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해할 필요 없어

by 나옹

“너희 동생 아프다 안 했니? 얼굴이 너무 좋아 보이던데?라고 우리 시어머니가 말씀하시더라!”


며칠 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언니네 시어머니와 마주치고 환한 얼굴로 인사를 드렸더니 나에 대해 몇 마디 하셨는가 보다.

그래 그렇다. 항암을 할수록 몸 상태가 너무 좋아지기 시작했다. 암세포가 사멸되고 나니 정상 세포들의 기능이 원활해져 몸이 매우 가볍다. 고질병처럼 아프던 등도 통증이 없다. 신기하다. 이게 정상이구나. 이 모든 게 부작용을 최소화한 표적 항암제 덕분이리라!

때마침 울리는 전화벨 소리.


“선생님~! 좀 괜찮으세요?”


데리고 있던 학생 중 한 명의 어머니로부터의 전화다. 얼마 전 유방암이 재발해서 내가 진단받았을 당시 항암을 끝내셨던. 아마도 동병상련의 마음이 크셨는지 이따금 연락하셨다.


“몸 상태가 너무 좋습니다! 이 정도면 제가 왜 일을 그만뒀을까 후회가 될 정도로요! 안 그래도 올해 00가 수능을 쳐야 하는데 제일 미안하고 신경이 쓰였어요! 선생님은 몸 상태 괜찮으니 영어 봐줄 수 있다고 00에게 말했기도 했고요”


“아이고 다행입니다! 00가 제게는 그런 말을 전달 안 해주더라고요! 선생님 정말 괜찮으시면 수능 때까지 남은 기간 동안 00 수업해 주실 수 있나요?”


“당연하죠!”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단 한 명 이기는 하지만 일을 하면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니!

일을 시작한 대학생 때 이래로 이토록 일하는 것이 행복일 수 있음을 느껴본 적은 지금껏 단연코 이번이 처음이다. 실제로 수업을 하는 동안 생기도 더해지고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으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즐기면서 일을 할 수 있다니 세상이 주는 감사한 가르침 하나.








“꺅!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공부방은 여전히 잘 되고 있고요?”


오랜만에 만난 단골 디저트 집 사장님이 살갑게 반겨 주신다.

“저 지금 항암 중이라 일은 쉬고 있어요”


“갑상선? ”


“아니 혈액암이요”


빠르게 눈물을 감추시며 엄청난 서비스를 챙겨 주신다.

한사코 사양하는 나를 포근히 안아 주시며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라 주문을 걸어주신다..

암 진단을 받고 전해지는 주변 사람들의 감사한 마음들 덕에 색을 잃어가던 나의 세상이 다채로워지고 있다.

그래 사는 게 이렇게 아름다운 건데 나는 그동안 무엇을 그리 한탄하며 살았던 걸까?


사실 암 발병에 스트레스 요인이 있는 거라면 한동안 분노와 비교에 사로잡혀 바들바들 떨기 바빴던 나의 지난날이 크게 작용했을 테다.

언니 아이의 유치원 픽업 때문에 가게를 일찍 마치고 나오시는 엄마를 보며 조금 의아했었다.

나는 저녁에 일하는 사람이라 나의 아이는 내가 다 돌볼 수 있었지만, 남편의 퇴근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는 날이면 노심초사하며 아슬아슬하게 육아 바통 터치를 하기 위해 마음 졸이며 전전긍긍했었는데 그때의 나는 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언니의 아이 즉 내 조카는 하시는 일마저 지장을 주시고 봐주신다. 그래도 언니와 형부는 너무 늦게 퇴근하고 어쩔 수 없으니 그런 거겠지 라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보아도 겹쳐지는 옛 기억하나.


“어머 사모님 딸이 또 있으셨네요?”


결혼 전 동생과 나 그리고 친정엄마가 함께 쇼핑을 나갔을 때 그 브랜드 직원이 단골을 맞듯이 인사를 한다.


“응 우리 둘째 딸은 처음 보지?”


익숙한 듯 옷을 고르는 동생의 모습에서 약간의 서러움이 밀려온다. 나는 오프라인에서 옷을 보더라도 선뜻 결제하지 못한다. 온라인에서 최저가를 뒤지고 뒤져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사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아빠가 저질러놓고 엄마의 짐으로 넘겼던 빚을 갚는 데 썼다.

“ 막내는 너희들처럼 돈을 잘 벌지 못하니까….”


엄마도 나를 의식하셨는지 한마디 내뱉으신다.


‘뭐 막내로 태어난 특권이겠지’

라며 속으로 넘긴다고 넘겼는데 넘겨지지 않았나 보다. 조카를 봐주시는 엄마의 모습에 이 기억이 겹쳐졌고 이후 조금씩 조금씩 서운함은 쌓여만 갔다.

코로나 창궐 초창기 한참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폭등하던 그때.

살던 전세를 끝내고 이제 내 집 마련을 하려는데 계약하려는 집마다 계약이 틀어졌다. 3번의 계약이 엎어지고 나서 다니던 과외에서 공부방을 오픈해 집에서 하려고 조금 더 큰 집으로 전셋집을 옮기는데 모자라는 전세자금을 엄마가 빌려주시기로 했다. 이때 엄마는 사시던 집을 처분하시고 조카를 봐주시려고 언니네와 합가를 하신 상태여서 현금을 지니고 계셨다. 은행에서 빌리나 엄마에게 빌리나 이자는 똑같이 드릴 거라 여러 복잡한 서류 없이 좀 더 편하게 진행하려 했는데 가계약금을 내고 이제 모자라는 돈을 빌려달라고 하니 갑자기 전해오는 비보 하나.


“어젯밤 제부가 죽었어.”


엄마의 집 판 돈을 은행 다니던 제부가 맡아 관리를 하다 엄마 몰래 주식 선물에 투자했다가 다 날리고 빚이 감당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거였다.

처음에는 사람이 죽었고 동생이 너무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던지라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다. 또한, 엄마의 노후자금이 한 푼도 없이 다 날아갔음에 망연자실할 엄마의 모습에 나의 마음을 돌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죽은 사람은 잊혀 갈 무렵부터 저렇게 무책임했던 동생 부부에 대한 분노와 살면서 이제야 엄마에게 금전적 도움을 받아보나 했는데 그것 또한 무산된 한탄이 크게 다가왔었다. 내심 엄마가 나한테 은행보다 적은 이자를 받겠지? 어쩜 이자 없이 빌려주실지도 모르겠다며 기대했었다.


노름으로 빚만 크게 남겨 두고 술주정만 하다 뇌출혈로 요양병원에 계신 아빠의 모습을 혐오하며 나는 엄마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대학 시절부터 과외로 학비와 용돈은 내 손으로 벌었고 힘든 엄마의 삶을 위로하고자 청소, 빨래, 밥 짓기까지 내가 도맡아 했었다.


결혼할 때조차 나는 엄마 돈 한 푼 쓰게 하지 않았다. 동생은 결혼할 때 엄마가 제부에게 이것저것 해주는 모습에 속은 상했지만 아무 말하지 않았다. 언니가 결혼할 때 너무 받는 게 없다고 패물을 해주실 때도 나는? 싶었지만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근데 말을 안 하고 있으니 나는 다 괜찮다 싶으셨던 걸까? 제부 사건이 터지고 나서부터는 평등하지 못했던 지난 일들에 분노가 휘몰아쳤다. 빚잔치로 오갈 때 없던 동생을 내가 데리고 같이 살면서부터는 하루도 마음이 차분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인생의 풍파에 동생도 제정신은 아니었겠지만 10개월이 지나도록 나자빠져 집에서 누워만 있던 동생의 모습에 남편 보기도 미안했고 속에 천불이 났었다. 이때가 암 진단받기 1년 전이었으니 화와 분노는 만병의 원인이 맞다!


돌이켜보면 나는 피곤한 엄마의 삶에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루빨리 돈을 벌어 엄마의 짐을 함께 짊어지고 싶었다.

나는 그 다짐대로 멋지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비교에 눈에 멀어 분노를 하염없이 키워냈었다.


“너는 전세라서 좋겠다. 집이 안 팔려서 부적이라도 써야 하나?”


코로나 직전 같은 아파트에 살던 지인이 했던 말이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이제 막 올리려고 하니 나처럼 전세에 있었어야지! 이제부터 금리 상승은 시작이야! 나는 저점에서 집을 살 수 있겠구나!’


나의 경제를 읽는 내는 모습을 대견해했었다. 자만이었다. 몇 개월 후 코로나가 터졌다. 처음 겪어보는 전염병 시대에 집값이 더 내려가는 거 아니냐며 기대했었던 것 같다.


‘어 이상하다! 왜 금리를 계속 내리지….’


이미 이상을 감지했을 때는 집값이 한 달에 1억씩 오르고 있었다.

인생이 내 계획대로 될 거라던 나의 자만에 가차 없이 돌려차기를 맞았다. 그것도 한방에 K.O로 나가떨어지도록. 내 정신이 아니었다. 나의 지난 경제관은 쓰레기가 되어있었다.

한집에 차는 한 대면 충분하고 차는 사는 순간 감가되는 소비재라고 생각했는데 코로나 시기 중고차 가격도 천정부지로 상승했고 두 번째 차를 샀던 지인은 1년을 타고도 더 비싼 가격에 되팔 수 있었다.


“언니 비트코인이라고 들어봤어? 며칠 전에 남편이 100만 원 주고 샀는데 지금 170만 원이야!”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던진 말에,


“그런 건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라고 일갈했었는데 그때 그 동생을 말릴 게 아니라 같이 비트코인을 공부하고 샀어야 했다. 물론 이건 코로나도 훨씬 더 전의 이야기다.


벼락 거지.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던 단어 하나.

딱 나를 가리켜 비웃는 것 같았다.

세상의 , 타인의 시선에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사회는 이미 방향을 틀기 시작했었고 억울하다고 외치는 나의 모습은 어리석었다.


사회가 그쪽으로 간다면 채비하고 대비를 했어야지.


나는 비교적 받은 게 없다고 왜 나의 아이는 같이 돌봐주지 않느냐를 생각할 게 아니라 엄마에게 부담이 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나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해야 했다.

엄마께 받은 마음들과 지원을 떠올려야 했다.

받지 못한 것 들만 키워 확대 해석을 해댔으니...


세상은 원래 평등하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수많은 성공과 실패는 사실 운의 작용이라는 것도 알 것 같다.

나는 나만의 길을 가면 되는 거였다.

안되는 걸 기를 쓰고 되게끔 만들려고 하면 일이 더욱 꼬인다는 것도 이제는 깨닫는다.


그 굴레에 있었던 나를 안아 주고 싶다.



너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이제 그때의 나는 온데간데없고 이렇게 암에 걸린 나만 남겨진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전 04화나는 13프로 안에 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