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결국 너도.

그런 것들로 살아가게 될거야.

by 꺼꿀이

어김없이 아이가 나의 엉덩이를 툭툭 친다. 나는 그런 아이에게 뽀뽀를 해주다가 화장실로 걸어간다. 밤새 아랫배에 뭉쳐놓은 아침뇨를 누고, 양치를 하고나서야 오늘의 아침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거울 속의 부시시한 머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문득 아빠 생각을 했다.

아빠는 학교 선생님이었고 나는 고등학생일 때 이야기다. 그 전날 자정 가까이까지 공부를 하고 다음날 아침 7시에 일어나서 학교를 갈 준비를 한다는 건 건강한 사춘기 여고생에겐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내가 아침잠과의 맹렬한 투쟁을 하고 있을 때면 아빠는 혼자 뽀시락뽀시락 아침밥을 준비했다. 곤히 자고 있는 엄마를 깨우지 않을만큼 조용하게, 하지만 서울로 대학을 간 언니에게 우리의 안부가 들릴만큼 사랑스럽게. 메뉴는 대체로 계란밥이었다. 따뜻한 반숙계란에, 참기름 몇 방울을 돌리고 간장을 한 숟갈 넣어 김치랑 먹으면 세상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았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불투명한 미래에 숨이 막혔고, 쏟아지는 기대에 짓눌렸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충만했다.

나는 계란밥과 아빠를 떠올리며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돈을 받는 곳이 직장이다. 그렇다면 누구도 하기 싫은 집안일을 하고, 몸이 부서져라 아이를 키우고 바람난 전남편에게서 양육비를 받는 곳은 직장인가, 아닌가. 예전에 직장을 다닐 때는 하기 싫은 일들은 끊임없고,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까지 해야해서 엿같았는데 지금은 차라리 그 곳이 천국같다. 카페인, 알코올, 니코틴으로 직장생활을 견뎠던 20대의 나는 이제 그것들에 상당한 내성이 생겼다. 독감 주사를 맞고 칭얼거리는 꼬맹이를 간신히 재우고 소파에 털썩 앉았다. 아무리 내성이 생겨도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인 카페인을 끊을 수는 없으리라. 커피 속에서 자갈거리는 얼음을 빨대로 휘적휘적거리면서 나는 엄마 생각을 했다.

엄마는 집에서 학생 과외를 종종 했다. 과외시장은 학생들이 하교를 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뒹굴거릴 때 엄마는 그제서야 바빠졌다. 그런 엄마에게도 커피가 필요했었을 것이다. 엄마는 가끔 과외를 하다말고 나에게 와서 커피를 한 잔 타달라는 수신호를 보냈다.(수신호는 간단했다. 검지 손가락을 들어 ‘한 잔’이라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다.) 나는 그러면 호다닥 부엌으로 달려가 커피포트에 물을 데웠다. 그 뒤 꽃이 잔뜩 그려져있는 머그컵을 하나 꺼내 커피믹스 1봉지를 컵에 쏟는다. 물이 데워지면 그 물을 컵에 살짝 부어 커피믹스 알갱이들을 녹여내고 찬 물을 1/3만 붓는다. 그 뒤 각얼음들을 쏟아내고 몇 초동안 강하게 휘저어주었다. 하이라이트는 나의 시음식이다. 어렸던 나의 커피 마시기는 금기시되었으나 이 시음식 때만큼은 합법적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홀짝-하고 마셔보면 나의 커피 만들기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적당히 짙고 달고 쓰고 시원한 이 커피를 엄마에게 가져다주면서 나는 꽤나 뿌듯했다.

나는 달달한 얼음커피를 손에 들고 엄마 생각을 하면서, 내 아이를 바라보았다. 세탁기는 부지런하게 할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내 아이의 잠든 모습이 천사같다고 생각했다.



쌓여있던 분리수거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어 아이를 들쳐업고 양 손에 가득히 쓰레기를 들고 집을 나섰다. 분리수거를 하는 곳에서 아파트 경비아저씨를 만났다. 경비아저씨에게 내가 사는 이 아파트는 하나의 직장일 뿐이니 엿같은 곳이겠지만, 나는 눈치없게도 경비아저씨가 일하시는 게 조금 좋다. 그런 마음을 최대한 숨기지만, 최소한으로는 표현하고 싶어 ‘안녕하세요-‘라며 큰 소리로 인사해본다. 그런 입주민이 조금은 부담스러우신지 아님 조금은 안쓰러우신지, 경비아저씨께서는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나는 수줍고 머쓱해서 얼른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을 정리하다가 문득 초등학교 1학년 때 살던 아파트의 경비아저씨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친했던 친구와 각자 아끼는 인형을 가지고 나와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그 날 친구와 뿌셔뿌셔를 같이 나눠먹고 싶어 고사리손으로 과자를 움켜쥐고 나갔고, 친구는 야쿠르트 2개를 가지고 나왔다. 우리는 아주 큰 바위 위에서 인형극을 하며 뿌셔뿌셔를 먹었다. 그 때 경비아저씨가 말을 걸었는지, 우리가 호의를 베푼답시고 뿌셔뿌셔를 나눠드렸는지는 기억이 흐려져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우리는 이러저러한 과정을 통해 경비실을 들어가게 되었다. 아저씨는 라면 스프로 더러워진 우리의 손을 씻으라고 화장실을 들어가게 해주었고, 나는 매우 좁고 습한 화장실에서 손을 닦고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지금에서야 무섭고 이상한 일이 많아 충분히 걱정스런 사건일 수 있겠으나 나는 그 날 기분이 너무 좋았다. 우리 아파트 보안관이랑 친해지다니? 심지어 아무도 못들어가본 경비실을 나와 친구만 들어가봤다! 머리카락만 대롱대롱 집고 다니던 인형, 비닐봉지에 담아서 약간 눅눅해진 뿌셔뿌셔, 그 퍽퍽함을 한꺼번에 녹여주던 야쿠르트, 우리를 귀여워하고 친히 화장실에서 손을 닦게 해주던 키 큰 경비아저씨. 그 모든 건 나에게 먼지가 자욱한, 잔디향이 나는 추억이다.

엘리베이터가 12층에 도착하고 비밀번호를 누르면서 나는 그 날의 여운에서 빠져나왔다.



내일은 아이가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가는 날이다. 이제는 나도 직장을 알아보아야 할 때이기에 이르지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이렇게 어린 아이가 언제 자라서 어른이 될 지 아득하다. 그리고 아이에게 내가 유일한 가족이라는 사실에 아찔하다(전남편은 죽은 셈 치는 게 낫다). 이런 저런 생각에 복잡하지만 그래도 일단 침대 위에 누워있는 이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만큼 아늑하다. 에어컨을 틀어놨더니 집의 공기가 약간은 쌀쌀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대로 추운 공기를 유지하고 싶은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본다. 아- 이제야 딱 온도가 적당하다. 어두컴컴한 이불 안에 있으니, 태어날 때부터 베스트프렌드로 지정된 나의 언니가 생각이 난다.

우리 자매가 옷장 안에 들어가도 문이 잠길만큼 체구가 작았을 적 이야기다. 우리 집 안방에는 이불장이 있었다. 두꺼운 나무 판자 하나로 1층과 2층이 나누어져 있었고 그 층을 두껍고 얇은 제각각의 이불들이 꽉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침대를 발판삼아 2층의 이불꼭대기에 올라가 끙끙거리며 막사를 만들었다. 얇은 담요들을 펼쳐 이불장의 양쪽 문에 걸쳐내고 나면 그럴 듯한 막사가 완성된다. 우리를 공격하려던 가상의 적들은 공룡이 되기도 했고 외계인이 되기도 했다. 적들의 정체는 항상 바뀌었지만, 내 옆에 있는 든든한 파트너는 항상 언니였다. 창문으로는 햇살이 따사롭게 우릴 내려다보고 있었고, 나프탈렌향과 곰팡이 냄새가 뒤섞여 나는 쿰쿰함은 내 코를 계속 두드렸고, 폭신한 이불 꼭대기에서 우리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평균 나이 29.5세가 된 지금, 우리는 이불 취향도 서로 달라졌고, 더 이상 같은 곳에 살지도 않고, 차라리 외계인이나 공룡이 나타나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하는 현실에 찌든 성인이다. 그래도 눈을 감으면, 어리고 작은 나를 어떻게든 이불 꼭대기로 올려주려던 나의 영웅이자 단짝인 까맣고 용맹한 언니가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그렇게 나는 잠에 든다.



꿈에서 내 아이가 어른이 된 꿈을 꿨다. 내 아이가 어른이 된 그 시간의 세상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보였고 모두가 쉽게 분노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내 아이가 지쳐버릴까봐 걱정이 되었다. 경쟁, 혐오, 차별, 욕심 등과 같은 듣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단어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지칠 수 밖에 없다. 아이는 꼬부랑할머니가 된 나에게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면 되냐고 울면서 물어보았다. 나는 계란밥과 얼음커피, 이상한 경비실에서의 하루, 이불장 소동 등의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그냥 이 엄마의 하루는 그런 것들이 지탱해준다는 무력한 진심을 말해주었다. 아이야, 결국 너도 그런 것들로 살아가게 될거야. 운이 좋은 하루는 그걸 발견하게 될거고.


나는 꿈 속에서 아이를 꼭 껴안아주었다. 그러던 중 아이가 내 엉덩이를 다시 툭툭 친다. 또 다른 아침이 밝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