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폐렴 안 걸리는데? 이상하네요…. 본인 어제 패혈증으로 사망할 뻔했습니다.”
몇 달 전 나흘 연이어 열이 안 떨어지더니, 종국에는 태어나서 처음 기절이란 걸 해봤다
병원을 바래다주고 바로 출근하려던 남편은 그 길로 나를 싣고 응급실로 내달렸고 각종 검사결과 패렴 진단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을 때 담당 교수님이 이튿날 하셨던 말씀이 불현듯 스치며 지나갔다.
지금 같은 병원 혈액종양내과.
폐렴으로 퇴원하면서 빈혈이 심하단 걸 인지하고 나라에서 해주는 건강검진을 처음 받아봤다.
혈액검사 결과가 매우 걱정되니 상급병원 혈종 과를 가보라는 진단서를 들고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초조함이 몰려온다.
이윽고 내 이름이 호명되고 다정하게 보이는 여교수님 앞에 앉았다.
“본인 뼈 안 아프세요?”
첫마디가 매우 이질적인 질문이다.
도대체 뼈가 아픈 느낌은 어떤 느낌인 걸까? 살면서 한 번도 뼈가 아프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다발 골수종입니다”
다정하게 보이는 교수님에게서 나오는 전혀 다정하지 않은 말.
“혈액암이요?”
내가 되묻는다. 차분한 반사 반응처럼 나온 말 이면에는 피가 싹 식는 기분.
포커페이스의 대가인 내가 지금 내 표정을 그려볼 여력이 없다.
“이분 상태 매우 위험하니 바로 입원시키세요”
내 상태가 위급하단다. 파랗게 질린 얼굴로 간호사를 따라가며 멍하기만 하다.
입원실이 없어 응급실로 일단 들어간다….
“ 또 뵙네요”
몇 달 전 폐렴으로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 봤던 응급실 교수님이 차트를 본다.
“제가 그랬죠? 다발 골수종일 수도 있다고.”
그렇게 그랬었다. 그때 처음 다발 골수종이란 병명을 검색해 봤다.
평균 65세 이상이 걸리는 혈액암. 재발률이 87%.
폐렴으로 입원한 김에 의심되는 검사를 받아보자던 남편에게 다발 골수종은 혈액암의 일종이고 골수 검사를 해야 알 수 있다고 자체 패스했던 그 질병.
그런데 지금은 골수 검사를 하지도 않았는데 혈액 수치만으로도 의심할 여지없이 보인다는 그 질병.
남편을 호출하고 응급실에서 희망 회로를 돌려본다. 그런데 검색하는 족족 나오는 말이 완치 불가능한 병. 재발률이 너무 높다. 생존율이 3기일 때는 23개월. 초기조차도 5년을 넘기기가 힘들다 한다. 희망의 희지도 없다. 나의 죽음을 그려 본 이가 몇이나 될까? 30대의 나이에.
하-
정신을 가다듬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용하다는 울산 점집까지 가서 점보고 왔는데 암 아니래! 걱정할 필요 없다는데? 거기다 한의원 선생님도 설진(혀의 상태를 보고 병을 진단)에서 암 증상은 하나도 안 보이니 걱정하지 말래!”
불과 며칠 전 통화 내용이었는데 이제는 뭐라고 말을 시작 할 수 있을까 막막하다.
“엄마, 오늘이 대학병원 가보는 날이었는데….”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음성이 들려온다..
“ 아~ 오늘이었어? 교수님이 뭐라셔?”
“ 다발 골수종이라고 혈액암 이래”
최대한 담담하게 말을 뱉어봤다.
“....”
순간 정적만 맴돈다.
“.......”
“이 서방이 회사에서 지금 오고 있다네. 자세한 건 교수님이 내일 보호자와 함께 상담한다고 하셔, 엄마 가게 시간 되면 엄마도 올 수 있어?”
“ 일단 알았어,”
간결한 대답에 스며든 목멤.
엄마의 기분을 헤아려 볼 여력이 없다. 아직도 머리가 멍하다.
입원 첫날은 이 이질적인 병에 대해 검색하기 바빴다. 도대체가 병명도 생소한데 찾아보는 내내 병의 증상들이 나의 지난 증상과 일치한다. 나는 평생 등이 종종 아팠다. 체해도 아프고 잠을 잘 못 자도 아프고 종일 오래 걸어도 등 근육이 뻐근하고. 평생을 그리 살아서 최근 들어 아주 많이 등이 아파졌는데도 별거 아니라 여겼다. 이제 보니 근육이 아니라 뼈가 아픈 거였다.
‘이게 교수님이 언급하신 뼈아픔이구나.’
그 좋아하는 쇼핑을 하러 나가는 것도 힘들고 집 앞 10분 거리 장을 보러 나가는 것도 숨이 차서 쿠팡만 줄기차게 시키는 것도 타고난 체력이 약한 데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가 보다라고 치부해 버렸다. 그리고 최근 6개월 동안은 한 달에 한 번씩 감기에 걸렸고, 손 가시를 때다 피가 났는데 이내 괜찮아질 그거로 생각했지만 며칠 뒤 손가락이 곪아서 결국 칼로 째고 고름을 빼는 치료를 받기도 했다. 면역세포 중 하나가 암세포가 되어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다발 골수종. 그러니 감염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었음이 이제야 이해된다….
빈혈 수치 8 이하면 수혈을 받아야 한다. 근데 진단 당시 나는 6이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수치. 돌이켜보니 30대에 나타나기에는 매우 이상한 증상들이다. 참…. 나는 내 몸에 대한 배려가 없었구나.
작년에 오픈한 공부방이 입소문을 타고 잘 되면서 한 몸 갈아 넣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하-
“ 선생님, 저희 수학 선생님이 감기몸살로 일주일째 수업을 못 하고 계세요. 선생님은 참 오래 뵙는데도 아픈 걸 뵌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몇 년 전 나의 애제자였던 과외 학생의 말에,
“ 나는 감기도 5년에 한 번씩 걸리는 사람이야”
라고 당차게 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건강은 자신하는 게 아니라 관리하는 겁니다’ 고 언젠가 티브이 강의에서 들었던 말이 겹치면서 나를 나무라는 느낌을 무시할 수가 없다.
‘이게 뭐지? 나한테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나는 정말로 내가 벌레가 아니라 빛나는 별이 줄 알았는데…. 이렇게 그냥 가라고? 그럼 우리 딸은? ’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이 시끄럽다.
“오진일 거야 한의원 선생님이 아니라 하셨어!”
목이 멘 채 내뱉는 남편의 말에 나는 혹하고 싶다.
가족 주치의나 다름없는 오랜 시간 함께해 온 한의원 선생님은 못 고치는 병이 없다. 설진으로 내가 낮술을 했는지조차 다 맞추시는 분이다. 그래 오진일 거다.
‘ 아! 정말 식겁했잖아 오진인데 당장 죽는데 해서!’
퇴원하고 돌아가면 무용담처럼 빨리 공부방 아이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싶다. 지나간 일처럼.
이튿날
“ M 단백 수치가 매우 높습니다. 단연코 제가 본 다발 골수종 환자 중에 가장 높은 부류에 속합니다. 총 단백 수치도 매우 높아 지금은 멀쩡한 것처럼 보여도 갑자기 혈관이 터지는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어요. 오늘 골수 검사를 바로 진행하고 내일부터 항암을 해야 합니다. ”
다발 골수종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M 단백.
치명타다.
오진일 수도 있지 않냐고 물어보려 했는데 오자도 못 꺼내겠다.
교수님의 명료한 설명을 듣는데도 이야기가 한 귀에서 다른 귀에 빠져나간다.
이 건물 안에 있을 수가 없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