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요 (2)

동료

by 아는개산책

왜요 (1) 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일정


"수술 일정은 저기 계신 담당자분이랑 얘기해 주세요."


나는 간호사 한 분이 가리키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슬쩍 바라본 자리, 대기석에는 이실장이 아직도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기다린다.


'죄송하게.'


상담자리에 앉는다.


"최대한 빨리 날짜 잡아야 한다던데. 어휴, 젊은 분이 혹이 이렇게 커지도록. 놀랐겠다."


목소리가 다정하고 높지 않은 톤이 듣기 좋다.

뭔가 안심이 되기도 하고.


"저, 꼭 수술해야 돼요?"


의사에겐 묻지 못했다.


"어머, 안 하게요? 그러다 터질 수도 있는데. 이건 저절로 사라질만한 사이즈가 아니에요."


"터지면 어떻게 돼요?"


"지금보다 백배는 아프죠. 감염 위험도 생기고요"


"아... 백배면 해야 되네. 그런데... 저 보름 후에 출장인데."


어떻게든 미뤄볼 수 있을까.

원래 사는 게 미루기의 연속이잖아.


"출장? 보름이면 괜찮을 거예요."


"네에... 독일 가야 하는데. 괜찮겠죠?"


"독일이요? 비행기타고요?"


많이 놀란다.

승무원처럼 보이진 않아서 그런가.


"네... 다녀와서 할까요?"


"가서 터지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내일 할게요. 수술."


못 미루는 것도 있구나.


병.



수술


내 몸을 맡기는 첫 수술이지만 피할 수 없으니 그냥 한다.


-의사도 사람인데. 실수... 나한테 일어날까?


요즘도 천이나 가위를 넣고 봉했다는 얘긴 들어본 적이 없다.


다만,

재수를 따지자면 모든 안 좋은 일은 한 번씩 나를 거쳐가는 느낌이기에.


문제가 생긴다면 나 때문이겠지.


수술실은 생각보다 더 춥다. 들어가는 순간 소름이 돋고 몸이 떨려온다.

녹색의 수술침대에 올라서는 동안에도,


-최대한 머리를 비워. 생각하지 마. 남들 다 하는 거야. 그래도 사람일이란 게...


생각 좀 닥쳐.


"저... 제가 엄청 민감해서 마취가 잘 안 되는..."


"일어나세요. 고우리 씨, 고우리 씨. 일어나세요."


마취도 하기 전에 깨우면... 응?


너무나 춥다!


경박스러워 보이지 않으려 애를 쓰며 살아왔지만 그 어느 때보다 의지를 내팽개친 내 몸은 막 잡아 올린 활어처럼 파닥파닥. 까진 아니어도 이동형 침대가 같이 흔들릴 정도로 심하게 떤다.


"추... 워... 요..."


간신히 말해보지만,


"네, 추워요."


아는 말을 한 건 가 보다.

간호사는 동요 없이 두꺼운 담요를 하나 더 덮어준다.


수술이 끝나고 병실로 이동한다.



입원


"수술은 잘 끝났고, 출혈이 생각보다 많고, 유착이 심해서, 생각보다 더 걸렸네. 그래도 잘 됐어요."


이 쪽으로는 신의 손이라더니. 여의사의 카리스마가 온몸에서 흘러나온다.


바로 이 병원, 이 여의사와 연결해 준 첫날의 정형외과 의사와는, 무슨 사이일까?


아파도 남녀가 궁금하다니.


"많이 아프죠?"


"네..."


"괜찮아질 거예요."


딱딱한 말투에 미소도 없지만, 그녀의 자신 있는 목소리에서 오히려 더 안심이 되는 아이러니.


-미.. 믿습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돌아가자 바로 휴대폰이 울린다.


지이잉-


"서림..."


"차장님, 괜찮아? 이따 퇴근하고 내가 갈게."


"오지 마..."


발끝하나 움직이는 것도 고통이다. 찐 고통.


"부모님한텐 연락했어?"


"뭐 하러."


"친구들은?"


"귀찮아. 너도 오지 마. 귀찮아."


"아, 왜..."

뚝-


끊는다. 힘들어죽겠다.

남의 마음을 살필 여유가 없다.


아프다는 건,

내가 귀찮든, 네가 귀찮든, 신경 써야 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


나중에 알리면 된다.

끝까지 몰라도 되고.

죽고 사는 일도 아니고.


잠만 계속 쏟아진다.

피가 없나 보다.



퇴원


"생각보다 입원이 길었어, 어? 별일 없었어? 혼자 괜찮았어?"


이실장의 말처럼 일주일이 넘게.

혼자.

수리점에 맡겨진 고장 난 자동차 보듯 한참을 내 몸과 마음을 돌아본 시간.


어쨌든 퇴원.


"안 오셔도 되는데. 감사해요."


이번엔 거짓말이다.

택시 타고 이 짐 다 들고. 허리도 못 펴면서...

무리데쓰.


"와야지, 고생했는데."


짐을 들어 트렁크에 넣는 실장을 바라보다 먼저 앞 좌석으로 들어간다.


앞 좌석엔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이번에 대학에 들어갔다는 큰 딸.


탁, 이실장이 운전석에 올라탄다.


"따님이... 엄마 닮았네요."


"어, 다행이야. 첫 딸은 아빤데, 성격만 나 닮았어. 하하 더 안 좋은 건가?"


"왜요..."


평소처럼 농담을 길게 할 기운이 없다. 안타깝다.


동에서 서로 다시 이동이다.

그의 집도 회사도 그리고 지금 병원도 동쪽. 우리 집 서쪽. 나를 내려놓고 다시 동으로 와야 한다.


"죄송해요."


"아, 뭐가. 그런 소리 하지 마."


복대를 한 배를 움켜쥐고 창 밖을 본다.

정오가 가까워지는 하늘엔 흰 구름이 가득이다.

대로 위에 저 많은 차들은 아침부터 외근이라도 가는 걸까.


"저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세요."


이런 종류의 말,

망설이다 입을 뗀다.


"내가 뭘, 고차장이 열심히 하는데 내가 고맙지."


"실장님이 사장이에요?"


"어? 하하하, 아니 그런 마음으로 일해야지. 부담 갖지 마."


"부담돼요. 병원비도 비보험은 내주셨다면서요."


"아휴, 아니야."


"감사해요."


"그래, 그럼 됐어."


"그런데 왜요."


"아, 같이 오래 일하고 싶으니까."


"왜요."


"하하, 암튼 고차장. 말 그만하고 한숨자."


"왜요..."


"아이고. 나도 있었어. 그때 구내식당에. 무슨 말인지 모르지? 됐어. 그냥."


창문에 이마를 기댄다.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창 밖을 본다.

길게 이어진 차량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이 시간에도.


사람들은 도대체,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짐작하지 못하는 일들은 왜 이리 많고, 들여다볼 수 없는 마음은 왜 이리 많지.


아무것도 아닌 일로 받은 이 친절은.

이제 뭘로 갚아야 하는 거지.


"갚을게요. 앞으로 계속."


"어, 그래 그래. 하하, 뭐 됐어. 내가 더 고맙지. 고차장."


동에서 서로 달린다.

실장은 다시 동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구내식당에...

계셨었구나.


오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겉만 보고 직원 몇이 눈치 없이 떠들던 말 사이.

그저. 그 흐름을 헝클기만 했을 뿐인데.


없어야 할 때 있고,

있어야 할 때 없기도.

사람.

사람.


회사 사람.


동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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