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k Minjoon 박민준 : X⟫을 관람하며

함영서

by 마실 MaSill

: 문학적 서사와 회화적 감각이 교차하는 순간을 중심으로








《Park Minjoon 박민준 : X》는 2022년 12월부터 2023년 2월까지 갤러리 현대에서 진행된 전시로, 작가 박민준의 회화, 조각, 드로잉을 포함한 총 4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박민준이 집필한 신화적 원형성을 품은 서사와 고전적 아름다움을 지닌 도상, 그리고 작품 제작의 개념적 장치와 치밀한 방법론을 종합적으로 조망한다. 요컨대, 그는 문학 속 세계관을 회화적 언어로 번역하고, 다시 그 회화를 통해 문학과 회화 간의 유기적 조화를 실험하는 작가다. 박민준은 오랜 시간 서구 신화와 고전 회화를 본인만의 감성으로 재해석해왔고, 2010년 이후로는, 자신이 직접 집필한 소설을 회화의 기반으로 삼으며 언어와 이미지의 교차점을 탐구해 왔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작가가 꾸준히 시도하고 연구해 온 ‘글과 이미지의 상호 작용’이라는 오랜 탐구의 집약이라 할 수 있다. 본 비평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문학적 서사와 회화적 표현의 조화가 이번 전시에서 어떻게 감각적 경험으로 전환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X》는 박민준이 회화적 재현을 문학적 서사로 확장해 온 궤적의 총체이자, 이미지와 텍스트의 경계를 실험하는 장으로 읽힌다. 타이틀 ‘X’는 로마자로 숫자 10을 의미하며, 작가의 열 번째 개인전이라는 기념적 의미를 지닌다. 동시에 ‘X’는 미지의 가능성을 상징하는 기호로, 과거의 연작과 새로운 시도가 서로 교차하며 형성하는 작가적 세계관의 좌표를 암시한다. 전시는 이를 구현하기 위해 회화 작품뿐 아니라 작가의 문학적 작업물들을 전시 공간 안으로 끌어들였다. 예를 들어, 박민준이 집필한 두 편의 국문 소설 『라포르 서커스』(2018)와 『두 개의 깃발』(2020), 새로 발간된 『라포르 서커스』의 영문판, 그리고 작품 속 캐릭터에 맞춰 작성된 모놀로그 등이 함께 제시되었다. 또한 전시의 후반부에서 볼 수 있는 <콤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 작품의 경우, 감상을 돕는 짧은 글의 책자가 함께 구성되어 있다. 이는 16-18세기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즉흥극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초상화의 장르로 재해석한 작품의 특성을 파악하고, 더 입체적인 감상을 가능케 한다. 이 같은 구성은 단순한 참고자료가 아니라, 회화적 이미지를 읽는 새로운 문맥으로 작동한다. 즉, 텍스트와 이미지가 서로의 의미를 보완하며, 관람자는 작품을 ‘읽는’ 동시에 ‘보는’ 다층적 감상 경험 속으로 초대된다.


그러나 본 비평은 전시 서문이나 기획자의 설명에 기대기보다는, 관람자의 시선에서 체감되는 감각적 현실을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결국 전시란 작가와 관람자가 직접 마주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는 텍스트에 남지만, 예술적 진실은 관람자의 체험 속에서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X》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문학적 서사를 시각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과정이 ‘공간의 언어’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관람자의 시선에서 전시를 분석할 때 가장 직접적으로 작동하는 요소는 ‘공간’이다. 공간 구성, 동선, 전시 디자인, 작품의 배치와 높낮이, 가벽과 조명, 그리고 감상 경험을 보조하는 부가적 디자인 요소까지 모두 감상의 구조를 결정짓는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갤러리 현대의 공간적 제약을 작품이 드러내는 세계관적 설명으로, 그리고 작가적 의도로 흡수한 방식이다.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는, 좁고 불편한 동선을 역으로 감정의 흐름을 조율하는 장치로 활용했다. 1층 로비의 전경은 평온한 색조와 조명으로 관람자를 맞이하고, 위층으로 오를수록 색채와 조도가 점점 강렬해지며 정서의 밀도를 높여간다. 마지막으로 지하층에 전시된 <콤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 연작은 어둡고 응축된 조명 속에서 감정의 긴장감을 절정으로 끌어올리며, 문학적 서사와 회화적 이미지가 하나의 무대처럼 겹쳐지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공간의 물리적 한계가 오히려 작가의 서사를 시각적으로 심화시키는 장치로 전환된 셈이다.


이 지점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갤러리 현대가 보여온 이전 전시들과의 대비이다. 같은 공간에서 진행된 타 작가들의 전시의 대부분이 ‘감각의 평면성’에 머무르곤 했다. 특히 추상 회화나 유사한 화면 구성이 반복되는 전시의 경우, 이 복층 구조의 동선은 감상의 집중도를 분절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곤 했다. 때로는 1990년대에 유행한 입체 시각 이미지, 흔히 ‘매직아이’로 불렸던 오토스테레오스코피(autostereoscopy)를 보는 듯한 시각적 피로를 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민준의 전시는 그 불편함을 ‘이야기의 리듬’으로 바꾸었다. 관람자는 위층으로 이동할수록 서사의 밀도와 감정의 강도가 상승하는, 마치 한 편의 장편 소설을 읽는 듯한 리듬을 경험한다. 즉, 공간적 제약이 감정의 상승선을 설계하는 도구로 기능하며, ‘공간의 체험’을 ‘서사의 체험’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이러한 공간적 서사가 정점에 다다를 때, 전시는 색과 질감, 그리고 언어의 관계를 통해 감정의 점층적 변화를 완성한다. 초반의 화면은 담담하고 절제된 색채로 시작해, 후반으로 갈수록 얇게 칠해지거나 두꺼운 마띠에르가 느껴지는 등, 붓질의 흔적과 질감이 두드러지며 감정의 폭발을 유도한다. 이 변화는 단순히 시각적 강도의 차이를 넘어, 회화적 감상에서 언어적 사유로, 다시 감각적 몰입으로 이어지는 ‘정서의 서사’를 형성한다. 전시는 문학과 회화의 조화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회화의 감상 속에서 그것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도록’ 기다려주는 태도를 취한다. 그 결과 관람자는 작품을 ‘읽는 자’가 아니라, 회화적 언어 속을 직접 ‘겪는 자’로 존재하게 된다. 결국 《X》는 회화의 ‘읽힘’보다 ‘체험’에 가까운 감각적 리얼리티를 구현하는 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다. 전시의 균열은 ‘부족함’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에서 비롯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시장 초입의 벽면 색이다. 파스텔 톤의 연한 노란색 벽은 관람객을 부드럽게 맞이하고, 공간 전반에 따뜻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부여하려는 의도를 엿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 색은 박민준 회화가 지닌 고전적 긴장감과 묵직한 질감, 그리고 화면 속 인물들의 응축된 내면성을 흡수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포장’하는 역할을 해버렸다. 결과적으로 작품이 지닌 정신적 다층성은 약화되고, 표면적인 온기만이 강조되었다. 특히 그의 회화 특유의 정제된 붓질과 일본적 유화 풍의 밀도감이 이 색과 맞물리며 다소 상업적인 인상을 강화했다 — 여기에는 ‘갤러리 현대’라는 공간이 본래 지닌 기업적 이미지 또한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간이 품은 세련된 브랜드성이, 역설적으로 작품의 ‘고전적 서사’와 부딪히며 진정성을 흐릿하게 만든 셈이다.


중간층의 화이트 큐브 공간 역시 전시의 리듬을 다소 끊어내는 지점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대비는 시각적 리듬을 환기시키며 작품의 호흡을 조정하는 장치로 기능하기도 했다. 즉, 감상의 맥이 잠시 끊기는 그 지점에서 오히려 관람자는 자신이 방금 지나온 서사를 되짚으며, 박민준의 회화가 지닌 이야기적 결을 새롭게 체감하게 된다. 다만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박민준의 서사가 요구하는 감정의 농도와 전시 공간이 제공하는 무대적 환경 사이에는 여전히 미묘한 간극이 존재했다. 그의 서사는 내면으로 고요히 몰입하는 리듬을 필요로 하지만, 공간은 그 흐름을 완전히 품기에는 다소 투명하고 세련된 구조를, 특히나 현대에서 요구되는 미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 불일치는 전시의 완성도를 손상시키기보다는, 오히려 ‘현대적 전시장’과 ‘신화적 서사’가 부딪히는 경계면을 드러내는 흥미로운 긴장으로 남았다.


결국 《Park Minjoon : X》가 내세운 목표—즉, 작가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고, 고전과 동시대, 회화와 문학,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유동적으로 넘나드는 예술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기획 의도—는 상당 부분 성공했다. 작가가 구축해 온 서사는 이제 개별 작품의 완결성에 머물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적 우주’와 같은 기능을 한다. 화면 속 인물과 상징들은 서로를 비추며 관계망을 형성하고, 그 관계망은 다시 관람자의 내면에 반사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생성한다. 이러한 확장성 덕분에 관람자는 더 이상 한 장의 회화를 ‘읽는 자’에 머물지 않고, 그 회화가 품은 세계 안으로 걸어 들어가 스스로의 감정과 기억을 중첩시키는 공동 서사자가 된다. 전시는 점진적인 시각적 자극과 감정의 리듬을 통해 관람 경험을 ‘읽기’에서 ‘겪기’로 전환시켰으며, 문학적 사유와 회화적 감각은 그 안에서 감각적∙사유적∙정서적 층위로 얽히며 유기적으로 호흡했다. 결국 《Park Minjoon : X》는 한 개인의 미학적 실험을 넘어, 언어와 이미지가 상호 침투하며 새로운 서사를 빚어내는 하나의 감각적 실험장이었다.


더 나아가 이번 전시는 문학과 회화의 경계를 단순히 병치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두 매체의 본질적 속성을 ‘번역’과 ‘전이’의 관계로 탐구한다. 이때 회화는 더 이상 시각적 결과물이 아니라 언어 이전의 감정, 즉 말로 설명될 수 없는 정서의 원형으로 작동한다. 반대로, 작가가 집필한 텍스트는 이미지를 해석하는 지침이 아니라, 오히려 또 다른 회화적 차원을 열어젖히는 열쇠가 될 문장으로 변모한다. 《Park Minjoon : X》는 그리하여 오늘날 ‘회화’라는 장르가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는 이유—즉, 회화가 언어를 대체하거나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새로운 감각적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해 보였다. 이는 단순한 작가 개인의 성취를 넘어, ‘서사적 경험의 장으로서의 전시’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례로 남는다.










⟪Park Minjoon 박민준 : X⟫

박민준 개인전

2023. 12. 21 - 2023. 2. 5

갤러리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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