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50대 후반의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는 쉽지 않다. 상당한 권력의 소유자들이며, 그 말인 즉슨 상상 이상의 꼰대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전통적 관습 지킴이들이 있어야 조직의 테두리가 정해지고, 질서라는 것이 잡힌다는 것에는 동감하지만 일 이외의 부분에 대한 대화를 할 때도 꼰대력은 숨겨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30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는 같이 일하기가 편하다. 50대 후반의 상사들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기에 서로 짠해하느라 바쁘기도 하고, mz세대랄까… 뭐 어쨌든 90년대생만이 가진 통통 튀고 발칙한 소견들을 가감할 필요없이 전달해도 허허하며 들어주기 때문이었다.
직장 경력이 너무 짧고 작아서 아는 40대 후반의 상사가 단 한 명밖에 없기 때문에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냥 그 나이대의 상사가 다 그런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업계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40대 중반의 상사가 얼마나 빌런인지 듣게 되었고 나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마음 속 깊이, 뼈저리게 그 분께 감사하고 감사했다.
40대의 상사, 그 분을 B라고 칭하겠다. B와 일을 할 땐 유난히 말조심을 안하게 된다. 저절로 마음 속에 있는 얘기를 다 털어놓게 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저 팀의 누구한테는 이런 일이 있다더라, 이 팀의 누구는 이런 평가를 듣는다더라… 여기저기 친구많고 듣는 얘기 많은 나는 B에게 해줄만한 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었고, B는 그런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주고 재밌어해주었다. 상사와 있는 느낌이라기보단, 작은 삼촌과 같이 있는 느낌이랄까… 그런 B에게 내가 먼저 mbti검사를 제안했다.
“야, 그거 해야되냐? 약간 귀찮은데…”
“해주세요~ 이거 진짜 얼마 안걸려요! mbti 궁금해요~~~”
고작 사원급 되는 젊은 사람의 요청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10분동안 검사를 해주었고 그 결과 infp가 나왔다. 나는 후다닥 인터넷 검색을 해서 infp 특징을 읊어드렸고, B는 눈이 반짝거리며 나에게 완전 자기랑 똑같다고 했다. 그 특징을 읽는 나도 눈이 반짝거렸다. 정말 누가 봐도 B의 특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infp라는 특성이 그의 탈꼰대력에 도움이 됐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infp들을 애정하게 되었다.
B는 너무 게으른 완벽주의자이다. 초장에 일을 거의 다 끝내놓는 나에게 마감기한 직전에 엄청난 양의 피드백을 줘버려서 나를 환장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본인 일하는 방식에 누군가가 터치를 못하게 하기때문에 본인 주관대로 밀고 나가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 경우가 아무리 틀렸다고 말해도 말이다. 그 순간만큼은 ‘소귀에 경읽기’라는 속담이 머릿속을 1500번 정도 스쳐지나간다.
갈등 상황에도 취약하고 인간관계에도 능통하지 못해서, 위로라고 해주는 말도 듣다보면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고, 같은 직급끼리의 기싸움에서도 항상 지는 편을 택한다.
그래도 한참 어린 후배의 얘기에 항상 귀기울여주고, 본인이 해야될 일을 절대 미루지 않고, 힘든 모습을 보면 나중에라도 괜찮냐고 꼭 물어봐주는 귀여운 소심이인 B. 나에게 직업적 지식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에 있어서도 스승과도 같은 B 덕에 infp라면 무차별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