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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한시사십구분 Mar 21. 2023

불안은 더 이상 에너지를 주지 못했다

에너지였던 불안이 날 낭떠러지로 밀어내고 있었다.

내게 불안이란 감정은 에너지였다. 하지만 이번에 불안은 날 낭떠러지로 밀어내는 듯했다.

새벽 3시쯤이었다. 붙잡고 있는 졸업논문의 한 챕터에 꽉 막혀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였다.

서서히 가슴이 조여 오는 느낌이 들고, 급격히 숨이 가빠지고, 손이 떨렸다. 

얼굴이 일그러졌고 시야가 흐려지는 것만 같고 너무 고통스러웠다.


몸에 이상을 느끼면 겁이 덜컥 나는 것이 일반적인데, 불현듯 죽고 싶다는 생각이 날 휘감았다. 


내가 답답하구나, 불안하구나라는 생각을 넘어, 그냥 이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히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통에서 벗어날 다른 출구가 딱히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자 또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충동적으로 자살하면 어쩌지?'


옆방에는 아내가 자고 있었지만 차마 깨우지 못했다. 

대신, 구글에 자살충동을 검색해 보자 상담을 해주는 핫라인이 나왔다. 

채팅창을 켜고 영어로 느릿느릿 대답이 오는 사람에게 지금 상황을 말하다 보니 웃기게도 답답하고 짜증이 나서 마음과 몸의 증상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난 바로 다음날 아침에 핫라인으로부터 연결된 학교의 상담사와 긴급 면담을 했다.*


아무래도 난 Panic attack (공황발작 - 같은 현상을 정의하는 두 단어가 전달하는 느낌이 너무 다르다. 발작이라니 너무 거창하다, 난 그냥 패닉어택이라고 하겠다)을 겪은 것 같다.




내게 불안은 일종의 에너지였다. 


재밌게도 난 불안을 선택적으로 적용해 왔다. 

평소에 모든 걸 미리 준비해야만 마음이 편하다거나 매사에 걱정이 많거나 안달을 하는 성격은 아닌데, 

유독 일에 대해서만 불안이 발동했다.


'기한 내에 다 못하면 어쩌지, 결과물이 엉망이면 어쩌지..'


데드라인이 다가오면 불안한 마음에 더 효율적이어졌고, 밤을 새우기도 하고, 자다가도 생각하고, 아침에는 벌떡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결국 돌아보면 불안을 끌어올리고, 일을 해내고, 불안을 털어버리고 휴식을 취하는 패턴을 반복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불안이 해소되지 않고 길게 이어지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불안은 더 이상 에너지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지난 4개월간 난 극도의 스트레스와 지속적으로 싸워야 했다. 

세 번째 리뷰 중인, 이번에 리뷰어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면 결국 리젝인 논문의 수정과, 줌 인터뷰와, 최종 면접을 보러 가면 1시간씩 연달아 며칠에 걸쳐 이어지는 면접, 발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뒤로 밀려가고 해결법을 모르겠는 꽉 막힌 내 졸업논문. 

모든 게 한꺼번에 다가왔다.


결국 운 좋게 마음에 드는 학교에 임용되었지만, 여전히 나머지 스트레스 요인들은 진행 중이었다.


한번 끔찍한 패닉어택을 겪고 나자 그때와 비슷한 신체적 현상은 또 한 번 같은 상황을 경험할지도 모르는 두려움으로 연결됐다. 


마치 나의 뇌에서 패닉어택 때 느꼈던 신체현상하나하나가 두려움이라는 버튼과 연결해 놓은 것만 같았다.

예를 들어, 커피를 마시고 카페인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린다던가 매운 것을 먹고 속이 쓰리면 패닉어택이 연상되었고 관련 없는 손떨림이 느껴지면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 연결고리는 불안의 악숙환에 빠져들게 했다. 


졸업논문을 쳐다보기만 하면 공포감을 느끼고, 그래서 쉽게 잡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하고, 그래서 진척이 없는 졸업논문을 보며 또 불안감을 느끼고, 진척이 없는 졸업논문을 보고 불안해서 책상에 억지로 앉아보고 불안과 공포감을 이겨내려 애써보지만 그렇지 못하고, 그렇게 또 진척이 없고, 그래서 다음날은 더 불안해지고... 무한반복이었다.


그렇게 해소되지 않고 이어지는 불안은 날 낭떠러지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 낭떠러지의 끝은 우울이라는 무거운 이불을 덮고 누운 침대였다. 


* 늘 감탄하는 것이 미국 대학은 학생 및 교직원의 정신건강에 정말 많은 관심과 자원을 투자한다. 내가 있는 대학교의 경우 학교 상담센터-핫라인-병원-학생 지원센터 등이 잘 연결되어 있어서, 핫라인에서 내가 어려움을 털어놓자 다음날 아침에 바로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할지 의사를 묻는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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