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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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히 세어보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가게보다 망한 가게가 더 많을 것만 같은 회색빛 건물 안으로 들어가 빼곡히 나열되어 있는 오피스텔 중 한 곳을 찾아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덥수룩한 앞머리와 끝이 일정하게 잘려있는 검은 단발머리, 유리테 안경을 끼고 세상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
‘왜 이런 데 있는 사람들은 인상까지 더러운거야...?’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그는 들어와서는 안될 곳에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열었던 문을 끼익-하고 다시 닫으려 했다. 그 순간 그녀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원하는 걸 바꿔줘요. 마치 마법처럼요. 믿을 수 없겠지만 진짜에요.”
그녀는 사람들이 이 곳을 왜 찾는지 정확하게 간파했고 망설이던 사람들의 마음을 단숨에 휘어잡았다. 그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그녀의 말에 그는 닫으려던 문을 다시 열었고 여기에 왔던 다른 사람들처럼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토해냈다.
“진짜 원하는 걸 다 바꿔줘요? 왜요? 비용은 얼마가 드는데요? “
“영업비밀인데 내가 다 말해줘야 해요?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아요. 내가 귀찮은 거 되게 싫어하거든.”
“그...일단 비용은 말씀을 해주셔야 제가 결정을 하죠.”
“돈내는 건 아니에요. 이 세상이 다 돈으로 되는 건 아니거든요. 특히 우리 일은 그래.”
“돈 아니면...혹시 뭐 장기매매 이런건 아니죠? 저 진짜 갑자기 무서워져서 그래요...”
“불행.”
“네?”
“네 주변 인물들이 좀 불행해질거야. 한 3번 정도? 크고 작은 불행들이 닥칠거야. 그거면 돼.”
“와...”
“학생. 미안한데 이제 슬슬 결정을 해주겠어? 내 인상봐서 알겠지만 성격이 더러워.”
처음에 그를 극한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이 장소는, 마지막엔 극적인 코미디 영화 배경같아졌다. 그는 더 이상 이 장소가 무섭지 않았다. 본인이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하던 역할극 같기도 하고, 연극영화과 학생들이 만들어낸 세트장 같기도 하고... 확실한 건 그는 그냥 이 상황이 웃겼다. 연구소는 무슨 연구소야. 연구소가 뭔지는 알고 하는 말인가? 그는 친구들에게 이 기묘한 연구소에 대한 일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이 거래를 성사시켜야 했다. 그는 연구소 직원에게 내 주변인물이 불행해지는 댓가를 치를테니, 키를 180cm로 키워달라고 했다. 그녀는 고작 키를 키워달라는 소원이였냐며 비웃었고, 혹시라도 주변인물이 불행해지는 댓가가 너무 가혹하다면 즉시 사무실로 다시 오라고 했다. 모든 걸 원상복귀시킬 수 있다면서. 하지만 모든 걸 원상복귀시킬 수 있는 기회도 첫번째 불행 단 한번이었다. 거래의 댓가로 발생한 불행일 경우,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연락을 할것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불행과 명확히 구분 가능하다며 그녀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장난치고 꽤나 진지하게 연기하는 그녀를 보면서 연기에 큰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명작 영화에서 그녀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그는 학교를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맞는 옷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훤칠해졌다. 그는 너무나 놀랐고 소름이 끼쳤지만 상황 파악을 하려면 밖에 나가야 했기 때문에, 당일 배송으로 옷을 얼른 주문했다.
‘진짜 키가 커져? 미친거 아니야? 아니 현대사회에서 이게 가능하다고? 와...... 미쳤네 진짜?’
빠른 시간 안에 다채로운 감정이 차오르는 것이 그치고 나니, 그는 점점 판단력이 명료해졌다. 그 사무실은 실제로 원하는 걸 바꿔줬다는 것. 그래서 내 키가 커진 것. 그렇다면 내 주변 인물들은 실제로 크고 작은 불행을 맞닥뜨릴 것이라는 것.
그는 이번엔 색다르게 무서워졌다. 아니, 키 하나 크자고 주변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는게 말이 되는가. 그는 너무 섬뜩해서 모바일 메신저를 키지도 못했다. 누군가가 불행해지면 어떡하지? 막 누구 집에 불이라도 났으면 어떡하지? 뭐 이런 생각들 때문에.
수십분이 흐르고 그는 점차 본인의 몸을 훑기 시작했다. 배송 온 옷을 입어보니 멋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맡는 공기가 달라졌다는 게 절절하게 실감이 됐다. 그리고, 그는 본인이 괜찮은 수준이 아니라 완벽하다고 느껴졌다.
본인의 몸에 심취할 때가 아니었다. 빨리 현실을 파악해야 했고, 만일 불행들이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 범람했다면, 즉시 사무실로 달려가야했다. 그는 파들거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잡고 채팅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일단 sns나 다른 것들을 확인해봐도 그의 주변 사람이 불행해진 일은 없었다. 뭐 그건 너무 다행이었는데, 문제는 애초에 그가 키가 작았던 적이 없는 사람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단체 채팅방에선 키 얘기를 하면서 키 큰 사람으로 그를 지목하고 있었다. 그는 뭔가 이상해서 자신의 가족 채팅방에서 본인의 키가 몇 센치인 것 같냐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그랬더니 그의 엄마는 “너는 우리 가족 돌연변이라서 키가 2m 가까이 되지 않냐”는 답을 했다. 태초부터 그는, 키가 작았던 적이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의 인생은 이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아쉽다고 생각했던 점이 사라졌고 그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충만한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일수도 있었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의 불행 또한 들리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는 사무실을 다시 찾아가지 않았다. 그는 학교에서 가장 눈이 높다고 소문난 여자애와 사귀게 되었다. 또한 컴플렉스가 사라지고 난 후, 오히려 더 많은 일에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그는 ‘그 사건’이 있은 후, 훨씬 행복해졌다고 느꼈다.
여기서 그의 입장말고 객관적인 사실을 서술해보자면, 썩 이상적인 상황만은 아니었다. 그렇다. 불행이 생긴다는 연구소 직원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