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짓말하면 엉덩이에 뿔 난다
솔직하다. 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솔직하게 말하고, 솔직하게 쓴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좋게 말해 솔직이고 솔직히 말해 직설이라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솔직이건 직설이던 나는 그 소리가 듣기 좋다. 그럴 때면 그짓말할 때 바로 티나서 그렇다 얼버무리지만 하나가 더 있다. 그건 예의다.
솔직하지 않다는 건, 상대를 기만하는 행위다. 그에 반해 솔직하지 못한 이유라는 건, 내 치부를 감추기 위해.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내가 이상해질까. 등등등 부끄러운 마음을 이기적인 방법으로 감추기 위해 애용된다. 나쁜 마음을 감추기 위해서도 있지만. 오늘 그건 빼자. 명백히 나쁜 놈에 대한 글은 세계 어딜가도 껌보다 쉽게 구할 수 있다. 우리가 괴로운 건, 대개 착한데 나쁘고 나쁜데 착한 마음이라 욕을 할지 말지 모르겠다는 거잖아.
그 사람의 마음을 백날 까보고 뒤집어봐야 우리는 알 수 없다. 기분 따라 재단할 뿐이다. 솔직한 대화가 그래서 필요하다. 어떤 관계던 예의가 가장 기초적인 거라고, 나는 그래 믿는다. 인간 대 인간으로의 예의가 관계상 관례보다 먼저다. 처음 보는 사람이던 맨날 보는 사람이던 간만에 보는 사람이던 예외는 없다. 처음 보면 당연히 조심해야 하고,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고, 정수리가 보이게 인사해야 한다는 건. 나도 알고, 너도 아는데. 솔직해져야 한다는 건, 자주 잊는다. 그건 거의 본능이라, 그리고 대개 실시간이라 제어가 잘 안된다. 성인군자마냥 씨부리는 나도 글 앞에서나 이렇다.
살다보면 솔직해지지 못할 때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건 발생이다. 사건사고 발생에 그 발생 말이다. 솔직하지 못했던 솔직하지 않았던 사건사고가 발생했다면. 그다음 수순은 수습이라는 걸, 우리는 상식이라 배운다. 문명화된 인간은 경찰차를 부르고 구급차를 부르고 소방차를 부르고 렉카를 불러 수습하려고들 안달복달 애쓴다. 솔직하지 못했다면 솔직하지 못한 것에 대해 솔직해져야 한다. 아름답지 못한 것을 추하지 않게 만회할 수 있는 건, 인간만의 특권이다. 무엇보다 서로던 한쪽이던 찜찜한 상태로 꿍해있는 건, 서로를 위해 좋은 게 아니다. 그런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처음 봤건 오래 봤건 간만에 봤건. 얘가 처음 봤는데 왜 그래. 얘가 낯설게 왜 그래. 얘가 잘나가다 왜 그래. 얘 진짜 오늘 왜 이러니 랄지라도 나는 솔직하지 못한 것에 대해 솔직해지려 한다. 매번 나도 쪽팔리고 얼굴 빨개지고 엄지손가락 옆 살집을 뜯고 그걸 들킬까 조마조마해하지만. 그래도 나쁜 놈보단 찌질한 놈이 나는 더 편하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보다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솔직하다, 라는 말이 그래서 듣기 좋고 고맙다.
솔직해져야 다음, 이라는 게 있다. 언제 어떻게 이어질지, 어떻게 얼마나 오래 쌓아올린 인연을 솔직하지 못하다 망쳐버리면.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나 못생겼으니까 헤어져보다 아프다. 솔직하지 못한 건, 일정 시간이 지났을 때 만회의 기회라는 게 없다. 그건 신뢰의 문제라는 걸, 나도 알고 너도 안다. 솔직하지 못한 것뿐인데, 솔직하지 않았다고 엎어지고 그르쳤던 과거들을 붙잡아야 하는 시간들은 시종일관 속수무책으로 한스럽다.
솔직한 삶, 이라는 건. 대개 부끄러움을 감추려다 부끄러움을 드러내야 하는 작업과 같다. 그게 더 부끄러움을 알면서도 나는 월간행사 주기로 부끄러워진다. 글 앞에 있는 나는 참 똑똑한데, 네 앞에 있는 나는 참 멍청하다. 나는 그냥 솔직해지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내 실체에 대해 자주 까먹고 가끔 켕긴다. 솔직하다, 라는 말에 홀라당 넘어가 버리는 내가 아메바인가 싶다.
얼마 전에 나는 솔직하다, 라는 류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정말 그런 건지, 나는 자주 상기해봐야 할 거 같다. 아무래도 나는 그냥 솔직해지고 싶은 사람 같은데. 그래도 증명하고 싶다. 혹시 내가 솔직하지 못하다면 이 글을 보여주며 좌우로 뺨을 후려도 좋다. 근데 조금만 살살 때려라.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0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