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우리의 소개팅 (1)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20대의 만남과
30대의 만남은
그 시작이
확실히 달라.
가능성만 있어도 괜찮던 그때와
가능성이 어느 만큼 실현되고 있는지 봐야 하는 지금.
우리의 만남은
어떻게 흘러갈까.
나는
너를
잡아야 할까.
놓아야 할 연緣 이 될까.
무엇이.
중할까.
소개팅 당일
"혹시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뻔한 질문에도 잠시 망설여진다.
보이고 싶은 여자와 원래의 나 사이에서의 순간적 갈등.
"제가 아는 데로 가실래요?"
"네, 좋아요."
그는 잠시 눈을 크게 뜨다가 다시 눈웃음을 짓는다.
나는 손을 모아 호- 하고 따뜻한 입김을 한번 불고 서 있던 계단을 내려와 그의 옆에 나란히 선다.
"삼겹살 먹을 건데."
원래의 나를 택했다.
"아, 좋아요 삼겹살."
강남역에서는 고기에 소주 말고는 다른 음식을 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그중에 사람이 바글거리지 않고 좋은 등급의 고기를 취급하던 곳으로 그를 안내한다.
길가로 내려와 걷기 시작하자 얇은 치마가 바람에 날린다.
패션이고 뭐고 두꺼운 스타킹을 신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발끝을 본다.
"오래. 기다리셨죠?"
분명 부드러운 어투지만 묘하게 어색하게 들린다.
"아니요. 맞춰 오셨는데. 제가 일찍 도착해가지구."
삼겹살 집엔
우리가 개시였다.
"저, 화장실 좀."
일단 화장실부터.
정면으로 바람을 맞으며 걸어온 얼굴을 재정비한다.
빨개진 볼에 손을 살짝 데었다가 마른 입술에 립스틱을 덧바른다.
-아, 엄마집에서 오느라 화장이...
많이 생략됐다.
남자도 화장은 안 하니까 뭐.
자리에 앉으려는데 그가 눈을 떼지 않고, 아니 깜빡이지도 않고 얼굴만 쳐다본다.
"뭐, 묻었어요?"
급하게 엉덩이부터 만져본다.
또 치마 먹은 건 아니겠지?
"아, 아뇨. 예뻐서요."
히익???????
모태솔로.
감정과 현실의 타이밍이 조금씩 어긋나며 느껴지는 어색한 부담감.
고기를 구우면서도 그는 정면으로 시선을 맞춘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땐 젓가락을 놓고 내 입만 쳐다본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엄마에게 소개했을 때가 떠올랐다.
어버버버 하고 대답도 제대로 못하던 남자친구를 마음에 든다고 했던 엄마의 말.
'엄마도 그렇고 네가 말할 때도 걔는 젓가락 딱 내려놓고 얘기에만 집중하더라. 괜찮은 애야. 잘 만나봐.'
초등학교 이후 남중. 남고. 공대.
회사에서도 연구원으로 개인방에서 연구개발.
"그래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건 아예 포기했어요. 소개팅만 백번은 한 것 같아요. 하하."
"네? 백번??? 백번요?"
"아, 백번까진 아니지만. 그 정도로 많이 했어요. 하하. 그런데 일도 바쁘고 해야 할 일이 많다 보니 잘 안 되가지고요."
"아. 네에..."
-백번에도 못 사귈 수도 있는 거야?
"아, 참 드릴 게 있는데."
"네??"
양껏 넣은 고기를 우물거리며 쳐다보자, 그가 주섬주섬 가방을 뒤지더니 책을 한 권 꺼내든다.
"아, 정현이... 물어보니까 책 좋아하신다고 들어서."
주니까 받아 든 주황색 표지의 책.
기욤뮈소의 구해줘.
첫 만남에서 책을 받은 건 난생처음 있는 일이다.
나는 처음으로 감정을 담아 미소를 지었다.
서류심사를
통과시킨 기분이다.
결과
"오. 그렇게 안 봤는데, 적극적이네."
정현이 입안 가득 밥을 욱여넣으며 말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기억을 더듬으려 왼쪽 위를 쳐다봤다.
"그런 것 같아."
끄덕끄덕
"그래서? 밥만 먹고 헤어졌어? 너도 처음 보는데 삼겹살. 크크 고우리답다."
-나 다운게 뭔디.
나는 이어서 그날의 일을 풀어간다.
밥만 먹었을 리가 없다.
소개팅남은 작정이라도 하고 나온 듯 2차로 맥주전문점, 3차엔 칵테일바로 나를 안내했다.
새하얀 피부에 갈색테의 안경을 낀, 곱게 자란 모범생 같던 그는 녹록지 않던 인생사를 하루저녁만에 모두 쏟아내고 있었다.
'재수했거든요.'
'아...'
'재수할 때 너무 죄송해서. 정말 두세 시간밖에 안 자고 밥도 책상에서 먹고 공부만. 엉덩이에 맨날 종기 나고 하하하'
'네...'
'장학금으로 들어가려고. 엄마 아빠... 지금까지도 고생하셨으니까. 하하. 그런데 졸업하니까 더 빡세요. 퇴근 시간도 따로 없고.'
'와... 그럼 공부만 하다가 이제는 일만 하시겠네요.'
'네, 진짜 일만요. 저희 사택 살거든요 세명? 이 한 집에서 사는데 다 얼굴도 제대로 못 봐요. 하하.'
-무슨 재미로. 사나?
나와는 정반대의 삶.
그는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궁금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저 자신의 삶과 방식을 들려주며 이런 나라도 괜찮냐는 식으로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갔다.
공부. 성실. 효. 인내.
나는 그의 이야기에서 그런 것들을 읽어갔다.
'그럼 여자친구 생겨도 데이트할 시간도 없겠네요.'
성실은 알겠고.
하지만 연애는 그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마음에 스파크가 튀어야 뽀뽀도 하지.
'아오, 아니요. 그래서 우리들끼리 맨날 얘기해요. 빨리 탈출하자고, 사람답게 살자고. 하하. 여자친구 생기면 바로 올인. 돈도 쓸 시간이 없어서 모으기만 하고. 잘할 자신 있어요. 하하하'
'아아.. 네... 그런데 왜 그동안 못 만나신 거예요? 소개팅도 많이 했는데'
'그게, 인연이 다 정해져 있나 봐요. 하하. 아마 고우리 씨 만나려고?'
으아아아…
막 군 제대하고 복학한 선배를 처음 봤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대박이네. 진영 씨. 미쳤네. 크하하"
얘기를 듣던 정현은 커피를 코로 뿜으려 한다.
"놀라지 마. 대박은 더 있어."
나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간다.
"아, 진짜? 더?"
그리고선 바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를 떠올렸다.
'이 노래, 알아요? 좋은데...'
그는 말을 마치고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표정에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때로는 이 길이 멀게만 보여도
서글픈 마음에 눈물이 흘러도
모든 일이 추억이 될 때까지
우리 두 사람 서로의 쉴 곳이 되어주리
흥얼거림을 멈추고도 잠시 우린 말없이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가사에 취했다.
수많은 사람 중에 단 둘만이 그 넓은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 같은 신비로운 기분.
분명 말도 안 되게 어색한 상황인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잔잔해졌다.
"노래를, 잘하더라고."
"우와. 애썼네에. 나랑은 말도 거의 안 하더니."
볼이 살짝 당기는 게, 나는 정현에게 그날일을 이야기하면서 시종일관 입꼬리가 올라가 있나 보다.
"그리고 마지막에 또 칵테일 한잔을 추가로 시키는 거야. 나는 먹고 나가려고 했는데."
"몇 시까지? 고우리 무리했네."
"뭐, 얘기하느라 많이 먹은 건 아닌데. 아무튼. 핑크레이디? 뭐신가가 나왔는데 뭐라 한 줄 알아?"
"뭐라 했는데. 몰라."
클라이맥스에선 잠시 뜸을 들인다.
나는 빙글거리며 아메리카노를 쪼옥 마신다.
재촉할 때까지.
"야, 빨리 말해"
"이거 마시면 저랑 사귀는 거예요."
말하는 내 얼굴이 다 붉어진 것 같다.
"푸하하 아 뭐야, 정우성이야? 크하하 “
그의 작은 눈이 커지더니 터지는 웃음을 한 손으로 막는다.
나는 커피만 마시고.
"그래서. 그래서?"
간신히 진정한 그가 다시 묻는다.
"어, 그래서 뭐, 사귀어야지."
결국 뿜는다.
"뭐 어어어?"
헤헷.
사실, 정현에게 말하지 않은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소개팅남의 얼토당토않은 칵테일 고백은 그냥 웃어넘기고 그는 집에 바래다주겠다며 함께 걸었다.
집 앞에 도착해서 여기라고 말을 하자, 소개팅 남, 김진영이 몇 번을 망설이더니 말을 꺼냈다.
”정말 죄송한데, 저 화장실 한 번만 써도 돼요?"
"네?"
시계를 한번 보고 그의 표정을 살핀다.
뻔한 수법일까.
그럴 수 있는 위인으로 보이진 않는데.
-이제 안 볼 거니까... 마지막 은혜라 치고.
“아 네 그럼 빨리 좀..."
"네 빨리. 화장실만 쓸게요"
그는 급하게 화장실을 들어갔지만 말한 것보다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많이 급했나 보네.
그렇게 그가 돌아간 후에 샤워를 하려고 물을 틀다가 문득 내가 무언가 잊고 있다는 기분이 들며 소름이 돋았다.
-뭐지. 뭐가 있었는데…
아.
어제 아침, 엄마집에 간다고 문자를 보내놓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는 시원했는데 변기가 막혔다.
일단 나중에 하자 하고 물이 차오른 변기를 뚜껑만 덮어놓은 채 엄마집으로 향했었고,
나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 어??????
“으아아아아아아!!!!"
죄 없는 이불을 주먹으로 팡팡 치며 고개를 묻고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변기 속을 떠올렸다.
우에엑.
망. 망. 개망!
아.. 아니 똥망...
“그런데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는 아무 말 없이 변기를 뚫어놓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파란 장미 한 다발이 편지와 함께 회사로 배달되었고.
우리는,
1일이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