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달콤한 인생>
그냥, 이라고. 차라리 논리 없어 납득될 때가 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네가 뭐 때문에 싫어졌는지. 그래서 우리가 왜 때문에 틀어졌는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그 한마디 듣고/하려 별의별 짓을 다하는데, 현실로 와보니 그만큼 추한 게 없다. 이유야 만들기 나름이고,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그냥 싫은 걸 어쩌나. 태초에 이유 같은 건 없다.
상당수의 싸움은 논리로부터 야기되지 않는다. F건 T건 T발 C건, 사람 싫다는 데 논리가 어디 있나. 앞서는 건 대개 감정이다. 그렇게 편이라는 게 나뉜다. 나는 그냥 네가 싫기로 하고, 너는 그냥 내가 싫기로 한다. 이에 반한다면 모두 주적으로 분류한다. 이분법에 소속된다.
<달콤한 인생>을 봤나. 그렇다면 강 사장과(김영철) 선우를(이병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끼던 피고용주와 섬기던 고용주였던 둘이 서로를 못 죽여 안달이다. 둘의 시니컬한 다름은 그들이 뭘 잘못했는지, 뭐 때문에 싫어졌는지. 그래서 왜 때문에 틀어졌는지를 상상하게 한다. 그러고 보니 둘은 아끼고 섬기던 사이였다기엔 너무 다르다. 늙음과 젊음. 냉정함과 따뜻함. 등등등. 그래서 그랬겠거니라고 상상하게 한다.
그렇게 시간을 쌓는다. 오늘의 그래서인가가 내일은 그래서일지도 모레는 그래서였어로 증식한다. 하루에 하나씩 증식한다. 네가 싫은 이유가 이렇게나 많다니, 안심한다. 그래서 우리는 멀어졌다, 틀어졌다, 헤어졌다. 생각한다. 명료한 이유가 있어서라 생각한다. <달콤한 인생>은 미련한 의구심을 확신하기 위해 시작했으나 뜻밖에 결말로 다다른다.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도대체 뭐 때문에 흔들린 거냐.
둘은 같은 말을 반복한다. 서로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이나, 서로 답을 알고 있다. 그냥, 이라고. 그냥, 희수가(신민아) 너무 이뻐서. 그냥 자존심이 너무 긁혀서. 그냥,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다. 그게 너무 유치해서, 그렇다고 돌이킬 수는 없어서. 그래서, 입 밖으로 꺼내기엔 부끄럽다는 걸 알고 있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먼저 솔직해진 건, 강 사장 쪽이다. 그딴 거 말고 진짜 이유를 대보라지만, 강 사장은 진짜 이유를 이미 댔다. 그래서, 화가 났다고. 그래서, 너를 죽이려 했다고. 그래서, 삐졌다고. 그냥, 그래서 그랬다고. 분명 베스트셀러라길래 산 책이 도무지 읽을 수 없는 문장으로만 가득 차 있다는 당혹감처럼. 선우의 표정에는 허망함만 산재한다. 정말 그냥, 인지.
친구와 연인과 부모와 상사와, 정치와 시사와 연예와 스포츠와. 등등등. 그냥, 싫어서.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 그냥, 짜증 나서. 그냥, 빈정이 상해서. 그냥, 나랑 반대라. 그냥, 그런 거 같아서. 그냥, 다들 그러길래. 그냥, 우리가 져서. 키보드로 싸우고 입으로 싸우고 주먹으로 싸우던 이유들이 대개 그냥은 아니었나.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다는 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말로 들렸을지. 그만큼 싸움의 이유들은 대개 얇다.
다 큰 어른들은 그냥, 싸운다.
다 큰 어른들도 그냥, 싸운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