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

먼저

by 아는개산책

모르는 사람


"오우 고우리, 그리이이인!"


녹색니트에 면바지를 입고 강의실 앞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름이 불렸다. 나는 무심코 소리 나는 곳을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런 주목을 원한 은 없었다.


"어? 머리 잘랐네? 우리 우리가 더 잘 보여!"


내 이름을 부르지만 난 아직 모르는 사람들.

반갑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아씨. 아무도 못 알아보게 잘라달라고 했는데.


며칠 전 모임에서 선배들 귀에 이름 테러를 했던 바로 다음날 미용실을 갔었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아무도 못 알아보게 엄청 짧게... 요.'


못 알아보게를 못 알아들으신 걸까.

아니, 이 정도면 충분히 짧다.


거의 허리까지 내려오던 긴 머리였다.

첫 주정과 바꾼 것은.


나는 대답 없이 몇 계단만을 오르다가 구석진 곳으로 자리 잡았다.

나를 방으로 데려갔던 유진이 다가왔다.


"너 끝나고 뭐 해?"


유진의 방에서 내가 나간 직후 바로 새 룸메가 입실했다고 했다. 두 살이 많은 다른 과 선배였다고.


"우리 룸메언니가 이따 점심 사준다는데, 같이 갈래?"

"나도?"

"아, 친구 있으면 데려오래서. 나 아직 친구 너밖에 없어."


유진이 말하며 웃었다. 그 언니가 다른 과라는 말에 한편으론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따라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그런 눈빛이었다.



아는 사람


"유진, 왔어?"


기숙사방에서 만나는 줄 알았던 언니는 기숙사 앞에서 우릴 기다리고 서있었다. 작은 키에 긴 생머리, 통통한 볼에 덧니 두 개가 귀엽게 삐져나와있었다.


"언니!"

유진도 며칠새 어떻게 가까워진 건지 반갑게 대꾸했다. 내 친구보다는 언니의 동생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가자 가자, 늦었어."

"네!"


언니는 파란점퍼에 두 손을 넣고 앞장서 걸었다.


-늦어?


유진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달려가 언니의 팔짱을 꼈다. 나도 서둘러 뒤를 쫓았다.


-어? 이 길은......


주말에 혼자 구경하다 도망쳤던, 바로 그 회관 방향이었다. 아니, 이미 회관이 눈앞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언니는 닳아서 뭉툭한 부분이 더 많은 계단을 익숙하게 올랐고 일층에서 바로 보이는, 오늘도 열려있는 그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홀로 멈칫해 봤지만, 앞으로도 뒤로도 가기 어려웠다. 다시 종종걸음으로 뒤를 따랐다.


-설마.


그때 그 방이다.

텅 비어있던 그때완 달리 꽤 많은 인원이 북적였다. 소파에 두어 명, 책상 근처에 두어 명.

그리고

봄바람에 커튼이 나부끼는 창틀에도 몇몇이 대화를 나누고 서 있다.


다만, 전부 남자였다.


-밥... 은?


배고픔은 사라졌다.

납치인가.


"오, 써라 왔어? 누구야?"

소파에 앉아있던 남자는 부드러운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껀스, 오빠. 새내기들. 얘가 제 룸메요."


언니는 활짝 웃으며 대답을 하고는 소파 옆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가 먼저 앉았다. 나는 그저 유진 옆에 붙어 눈만 굴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날의 컴퓨터가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어? 새내기?"


흩어져있던 사람들이 우리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중에도 흰 셔츠에 청바지가 바로 코앞까지 성큼성큼 걸어와 물었다. 검정 뿔테 안경을 추켜올리는 손가락이 키만큼이나 길었다.


"애기들은, 무슨 과? 아니 일단 앉어, 앉아서 얘기해."


그는 우리의 두 어깨를 말듯이 밀며 가운데로 이끌었다. 주춤주춤 미는 대로 따라 움직인 우리는 소파에 하나, 둘 순서대로 앉았다. 앉는 자세 그대로 푹 꺼지는 낡은 소파였다.


유진의 표정을 보니 미소 짓는 그대로 얼어있었다. 땡 하고 녹여주고 싶었지만,

정문 쪽에 낯익은 물건 하나가 굴비 엮듯이 매달려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저거는...?


분홍색 슬리퍼 한 짝.

그 뒤에 붙어있는 하얀 종이에는 회색후드를 코까지 올려 입은 사람 얼굴이 그려져 있다.


-나?


분명,

WANTED

라고

씌어있다.


나는 순간적으로 입을 가리고 반대쪽 창문으로 고갤 돌렸다.


-먼 채팅이 죽을 죄여? 아니. 아직 모를지도 몰라.


창가에 서있던 한 사람이 나와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움직이다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멈췄다.

그도 정지했다.


우리 둘.

같은 것을 안다...?


먼저 고개를 돌렸다.


오늘의 나는 회색후드가 아니다.

머리도 잘랐다.

알아볼 수 없다.


... 알아볼 수... 있어?


양볼이 달아오른다.


-자석이야? 왜 자꾸. 하...


입을 가리고 앞을 보며 자세를 고치는데 멍한 표정의 서라 언니가 눈에 들어왔다. 언니도 내가 아닌 창문 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써라!"


뒤통수에 있던 낯익은 목소리가 언니의 이름을 부르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진!"


그녀의 표정이 달처럼 환해진다.

그리고 양쪽 귀가

빨갛게 물든다.


먼저 알고 지낸 사이다.


나는.

WANTED

고우리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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