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아침, 이라는 단어가 주는 발랄한 어감과 달리. 시끄러운 휴대폰 알람과 목 늘어난 티셔츠가 지겹다. 가벼운 몸으로 가벼운 걸음을 딛다 보면. 친절하기로 소문난 우리 동네 빵집 사장님이 반갑게 안부를 묻고, 나는 그 안부를 반갑게 맞고. 자기 몸만 한 가방을 인 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눈썹을 씰룩씰룩 장난을 치고. 아이가 웃고, 누가 볼까 수줍은 서로의 손 인사에 아쉬워하고. 다시 내 갈 길을 가고. 출근을 하면 등교를 하면 좋은 아침이에요, 라고 해야 하는데. 그런데 왜 내 아침만 삭막하고 공허해. 왜.
그래서, 그러니까 도망가고 싶어. 영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주인공, 이이즈카(카라타 에리카)는 아마도 첫 직장이었던 광고 회사서 적응을 못해 금세 그만뒀다. 그 대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여기나 저기나 노고가 있고 진상이 있다. 퇴사, 라니. 그런 큰 결심을 해놓고는 나는 또 왜 제자리걸음인가. 부모님에게는 뭐라 해야 내가 덜 한심해지고 , 입사를 축하했던 이들에게는 뭐라 해명해야 하나. 울 힘도 없고 웃을 일은 더 없다. 새롭게 삭막하고 공허한 아침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
어쩌다, 우연히 어느 날. 중학교 동창이었던 오오토모(이모우 하루카)를 만난다. 어색히 통성명을 확인하고, 어색히 반가워하고, 어색히 다시 만나, 어색히 헤어진다.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다 그들이 어색하지 않았던 때처럼 되돌아간다. 어색한 듯, 어색하지 않은 듯. 이이즈카는 속내를 털어놓고 오오토모는 속내를 들어준다. 울고 싶을 때 울 힘이 생기고, 웃을 일이 조금씩 많아진다. 삭막하고 공허하던 아침들이 하루하루 덜 삭막하고 공허해진다.
이 줄거리가 내 이야기인가 싶은 이들이 한국 사회에 많다. 애써 쌓아 올린 과거들이 막연한 미래 앞에 무너지고, 만만찮은 현실에 쌓아 올린 과거들이 하찮아진다. 그리 많지도 않은 나이를 붙잡고 막막해한다. 뭘 해야 할까, 뭘 해야 즐거울까. 까지는 아니더라도. 뭘 해야 먹고 살까라던지 뭘 해야 아침이 공허하지 않을까라던지. 나는 도대체 뭘 해야 할까. 나는 도대체 뭘 한 걸까. 나 어떡하냐 진짜.
성장통이라고들 불리는 이 시간이, 출구 있는 긴 터널일 거라고들 말하는 이 시간이 시종일관 속수무책으로 공허하다. 그렇다면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가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어요. 로 귀결되는 위로에 지쳤다면, 그렇다면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다. 이이즈카에게 찾아온 변화라고는. 어쩌다, 우연히 만난 오오토모와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말하고 헤어지고. 만나고 들어주고 헤어지고. 만나고 털어놓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고의 반복뿐이다. 만나면 어색하고 헤어지면 공허하던 시간들이 만나면 즐겁고 헤어지면 따뜻한 날들로 변해간다. 그렇게 활짝 웃는 아침까진 아니더라도, 미소 정도는 머금을 수 있는 아침을 맞기 시작한다.
공허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덜 공허해지지 않아서 숨통이 조금씩 트인다. 숨통을 조금씩 트이게 해주는 게, 미사여구나 명언이나 자기계발서나 아프니까 청춘이라서가 아니라 사람이라서. 그래서 사람이 다시금 반갑다. 털어놓는 이이즈카가 그래서 반갑고 들어주는 오오토모가 그래서 반갑다.
아침, 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질감에 지쳤다면.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세상이 밉다면. 어쩌다, 우연히 어느 날 소개받은 영화를 보는 것도 썩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차가운 조언만큼 따뜻하고 은밀한 위로도 필요한 거라고, 사람 사는 세상은 그런 거라고. 좋은 영화는 좋은 힌트를 준다. 5월 29일이면, 이이즈카 같을 사람에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