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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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커플이 그의 자취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방학을 했지만, 부모님께는 설계 과제가 더 남아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들은 알량한 신혼부부 놀이에 심취해있었다. 생긴 것에 비해 손이 덜 가는 밀푀유 나베를 해먹겠다며 부엌에서 바스락바스락거리고 있을 때, 그의 여자친구가 사색이 되면서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갑작스런 분위기의 변화에 그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그녀에게 다가가 무슨일이 생겼는지에 대한 질문을 내포하는 포옹을 했다. 그러자 그녀는 황급히 나갈 채비를 했다. 본인도 상황파악이 끝난 후에 연락하겠다고 했다.
세 시간 후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그녀는 가끔 그녀의 언니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많은 얘기를 서로 나누지는 않지만 언니의 존재만으로도 힘이 된다며 언니에 대한 애정을 가감없이 표현했었다. 그런 그녀가 자살시도를 했다고 했다. 가족들에게 주려고 썼던 유서에는 “여자를 좋아하는 나를 우리 가족이 절대 이해해줄리 없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판치는 이 세상을 뜨고 싶다, 부모님한테 미안하다, 동생이 맘에 걸린다” 등의 내용이 들어있었다. 자살시도가 실패로 끝난 후 그녀는 현재 경추신경 손상으로 인해 전신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였으며, 그녀의 의도치않은 커밍아웃으로 아버지는 실신을 했다고 했다. 그녀의 여자친구의 가족은 소용돌이에 빠져버렸다.
그녀에게 연락이 오기까지 그 세시간 동안, 그는 지나치게 초조했다. 그의 가장 깊숙이 안쪽에서는, 이것이 그의 첫번째 불행임을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자친구의 전화를 받고 무려 한시간 사십칠분동안이나 그녀의 황당하고 처절하고 황망한 마음을 보듬어줬다. 전화를 끊고나서, 그는 좆같은 연구소에 가려고 했다. 이유라고 한다면, 더이상의 불행은 없어야 하니까, 이 일을 원상복구시켜야하니까, 지금이 아니면 그 어떤 것도 원상복구시킬 수 없으니까.
연구소로 가는 길, 그는 잡다한 생각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고 그가 변하기 전 삶 또한 돌이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돌이켜본 과거의 그의 삶은, 쓸데없는 피해망상으로 가득차있었다. 키가 작다는 사실에 몰입해서 너무 많은 것을 꼽게 받아들였다. 막상 키가 커보니, 키가 큰 사람은 키작은 사람에 대한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살아도 되겠다는 결론까지 얻었다. 그렇게 사무실 건물에 도착을 했다. 문만 열면 그는 정말 모든 걸 없던 일처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그의 여자친구의 언니가 동성애에 빠진 것이 불행인가? 동성애는 죄가 아니다. 같은 성별을 사랑하게 된 걸 어쩌겠느냔 말이다. 물론 그녀의 부모님이 이런 상황을 쉽고 쿨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그녀에겐 불행일수도 있겠으나, 아니, 그 세대 부모들 중에 누가 쉬이 이 상황을 받아들이겠는가. 그건 불행이 아니라 자연스런 반응이다. 자살시도는 매우 안타깝게 된 일이지만, 따지고보면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녀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오히려 행운아일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까지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며,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니까, 연구소에 들어가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 하나의 사건은 불행이라고 할 수 없으며, 어거지로 누군가가 우겨 불행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거래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철썩같이 믿었다. 믿고 싶었다. 믿어야만 했다. 그는 자기로 인해 누군가가 불행해서는 안된다며 정의의 사도처럼 집 밖을 나섰지만, 막상 모든 것이 눈 앞에 닥쳤을 때 그 무엇도 뺏기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인간적인걸까, 비인간적인걸까.
그는 몇 달 뒤 여자친구와 이별했다. 항간에 들리는 소문으로는 서로 애정이 식어 교내에서도 자주 싸웠다고 하며 이내 여자가 남자를 찼다고 한다. 과내에서 훈훈한 남녀의 이별은 꽤나 세간의 집중을 받는 듯 하다가 늘 그렇듯 모두들 자기 살기 바빴고 그들은 과 씨씨 족보에 이름만 남긴채 더 이상 엮일 일이 없는 사이가 되었다. 사실 그는 그녀를 볼 때마다 죄책감(물론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서 그녀의 언니의 일은 본인과 무관한 일이라고 되뇌고 되뇌였지만)에 시달려야만 했고 그 감정이 반복되다보니 연애를 더 이상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점차 남자친구로서의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음에도 커플이 할 수 있는 권리란 권리는 다 챙기는 경지에 도달했고 여자친구는 이별을 먼저 제안했다. 이 모든 것을 서로 애정이 식었다고 표현하기엔 그녀의 여자친구가 매우 억울하지 않겠는가.
두 번째 불행은 그가 졸업을 코앞에 두고 졸업작품을 완성시키느라 골머리를 앓을 때 발생한다.
그는 외삼촌의 회사에서 일하기로 내정되어있었고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곧 사장님이 될 외삼촌에게 신입사원으로서의 예의를 차려야 할 것 같아 졸업을 7개월 앞둔 시점부터 자주 외삼촌과 시간을 보냈다.
외삼촌은 화통한 사람이었다. 덩치가 좋고 먹성도 좋고 만화영화 속에 나오는 의사선생님들처럼 배가 불룩 튀어나왔다. 술과 술자리를 좋아해서 일한 후의 밤이 일하는 낮보다 바쁜 사람이었고 툭툭 던지는 말들은 젊은 사람들이 듣기에도 센스가 넘쳤다. 그는 외삼촌을 진심으로 좋아했고, 그런 유쾌한 사람이 심지어 내가 속한 분야에서 어엿한 성공을 거둔 사람이라는 점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만족스러워했다. 외삼촌의 건축 사무소에서 그는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며 김칫국을 2그릇 정도를 마시는 것과 같은 발칙한 상상도 해보았다. 동기들 모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할지, 전공을 아예 바꿔야할지 고민하는 시점에 그는 거의 유일하게 졸업 후 꽃길이 놓여있는 사람이었다.
졸업작품은 꽃길을 앞에 둔 그에게도 만만치 않은 존재였다. 잘해내고 싶다가도 모든 걸 포기하고 그냥 졸업만 하자- 라는 생각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하는 직업에 회의감이 낙낙하게 들기도 했다. 담배를 한 대 피우러 중앙마당쪽에 나가면 열에 다섯은 전 여자친구를 마주쳐야 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나갔다가 괜히 마음만 뒤숭숭해져 설계실로 들어오기 일쑤였다. 그날도 그렇게 어김없이 삐걱삐걱대던 날이었다.
-네, 엄마, 무슨 일이에요?
-성준아.....느이 외삼촌.......
-네, 외삼촌 왜요?
-느이 외삼촌이....흑흑.....암이래....폐암......
그가 그 연락을 받고 어떤 심정이었을지 알 길은 없지만, 추측해보건데, 놀라고 공포스럽고 기괴하고 소름끼쳤을 것이다. 자신이 거래한 불행 중에 외삼촌이 폐암에 걸리는 경우가 있을 거라곤 상상못했을 것이기에. 또한 이제 이 계약은 무를 수 없는 계약이 되버렸기에.
외삼촌은 이혼 후 홀로 살며 일과 술과 골프에 매진하며 살고 있었다. 그는 커다란 단독주택에서 맘껏 담배를 피워가며 자유를 만끽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기침과 가래가 늘어갔고, 어느 날에는 가래에 피까지 섞여나왔다. 무자비하게 피워댄 담배, 셀 수 없이 마신 술은 무섭지 않았으나 가래에 섞인 조그만 핏방울은 외삼촌을 부지불식간에 깊은 염려에 빠트렸고, 성준의 엄마는 외삼촌의 보호자가 되어 같이 근처 대학병원에 간 것이었다. 엑스레이, CT를 찍었고 이제 외삼촌이 들어야할 말은 “별 거 없네요. 담배 좀 줄이세요.”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의사는 검사결과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기 시작했고, 입원증을 내주더니, 조직검사를 좀 해봐야겠다고 말했다. 바빠 죽겠는데 입원이라니. 외삼촌은 그때부터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으나 꾸역꾸역 ‘별 거 아닐거야, 과잉진료인거야’ 라는 말을 내뱉으며 센 척을 했다. 큰 프로젝트 위주로 맡으며 리더십을 발휘하고 회식자리에서 다른 이들의 박수갈채를 받던 그는, 한순간에 환자복을 입고 주치의와 사소한 걸로 티격태격하는 말 안듣는 517호 환자가 되어있었다. 조직검사도 하고, 추가 CT도 찍고, 혈액검사도 일주일에 2-3번 정도하였더니 그는 순식간에 폐암 4기 환자가 되어있었다. 오른쪽 폐 아랫쪽에 암이 있다. 그리고 뇌에도 조그마한게 여러 개 퍼졌다고 한다. 목뼈에도 암이 있다던데, 이렇게까지 퍼져있을 수 있는건가? 요새 목이 아픈게 일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암이라고?
어쨌든 받아들이는 건 외삼촌의 몫이었고, 그는 폐암 4기 환자가 되어 월드스타급으로 많은 스케쥴을 소화해야했다. 방사선치료와 병행하는 항암치료. 항암치료 후 숨쉴 틈 없이 쏟아지는 재활치료. 그 뒤 다시 항암치료. 또 다시 통증이 생기면 방사선치료. 그는 사무소를 제대로 돌볼 수가 없었다.
성준은 엄마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전해받고, 하준오 연구소를 찾아갔다. 차마 외삼촌의 병실을 찾아갈 수 조차 없었다. 그가 지금 해야할 일은 딱 하나다. 이 계약을 무르는 것.
음산한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그는 전단지를 손에 꼭 쥔채 파들거리는 입술을 숨기며 사무실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어...? 네일하러 오신거 맞나요?
연구소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