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엄청 좋아해요.
참기름에 무친 시금치 나물이 서양에 보급된다면, 서양에서 시금치가 이렇게까지 핍박받진 않았을 것이다.
항상 엄마는 겨울이 되면 먹어야할 채소들을 말해주었는데, 그 중 시금치가 단연 으뜸이다(무가 버금간다). 그냥 시금치가 아니라 포항초나 남해초를 꼭 먹어야한다고 엄마는 장을 보러 갈 때마다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포항초나 남해초는 아주 달고 맛있다고 입이 닳도록 말했다. 사춘기 시절, 괜한 반항심에 나는 엄마가 너무 과장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뭔 채소가 계절에 따라 맛이 바뀌어? 채소가 어떻게 달아?
하지만 시금치를 여름에 한번 먹어보고 겨울에 한번 먹어보면, 엄마 말이 맞았음을 겸허하게 인정하게 된다. 지금 나는 엄마보다 더 악성으로 겨울 시금치를 편애한다.
20살 이후로 타지에 살면서 집밥을 잘 못 먹었다. 그런 내가 안타까운지 오랜만에 본가를 가게 되면, 엄마는 무엇이 먹고싶냐고 물어봐주는데 그럴때마다 나는 항상 시금치무침이라고 말한다. 엄마는 웃으면서 무슨 시금치무침이 먹고싶냐고 하지만, 나에겐 시금치무침은 최고의 음식 중 하나다.
엄마표 시금치무침의 레시피는 이러하다. 포항초나 남해초를 물에 살짝 데친 뒤, 물기를 쭉 짜서 동글동글 시금치덩어리를 스테인레스 볼에 턱- 하고 던져놓는다. 그 뒤 참기름, 간장, 설탕, 깨 등의 첨가물들을 쪼록쪼록 넣고 팍팍 무친다. 그 때 거실 가득 참기름 고소한 내음이 진동하면 나는 그 곳으로 달려가 한 입 주워먹는다. 그 맛은 쉽게 잊을 수가 없고, 중독성이 상당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집에 갈 때마다 항상 엄마한테 시금치를 무쳐달라고 하게 된다.
시금치 무침에 있어서만큼은 입이 고급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식당에서 나오는 시금치 무침도 웬만하면 잘 먹지 않는다. 뭔가 건조하다는 느낌이 들고 고소하고 달달한 그 맛이 잘 안나기 때문이다. 엄마표 시금치 무침만이 내 욕망을 충족시켜준다.
이제 슬슬 날이 포근해질 것 같다. 그 전에 본가에 내려가서 시금치 무침 한 통 와구와구 먹어야겠다. 겨울 시금치 한 단을 먹고 나면 마음도 따뜻해질거고, 곧 봄도 오겠지. 봄에는 어떤 음식이 맛있는지 엄마에게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