 겪고 난 후, 난 활력이라는 걸 잃었고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버거웠다.
돌아보자면, 패닉어택이 활력을 잃게 했다기보다는 패닉어택이 내 기력과 의지가 바닥났음을 알리는 마지막 경고음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의 직장에서의 업무동기를 연구하면서도 나 스스로는 동기부여가 전혀 되지 않았다.
동기에 대한 이론들과 연구결과들은 잘 알았지만, 내게는 전혀 적용할 수 없었다.
이쯤에서 당연히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은 내게 단지 극도의 불안을 야기하는 것뿐이었다.
동시에 나는 자꾸 졸업논문을 질질 끈 나의 과거의 시행착오를 반추했고, 그때마다 끊임없이 날 자책했다.
주변 사람들은 취직을 했다는 것을 축하했지만, 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괴로웠다.
교수임용과정에서도 내가 생각한 대로 순서대로 착착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에 대해 자책했다.
아내는 날 이해하면서도 취직을 하고도 즐거워하지 못한다며 안타까움과 어이없음을 섞어 위로를 했다.
하지만 난 정말 괴로웠다. 그냥 난 운이 좋았고 성취한 건 없고 떳떳하지 못했다.
나의 자책은 나에 대한 의구심으로까지 이어졌다.
내가 과연 졸업을 할 수는 있을지. 내가 연구자로서의 자질이 있기는 한 건지.
물리적으로 자해를 하지 않은 것일 뿐, 나는 이미 내 자존감과 자아효능감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날 괴롭혔던 건 내가 이 길을 가는데 적합한 사람인가?라는 생각과,
언제 어떻게 얼마나 잃어버렸는지 모를 학문과 연구에 대한 흥미였다.
그리고,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있는 나의 흥미는 희망을 묶어 매달고 같이 떨어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재미없었고, 앞으로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웠다.
논문들을 계속 써야 하는 직업인데 내가 연구를 좋아는 하는 것 같지도,
예전엔 재밌다고 생각했던 강의도 정말 재미가 있었던 건지 의심스러웠다.
주변에서 잠깐 며칠 쉬며 내가 즐거워하는 다른 것을 해보라고 했을 때, 난 내게 되물었다.
"내가 즐거워하는 일이 있기는 한가?"
무엇을 하려고 해도 재미라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가 않았다.
하루 중에는 자는 순간이 가장 좋았는데, 잠이 들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아침에 일어날 때가 가장 끔찍했는데 눈을 뜸과 동시에 몰려오는 우울감과 자책감이 날 괴롭혔다.
자도 자도 피곤했고 밤부터 10시간이 넘게 자고도 낮잠을 몇 시간씩 또 잤다.
침대에서 일어나 먹고 걷는 것조차 귀찮고 버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괴롭고 아등바등 발버둥을 치는 것이 결국은 또 다른 하루를 살기 위함인 것인가?"
삶의 목적과 의미를 잃어버린 것처럼 공허하고 허무했다. 그리고 내게 되물었다.
"그럼 의미를 찾지 못하는 나는 죽는 것이 맞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인가."
차라리 슬픔이 밀려와 눈물이 나고 화가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확 쏟아내버리고 시원했을 텐데.
내가 느끼는 감정은 떨쳐낼 수도 없는 짙은 회색빛의 무관심과 공허감이었다.
무관심과 공허함은 난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삶은 의미가 없기에 난 죽어도 상관이 없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죽고 싶다는 생각보다 위험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나는 이번에는 정신과전문의를 찾아가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도무지 찾지 못해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