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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제경 Apr 11. 2024

대학 가면 하고 싶은 거 해

4월에 보기 좋은 영화 <델타 보이즈>

3월이 지나고 4월이다.

1년의 시작은 3월인 거 같은데, 4월은 1년의 30%가 지나있다. 3월은 그래서 설레고, 4월은 그래서 묘하다. 내 생각에 가장 설렜다 묘할 사람들은 대학 신입생들이 아닐까 싶다. 대학 가면 살 빠진다. 여자/남자친구 생긴다. 예뻐진다. 등등등. ‘대학 가면 하고 싶은 거 해’ 따위로 귀결되는 도시전설들을 철썩같이 믿어온 공산이다. 4월쯤이면, 이제 그 도시전설들이 알고 보니 개구라라는걸, 차츰차츰 눈치챌 때다.


배신감에 휩싸였을 이들에 <델타 보이즈>를 권한다. 남성 4중창 경연대회를 준비하는, 그룹 ‘델타 보이즈’는. 장이수 닮은 사과머리와 엄태구 닮은 레게머리. 병지머리와 더벅머리로 구성돼 있다. 보고만 있어도, 당장 민원이라도 넣어버리고 싶은 이 4인방이. 아쉽게도 평범한 20대들의 자화상이다. 그렇단들 낙담하지 마라. <델타 보이즈>는 지독한 자기객관화와 더불어 ‘그럼에도’를 배울 수 있는 영화다.

 

‘노래가 하고 싶어서’로 모인 델타 보이즈의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면, 영 고상하지 못하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산다는 건, 그들이 보여주듯 말처럼 그리 고상한 일이 아니다. 여름에 겨울 양복을 입어야 할 수도, 겨울에 반팔 와이셔츠를 숨겨야 할 수도, 짜장면 대신 짜파게티를 짬뽕 대신 진짬뽕을 먹어야 할 수도, 에쎄 대신 디스를 펴야 할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처럼 차고에서 시작하면 간지라도 영 챙길 텐데, 여긴 한국이다. (남의) 공장과 (남의) 옥탑방. (애들) 놀이터가 델타 보이즈의 연습실이다. 연습하라 모였다 하면 겸사겸사 술이나 퍼마시는 4인방은 서로가 쪽팔리기도, 원망스럽기도 그래서 싸우기도 한다. 이런 <델타 보이즈>를 보고 있자면, 브이로그가 따로 없다.


<델타 보이즈>의 시나리오에는 대사가 없다. 감독은 상황만을 부여하고, 대사는 배우의 애드립이 채운다. 어쩔 수 없이 배우들의 자전적 이야기가 다수 함유돼 있다는 이야기다. 장이수 닮은 사과머리, 이웅빈은 실제로도 미국에서 14년을 살았지만 스스로를 이도 저도 아닌 이민 실패자라 칭한다. 엄태구 닮은 레게머리, 백승환은 실제로도 잘 참고 자신감이 부족한 성격이라 한다. 병지머리, 신민재는 실제로도 배우가 꿈임을 말하기 창피해 장래희망 칸에 늘 거짓말을 했다 한다. 더벅머리, 김충길은 실제로도 주변 형들에 오지랖이 넓다 한다. 그러니까 <델타 보이즈>는 하찮기 짝이 없는 평범한 20대들의 사연을 끌어모아, 허구의 이야기로 완결시켰다. 제법 간지가 나는 포장이다.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되냐면. 망한다.

 

남성 4중창 경연대회는, 참가자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취소된다. 슈퍼스타K나 K팝스타에 나가 우승을 하고, 가수로 데뷔하고 그것도 아님. 조그만 바에서 열렬한 호응을 받으며 돈은 없어도 유명세는 있는 인디그룹으로 부상한다던가. 그런 한국식 클리셰에서 <델타 보이즈>는 열외다. 그들은 여전히 (남의) 옥탑방에서 짜장면 대신 짜파게티를 끓여먹고, (애들) 놀이터에서 애들도 안 쳐다보는 노래를 부른다. 양복을 쫙 빼입어도 민원을 유발하는 비주얼로 박자를 다 틀리며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이 망했다고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2017년. <델타 보이즈>가 개봉하고, 평단은 찬사를 보낸다. 그럼에도, 그들은 간지가 나기 때문이다. 관객의 비극이, 영화의 희극으로 투영된 덕이다. 영리한 감독 덕이다. 감독이 델타 보이즈를 슈퍼스타K 우승이나, 유명한 인디그룹의 부상으로 올려다 놓는 것이 아닌, 여전히 하찮기 짝이 없는 그룹으로 놔둔 덕이다. 그들의 짜파게티는 지겹지만, 정겹고. 노래는 허접하지만, 듣게 된다. 대학 가면 하고 싶은 거 하라 했지, 다 잘 된다고 한 적은 없다. 영화에서조차 배신감을 느껴야 했던 관객들에 <델타 보이즈>는 끝까지 하찮기 짝이 없는 델타 보이즈로 위로한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대학 가도 하고 싶은 걸, 다하진 못한다. 그렇다는 사람이 있다면 경계해라. 장사치다.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건, 델타 보이즈처럼 허술하고, 힘들고, 고상하다 못해 당장 민원이라도 넣어버리고 싶은 비주얼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모습을 멋있게 본 누군가는 델타 보이즈에 기회를 주기 마련이다. 당신이 <델타 보이즈>를 멋있게 본 것처럼 말이다.

 

도전하는 20대에는 일종의 ‘봐주기’가 존재한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거 해라. 열심히.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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