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https://brunch.co.kr/@11c4c2cda000469/7 -> 3부
나는 그 오피스텔 안에 들어가있는 모든 가게에 찾아 들어가 연구소의 행방에 대해 물어봤다. 거의 대부분이 오피스텔 장사가 다 그렇게 없어지고 하는 거라며 무관심했다. 애초에 일할 마음도 없어보이고, 트로트방송에만 몰두하고 있던 경비아저씨는 어차피 깔세로 들어왔던 사람들이라서 금방 나가는 게 그리 이상한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도대체 그 안에선 무슨 일들을 한 거냐고 물어봤다. 아니, 예의상 물어봐주는 것 같았다. 전단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그 연구소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기묘하고 쎄한 곳에 나는 두 발을 담그다 못해 머리통을 집어넣고 잠수를 했다.
씨발, 왜 하필 내가 그 전단지를 받아서 이 꼴이 됐지 싶었다. 첫번째 불행 때 이 모든 걸 물렀어야 했다. 어줍잖게 정신승리를 한 결과가 이렇게 참담하다니. 모든 말초신경이 흥분된 상태였다. 밥을 8시간째 못 먹은 상태였지만 배도 고프지 않았다.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었고, 이 상황에서 제대로 된 판단이란게 있을까도 싶었다. 진짜 어떡하지. 내가 전여자친구의 언니도 죽인거고, 외삼촌도 죽인거다. 나는 왜 이 거래를 사소하게 생각했을까. 나는 왜 그 좆같은 연구소 직원의 말을 장난처럼 여겼을까. 키가 갑자기 큰다는거 진짜 말도 안되는 건데 왜 나한테 좋은 일이라고 그냥 넘어갔을까. 나는 진짜 왜 이모양일까.
졸업 작품은 엉망이 됐다. 작품은 완성이 되었고 졸업도 할 수 있게는 되었으나 그건 외삼촌의 일을 알고 있는 교수님들이 그저 졸업을 시켜준 것 같았다. 내 작품은 졸업을 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졸업 작품을 도와준 후배들에게 제대로 된 보답도 못한채 나는 나 자신을 사회와 격리시켰다. 이 와중에도 졸업을 한 내가 한 편으로는 대단하다가도 이게 다 내가 잘해서 졸업을 한 거겠냐 싶었다. 또한 연구소 일만 생각하면 내가 죽어야 이 모든 일이 끝날까 싶었다. 이런 와중에도 내가 걱정된다고 몇몇 친구들에게는 연락이 주구장창 왔다. 어디냐- 요새 힘들어보인다- 술한잔하면서 기분 풀자- 이런 사소하지만 그 안에 매우 따뜻한 의도가 숨겨있는 메세지들. 나는 그런 메세지들의 알림 하나에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게 마지막 불행일까봐 무서웠고 두려웠다. 나는 배달음식으로 근근이 버텼고, 가족들에게는 졸업 후 한 달 동안 친구들과 국내여행을 다닌다고 하며 은둔의 알리바이까지 만들었다. 나는 왜 이지경까지 된걸까. 나는 진짜로 불행해지고 있었다.
사실 속시원히 털어놓자면 이럴 줄 몰랐다. 남의 불행이라고 하니 진짜 별 거 아닌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뭐, 고작 누가 누구랑 헤어지는 거. 자전거타다가 발목 접지르는거. 학교에서 선배한테 작살나게 혼나는 거. 나는 진짜 그런 수준을 생각했다. 그 좆같은 연구소가 벌여놓은 불행은 스케일이 어마어마했고 그런 일들이 나 때문에 벌어진거라고 하니까 견딜 수가 없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계약 자체가 말이 안된다. 불행이 아무리 정량적으로 측정이 안된다고 해도, 예시라도 들어줬어야지. 연구소 이 새끼들 진짜 너무 악질이다. 어린 애 한 놈 꼬셔서 불행이다 뭐다 이런 일을 벌여? 아니 애초에 내 키는 어떻게 크게 한거지? 이거 다 내 환각 아니야? 나 당한거네? 나 이기적인 놈이 아니라 불쌍한 놈인거잖아...? 세상사람들 다 이 상황에 처하면 나처럼 행동할 거 아니야? 그 연구소 내가 sns같은 데에 올렸으면 씨발 세상 난리났을걸? 그냥 sns에 올려서 공개처형 시킬까? 아니야. 그러면 또 어떤 새끼가 거래할지몰라....
나는 3주 동안의 사회적 격리를 끝마치고 집으로 나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몇 번의 사이클이나 돌리고 난 뒤 내린 나의 결론은 “이미 지난 일이라는 것”이다.
내가 이 일을 여기저기 퍼뜨리면 불행의 씨앗만 방방곡곡 심고 다니는 꼴이다. 누군가에게 고발을 해서, 공개 수배를 한다고 해서 정리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로 인해 불행해진 사람들, 당연히 안타깝다. 하지만 이제 정말로 무를 수 없는 일이고 그렇기에 나는 수습할 수가 없다. 사실 수습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내가 불행과 거래하지 않았더라도 전여자친구의 언니분은 성정체성으로 인한 치열한 고민 끝에 어떤 사달이라도 났을 것이며, 외삼촌의 생활습관은 폐암보다 더 큰 병을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그니까, 내가 불행과 거래해서 생긴 일이라는 걸 나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세상으로 나가 적응하기로 했다. 원래 이 세계는 존나 차가우니까, 내가 이정도 저지른건 괜찮다. 그니까, 진짜 괜찮다기보다는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살기로 했다 뭐 이 뜻이다.
그리고 나는 핸드폰을 없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