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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꺼꿀이 Jan 13. 2022

90년대생의 지극히 사적인 고찰

2022년 호랑이해 버전

 나는 90년대에 태어난 여자다. mz세대에 묶여 통칭되기도 한다. (나는 내가 z세대와 아주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윗세대가 보기엔 비슷비슷한가보다.) 교과서에서 가장 보편적인 4인 핵가족 구성 하에 성장했고, 평범하게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를 나와 졸업했다. 그 뒤 취직해서 20대 중후반에 직장인이 되었다. 그런 내가 2022년 현재 자주 하는 고찰에 대해 서술해보고자 한다.


 일단  지금 내 나이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화두는  ‘결혼’이다. 지금 내 주변엔 미혼과 비혼과 기혼과 이혼이 넘실거린다. 내가 어렸을 때는 미혼, 기혼 그 두 개의 선택지만 세상에 존재하는줄 알았다. 그런데 그 두 개의 선택지를 선택할 나이가 다가오자 비혼과 이혼이 내 주변에 넘쳐나기 시작했고, 거기에 LGBTQ라는 무지개 빛깔의 영역까지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이전에 알고있던 세상은 와장창-하고 깨졌다.

 아직도 회사 상사들은 언제 결혼을 하냐, 애를 낳으면 인생이 달라진다, 애는 일찍 낳는게 좋은 것 같다고 말한다. 혹자의 어른들은 결혼안해도 된다, 애는 절대 낳지 마라는 말도 한다. (전자는 거의 남성들의 말이고, 후자는 거의 여성들의 말이라는 건 그저 우연이겠지?) 어쨌든 내가 결혼, 육아와 같은 단어와 상당히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다는 건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나날들이다. 내 주변 30% 정도가 결혼을 했고, 5% 정도가 임신을 했다. 그리고 한 20% 정도가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 수치상으로도 확실히 나는 결혼과 가까워졌다.

 20대 초반만 해도 내가 결혼해서 애낳고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신물나는 연애를 반복하면서 내가 왜 남자랑 살림을 차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러워졌고, 혼자서도 잘먹고 잘사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점점 인기를 끌면서 확실히 나에게 결혼은 선택의 영역이 되었다. 결혼의 장점은 <자금 통합, 행정적 우선권, 전통문화 보존> 정도가 될 것 같은데… 결혼의 단점은 내가 가진 손, 발가락으로 세도 모자랄 것 같아보인다. 애를 낳게 된다면 만나게 될 무수한 두려움과 책임감 또한 아직 버겁게 느껴진다. 아이가 가져다 줄 무한한 우주는 당연히 탐스럽지만 말이다. 상대방과 합의만 된다면 평생 연애를 해도 될 것 같긴 한데, 아직은 내가 너무 어려서 더 큰 세상을 보기가 어렵다. 이건 내년이나 내후년 버전 고찰에 다시 업데이트해보도록 하겠다.


 자금 통합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결혼에 대한 고찰은 흘러흘러 ‘재산 증식’에 관한 고찰로 이어진다. 고속 성장 시대에서 살았던 부모 밑에서 자란 저속 성장(심지어 마이너스 성장) 세대 ; 타이틀이 어마어마하다. 굶어죽을 걱정이 없었으며 군부독재 밑에서 자란 적도 없으며 대학을 가는게 너무나 당연히 느껴지는 우리 세대다. 아이러니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아지는 삶의 만족도일 것이다. 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고,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평균 학력을 올려놓은 이전 세대 아래에서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색다르게 자랐다. 그렇게 영특하게 자라난 우리 세대는 성인이 되자마자  <저성장, 취업난, n포 세대라는 타이틀, 저금리>와 맞닥뜨렸다.

 빈부격차는 심해져갔으며, 더 큰 부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은 부동산, 암호화폐, 주식 등의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나 또한 한 번 사는 인생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서 주식을 하고 있기는 한데, 매도와 매수 버튼을 클릭하면서도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너 얼마나 잘 살려고 그래?” “돈말고 다른 넓은 세상은 이제 포기하니?” 뭐 이런 생각들. 예전의 나는 이러지 않았는데 속세에 장아찌처럼 찌들었다는 생각들. 돈벌려는게 창피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베풀려고도 하지 않는 나에게 드는 부끄러운 마음들. 재산에 대한 나의 고찰은 그렇게 끝이 날 줄을 모른다. 나만 잘먹고 잘살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모두와 잘먹고 잘살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고 지난하다.


 결혼과 재산에 대한 고찰을 끝내고나면, 뜬금없이 나 스스로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그래서 어떻게 살건데? 와 같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채찍질이랄까.(솜방망이 채찍)

 돈만 벌고 살기엔 돈에 환장한 어른들을 혐오했었고, 결혼과 육아에 매진하기엔 나의 전공에 4할의 획이라도 그어보고 싶다.(한 획은 바라지도 않고…)

 그래서 일단은 나의 자신만만함의 원천이 되고 세상풍파의 방패막이 되어줄 돈을 열심히 모으고, 정기적으로 기부를 하고 싶다. 베풀면서 사는 삶은 누군가 가식적이어보인다고 혀를 끌끌 찰 수 있지만, 그렇다면 그 사람도 가식 좀 떨고 살아보라고 꿀밤 먹여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한 채, 인생의 대소사를 선택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부장님이 왠지 “그렇게 살면 아무것도 못해~ 어느 틈에 결혼도 하고, 어느 틈에 애도 낳는거야~”라고 말할 것 같다. 하지만 분명 그 틈 사이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거고 절충안도 있을 것이다. 40살의 나, 50살의 나, 60살의 나, 70살의 나, 80…살의 나도 존재했음 좋겠지만 어쨌든 그 미래 모든 순간의 내가 기특해할만한 선택을 해나가고 싶다. 고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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