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의 마지막 책 <인생은 순간이다>
나는 취해있지 않은 사람이 좋고, 취해있는 사람은 싫다. 취해있다는 건, 어떤 기운으로부터 정신이 흐려져 몸을 가눌 수 없게 됨을 의미한다. 취해있지 않다는 건, 말 그대로 반대다. 술을 마셔야만 취하는 게 아니다. 서점만 가도 술 한 방울 없이 드러누워들 있는 책이 널렸다. 책이건 사람이건 영화건 음악이건 뭐건. 취해있는 것들은 사탕 발린 말만 반복하는 앵무새와 같다. 주사를 부리고, 타인에 폐를 끼친 뒤 자각하지 못하는 건 더 악질이다. 쉽게 말해 똥 뿌리고 다닌다.
취해있는 것들이 널렸다는 건, 취해있는 것에 열광하는 세상이라는 얘기다. 자의건 타의건 도무지 취하지 않기 힘든 세상이다. 취해있지 않은 사람은 그래서 갈수록 귀하다. 그들은 자신의 밑바닥을 똑바로 볼 줄 안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득이 될지를 냉정히 판단할 줄 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좋고, 그래서 요즘은 꼰대라 싸잡히는 이들이 좋다. 김성근과 그의 저서 <인생은 순간이다>가 그래서 좋다.
야구는 기본적으로 승부다. 야구에서 많은 인생을 배운다면서, 정작 인생 역시 승부라는 자각은 없다. 이기고 지고를 따지는 건, 미련하거나 도의적으로 어긋나는 것이라 한다. 허나 인생에서도 승자와 패자는 분명히 나뉜다. 숫자로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승부가 아니라던 이들도 자신이 이겼는지 만큼은 분명히 확인하려 든다. 이긴 듯하면 축배를 들고, 진 듯하면 고배를 든다. 달건 쓰건 취하면 편하고, 편안함으로의 귀속본능은 말 그대로 본능이다.
취해있는 건 편하다. 그 나른한 기분만으로 세상을 다 이긴 듯한 효능감이 있다. 허나 취하면 금세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 눈을 한 번 깜빡, 번쩍 뜨면 또다시 불편해진다. 그래서 태초에 승부 같은 건 없다고 무마시키기로 한다. 그냥 배가 안 고픈 것을 세대 차이로 귀결시키거나 분쟁시키고, 핑계를 해명으로 궤변화시킨다. 그 결과, 아름다운 이야기는 천지삐까리인데,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는 꽁꽁 싸매 바다로 던져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다. 승부라는 말만 들어도 없던 알레르기라도 만들어내 발작한다.
그런 이들은 약하고, 이길 수 없다고 김성근은 말한다. 김성근은 언뜻 재수 없는 소리만 골라 한다. 그래서 늘 타깃이 된다. 꼴찌팀을 우승팀으로 만들고도 짤리고, 김성근의 야구는 재미없다 까이고, 감독의 욕심이 팀을 망쳤다며 깎인다. ‘야신’으로 불렸던 김성근이 고집불통 ‘꼰대’로 추방당하는 건, 언제나 순식간이었다.
2023년. 김성근이 다시 한번 감독을 맡으며 판은 바뀐다. 은퇴선수와 방출선수, 아마추어 선수로 구성된 JTBC 예능 <최강야구> 감독으로 부임한다. 사람들은 김성근도 결국 TV 예능 프로그램이냐며 비난했지만, <최강야구>는 승률 7할을 달성하지 못하면 폐지되는 살벌한 예능 프로그램이다. 웃자고 모인 예능이나 죽자고 이겨야 한다. 죽자고 이겨야 하는 상황에서, 과거의 영광에 취해 책임감보다 자존심이 앞선 선수단에 ‘돈 받으면 프로다’라며.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지옥훈련에 동행한다. 언제나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 다운 방식이다.
승부가 아니라던 이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나. 취해있는 자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나. 결기 어린 응원에 드러누워 있거나, 결기 어린 응원을 씨부리며 드러눕히고 있지는 않은가. 과거를 한탄하며 현재를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여든이 넘은 나이에 마지막 책이라며, 내놓은 <인생은 순간이다>는. 술들을 깼음 하는 바램으로 세상에 나오지 않았나 싶다. 술을 누가 어떻게 맥였던 넙죽 받아먹은 건 나다.
김성근의 말과 글은 비관적이지만 낙천적이다. 근본은 비관적이지만 해결해 나갈 방법을 찾을 때는 낙천적이다. ‘어차피’ 속에서도 ‘혹시’라는 가능성을 무궁무진하게 생각하고 그것들을 ‘반드시’로 만든다. 김성근은 취해있지 않은 사람이다.
술이 좀 깨는 거 같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9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