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소망 하나

by 나옹

간절한 소망 하나

카톡! 카톡!

아이와 서점에서 보내는 여유롭게 보이는 여름방학의 일상 속에 건강보험공단에서 카톡 알림이 왔다.

OOO 님 산전 특례가 등록되었습니다라고.

산전 특례라…. 사실 암 진단을 받기 전엔 산전 특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암 환자들은 전체 치료비의 5%만 내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고마운 제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우스갯소리로 국가가 내게 해준 게 뭐가 있는데?라는 말을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있다. 아니 국가는 많은 걸 해준다. 근데 이런 제도의 혜택을 모르고 살았으면 더 좋으련만…. 갑갑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평온한 표정을 또다시 장착하여 아이와 대화를 이어가 본다.





“우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보려고 왔는가요? ”


백발의 머리에 중후한 음성으로 나지막하게 물어보시는 교수님. 어쩐지 표정이 웃고 계신다.


“오늘은 수혈 한번 받고 가구요. 다음 주 바로 입원해서 유전자 검사하고 항암 시작합시다”


부산으로 돌아와 다발 골수종 분야 베테랑 교수님을 한 달 기다려 진료를 봤다.

이전 병원에서 검사한 골수 검사 결과지를 보며 앞으로의 항암과정을 설명하신다.


“무슨 일 하나요? ”


“영어 강사입니다”


“그래요? 이상하다…. 젊은 사람들은 이병 안 걸리는데….”

화학물질을 다루는 직업 때문에 발병했을 거란 추측 하셨나 보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한평생 영어를 가르치며 살았다. 접해본 해로운 화학물질은 집에서 청소할 때 쓰는 락스가 전부다.

반복해서 나오는 말.

젊은 사람은 잘 안 걸린다는. 통계를 봐도 전체 환자의 1% 미만이다.

그럼…. 뭘까? 코로나 백신 때문인가? 나는 백신 음모론자가 아니다. 오히려 공공의 이익이 크다면 백신을 맞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었다. 항간에 들리는 백신 접종 이후에 혈액암 환자들이 늘었다는 설. 무엇인가를 탓하고 싶다. 원망의 대상을 찾고 싶어진다..


“수치를 보면 2기입니다”


“다행인 것은 치료제로 쓰는 이 항암제는 머리가 빠지진 않아요”


“!”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 순간,


“어차피 항암 후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 때는 빠지긴 하겠지만요”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 흔히들 골수 이식으로 알고 있는 어릴 적 드라마에서만 보던 단어,

철없던 어린 시절 백혈병에 걸린 가녀린 여주인공에 빙의해서 혼자 놀아보며 나도 백혈병에 걸렸으면 하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사실 세상을 살다 보면 기가 막힐 때가 한 번씩 있는데 이 또한 그 경우다. 로또나 당첨되게 해 달라는 말보다는 이런 걸 놓치지 않고 들어주다니.

물론 정확힌 백혈병은 아니지.


항암을 시작하기에 앞서 또다시 입원하여 전신 MRI와 PET CT를 찍는다.

진단 이후에 생긴 뚜렷한 증상이 혼자 남겨지는 공간에서 호흡이 힘들다는 것이다.

공황장애를 찾아보진 않았지만 비슷한 증상이지 않을까. 하지만 더 병의 증상 따위를 위해 검색하기가 버겁다, 이미 혈액암 검색만으로도 벅찼으므로.

뼈가 아픈 증상이 있는 다발 골수종. 이따금 혈액만이 아니라 뼈에도 고형암이 생기기도 한다는. 그걸 확인하기 위해 1시간 10분에 걸쳐 전신 MRI를 찍는다.

미래 지향적으로 생긴 원통 튜브 안에 들어가려는데 너무 춥고 가슴은 답답해서 터질 것 같은데 움직이면 안 된다. 답답하면 손을 들라 했던가.

50분쯤 지나 윙윙거리는 시끄러운 소리와 갑갑함에 더 견디기 힘들어 손을 들었더니 촬영을 멈추고 잠시 힘들었냐 위로의 말을 건네더니 움직였던 부분을 다시 촬영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던진다.

정해진 시간보다 10분이 추가되었다.


'제기랄!'


욕이 올라온다.


'움직이면 시간이 추가될 거라고 미리 이야기해 주던가!

미리 알았더라면 가슴이 터지는 한이 있어도 참았을 텐데! '


영원할 것 같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원통 튜브에서 해방되었다. 그런데 또다시 PET CT를 찍을 예정이라는 일정을 전해 받았다. 이건 뭐 하는 CT인지.

몸 안에 감마라는 용액을 투여한 후 한 시간 동안 물을 1ℓ 정도 마시고 밀폐된 공간 안에 대기한다. 감마라는 발암물질을 투여했으므로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서다. 여기서도 참 아이러니하다. 암 환자에게 발암유발 물질을 투여하다니. 하지만 위험부담이 큰 만큼 효과도 엄청나다. 힘든 위, 장 내시경 등 없이 한 번에 내 몸 안에 있는 모든 종양과 암이 찍혀 나온다는.

그래서 확실히 암을 진단받은 환자들만 촬영할 수 있다.

감마투액 후 밀폐된 공간에서 스마트폰만 주시한다. 제정신으로는 이 시간과 나의 현실을 견딜 수가 없으니 무엇에라도 정신이 팔려 멍해져야 한다. 이 순간만큼 스마트폰의 발명에 감사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행히 PET CT는 30분 촬영이다.

한 번만 더 견뎌보자!


이윽고 다음날이 밝았다.

항암 시작하는 날.

전날 두 번째로 진행했던 골수 검사 때문인지 엉덩이가 아직 뻐근하다.

총 6차례로 진행되는 치료. 배에 주사를 2주 동안 4번을 맞고 3주 동안 경구 항암제를 복용하고 1주는 휴약기를 가지는 것이 한 사이클이다. 병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워낙 재발률이 높아서 골수종 앞에 다발이 붙었다. 재발했을 때를 고려해 2차 3차 치료제도 찾아보고 상담하고 싶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대사 한 줄.


앞이 너무 어두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단 겨울왕국 안나의 절망에 숲의 장로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앞이 너무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는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해나가면 된다던. 기초적이지만 깨우침을 주는 현명한 말.


엉덩이 주사와 별반 다른 바 없이 생긴 항암 주사를 배에 꽂는데 피부에 항암제가 퍼지는 게 시퍼렇게 보인다.

참 아프다.

그리고 경구 항암제를 비닐장갑과 함께 건네준다. 의아해하는 나를 보며 항암 약은 맨손으로 만지면 피부발진이 난다고 비닐장갑 끼고 먹어야 한다며 간호사가 친절히 설명해 준다. 그런 강력한 약이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들어가면 다 뒤집히는 게 아닐까? 걱정부터 앞서지만 1시간이 지나도 아무렇지 않다.

정말 다행이다. 요즘 항암 약이 발달해서 예전 같지 않다더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항암의 부작용이 크게 나타나지 않으면 다음 날 퇴원해서 외래로 항암치료를 시작하겠다는 설명을 끝으로 입원실에 혼자 남겨졌다. 2인실의 옆 환자가 퇴원하기 전 나에게 한마디 말을 남겼다. 내가 재발률 87%의 최악의 암이라고 울고 있으니 그런 건 다 필요 없다며 암은 항암제가 나와 얼마나 잘 맞는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위로의 말을 전했다.

재발률도 재발률이지만 진단받았던 병원에서 너무 겁을 줬던 터라 일차적 치료에서 완전히 관해가 일어날까도 걱정이다. 4주씩 6차례의 항암 후 골수 이식을 받아야 하는데 나의 혈액검사 수치만 보면 나는 자가 조혈모 이식 (나의 골수를 다시 이식)이 아니라 동종 이식(타인의 골수를 이식)을 받아야 할 거라며 처음 진단했던 여교수님이 장담하듯이 말씀하셨다. 타인의 골수를 받는 것은 암 치료에 효과가 더 좋지만 그만큼 위험하다. 면역거부 반응이 일어나면 급성 백혈병으로 바로 사망할 수도 있다는.

물론 삼성병원과 부산대병원 교수님들은 당연히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이 가능하다고 안심시켜 주셨다.


이제는 소망이 단출해졌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은 집으로 이사 가는 것도 아닌 내 가족들과 건강하게 함께 평균수명까지만 시간을 영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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