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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제경 May 24. 2024

좀 쉬자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산 건가

나른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도 좀 쉬어야겠다. 뭔가 다 열심히 해보려, 진심으로 해보려 하는데. 그게 맘처럼 따라주지 않는다. 따라주지 않는 정도가 아니고, 실은 그냥 뭐가 아무것도 안 된다. 식욕이 떨어지고 수면이 어렵고 그래서 살이 빠지고 맨날 새벽 4시에 잠든다. 아,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아, 뭐가 잘못된 건가. 아, 뭐가 부족한 건가. 아, 뭐야 씨발.


최근에 하루 기분 좋은 날을 보냈다. 그리고 그날 아부지 가게에 들렀다. 500 한잔만 하려다 소주 5병에 짬뽕을 깠다. 이런저런 교훈을 듣고 다짐을 하고 좋은 시간이었다. 술을 그만큼 마셨음 곯아떨어져야 하는데, 잠이 안 온다. 설거지해놓고 첫차 타고 집에 갔다. 아부지가 좀 쉬란다.


나는 그 말을 참 싫어한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가 불쌍하다며 이런 말을 자주 한다. 그것참 불쌍할 이유도 많다며 됐다 그러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그게 좀 걸리나보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나는 여가 없이 일만 하고 유일한 여가는 술이고 입대 당일까지 일하다가 늦게 간 군대에서, 얼마있음 전역한다. 상황만 보면 쉴 명분은 충분하다. 그래도 난 쉬기 싫다. 아직 세상 톱니바퀴에 정상작동한다는 느낌을,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난 쉴 수 없고, 일하는 게 되려 재밌다며, 새로운 아이템을 들이밀었다 여행이나 가라 퇴짜맞았다.


강박적으로 사고한 건 아닌가. 결론에 사로잡혀 중요한 것들이 사소해진 건 아닌가. 아니 나 씨발 그거 아니라니까. 분노로 잠 못 들다 보면 어느순간 객관화가 이루어진다. 누차 말하지만 객관화는 잔인하다. 내 문제점이 드러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내 환경이 원망스럽고, 반전을 이루지 못한 내가 밉다. 자기연민에 빠지게 될 내가 꼴사납다. 또 내가 다 망쳤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무서워 기적이나 바란다.


빠르고 그래서 급하고 사무적이고 명료하다. 가 일을 하며, 군대에 있으며 내가 더 인정받을 수 있는 동력이었는데. 그게 내 발목을 붙잡을 줄 몰랐다. 남 좋은 일 하다 나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심정이다. 문제점은 알았는데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겠는데 그래도 그러기 싫다. 아부지 말 따라 좀 쉬어야 하나 싶다가도 그러기 싫다. 물리적인 시간이 가장 보편적이고 효력이 좋다는 건, 세상 사람들 다 아는데 나만 싫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던데, 나는 고쳐질 수 있을지 막막하다. 막막해도 방법이 그것뿐이라 별수가 없다. 아, 나는 당최 어찌 산 건가. 아, 나는 당최 어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어떻게 산 건가에 대뇌의 전두엽이 뽑힐 거 같다.


전 국민이 힐링에 미쳐있던 그 광경이 꼴사나웠는데. 괜찮아요, 로 끝나는 문장들을 비웃었는데. 후벼파는 노래들을 술 마실 때만 들었는데. 나 정말 쉬어도 되는 건가. 쉰다는 건 어떤 거지? 그냥 넷플릭스 틀어놓고 누워있으면 되는 건가? 줄담배가 끊기질 않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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