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쉬어지지가 않는다!

by 나옹

숨이 쉬어지지가 않는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누가 그런 말을 했더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왜 심는다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진심 나는 이해를 해보고 싶다.

이제 끝이라는데 훗일을 어찌 도모할 수 있다는 건지 당최 모르겠다.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차가운 젓가락 같은 바늘이 눈앞에 보인다.

당장 진행하겠다는 골수 검사를 하러 온 전공의가 뭐라고 설명을 하는데 듣는 것보다 보이는 게 압도적이다. 초록색 천과 젓가락 같은 바늘.

저걸로 내 골반을 찔러 뼈도 채취하고 골수도 뽑겠다는 거네?

이상하리만큼 두렵지 않다.

따끔.

조금 아프다.

근데 가슴이 더 아프다.

고로 골반 통증 따위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검사 후 지혈을 위해 모래주머니를 올려놓고 있는데 병실에 있을 수가 없다. 나가고 싶다.

호흡하기가 점차 어려워진다. 이건 질병에서가 아니라 심리에서 기인한 거겠지.

정신을 차렸다가도 이내 멍해지고 다시 가다듬기를 수만 번쯤 하지만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던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다발 골수종 분야 최고 교수님들을 찾아봐야지.

예상처럼 다들 부산에서 제일 먼 서울에 계신다.

하-

조금 더 찾아보니 거리는 문제에 낄 수도 없다. 진료 예약이 빨라야 2달이 걸린다. 최대 4달도 있다. 앞이 깜깜하다는 건 이런 거겠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침소라만 머리에서 울린다….

어딘가에서 멜로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그리고 남편의 목소리도. 그리고 내 귀에 남편의 전화기가 전해진다. 분명 내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인데 감각이 내 것 같지 않다. 흑백영화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친구 누나의 지인이 삼성병원에서 일하는데 바로 다음 주에 예약 잡을 수 있으니 형수 주민등록 번호 좀 불러줘요”


또르륵. 내 것 같지 않던 감각이 뜨겁게 내 뺨을 가로지른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도련님이 예뻐 보인다. 나를 위해 자신의 인간관계에서 병원에 일하는 사람들을 다 뒤지고 다녔을 도련님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고마워요…. 흑흑…. 고마워요”


진단받고 처음으로 흐르는 눈물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멈출 수도 멈출 의지도 없이.






“안됩니다! 지금은 멀쩡한 듯해도 당장 쓰러질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퇴원은 다시 생각해 보세요”


다정한 듯 보이는 여 교수님은 여전히 다정하지 않은 말씀을 하신다.

환자를 걱정하는 마음이 보이지만 내 맘 깊은 곳에서 서울을 다녀와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샘솟는다.


“선생님, 그래도 서울 한번 다녀오고 싶습니다.”







“엄마~~~ 보고 싶었어”


태어나 처음으로 며칠을 조부모님 집에서 보낸 딸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온다. 왠지 내가 없는 앞으로의 우리 딸의 모습일 것 같아서. 이럴 줄 알았으면 둘째도 낳을걸. 나 떠나고 나면 서로 의지하게. 아니지. 애가 둘이면 홀아비가 될 우리 남편이 더 힘들겠지. 눈시울이 붉어지지만 다시 포커페이스를 완벽하게 장착한다….


“ 며칠 사이에 키가 큰 것 같아!”


아직은 자기 자신이 중심인 초등학교 2학년. 이야기의 주제를 내가 아니게 돌리는 건 쉽다.






“언니가 서울 가서 용돈 하래”


엄마가 붉은 봉투를 내민다. 색 없이 말라가던 내 세상에 붉은색이 돌아왔다. 조금 따스해지는 것 같기도.

수원행 SRT 안에서 또다시 갑갑함이 물밀 듯 밀려온다. 진단받은 후 어디 안에 있는 게 너무 힘들고 호흡이 어렵다. 진단 후 일주일간 회사를 쉬었던 남편 대신 함께 가신 엄마의 얼굴은 평온해 보이네. 나의 포커페이스가 어디에서 왔겠는가.




띠링~


“도착 확인이 되었습니다. 예약번호 oo입니다”


그냥 암 병동 출입문을 통과했을 뿐인데 예약했던 내 휴대전화 번호와 연동되어 접수되었단다. 이전 병원에서는 원무과에 접수, 수납하고 나서 또다시 종이 예약증을 들고 인파를 가로질러 담당 간호사에게 예약증을 접수시켜야 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은 2055년을 사는 것 같다고 하는데 나는 그들처럼 태평양을 건널 필요도 없이 369km를 이동했을 뿐인데 10년은 더 먼 미래에 있는듯하다.

적당히 붐비고 여유로운 모습이 좋아서 나는 해외여행을 가도 그 나라의 수도보다는 제2 혹은 제3의 도시를 방문한다. 한국의 제2 도시,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휴양도시 그리고 정열적인 도시 부산. 한 번도 비수도권에서 사는 것에 불만이 없었는데 의료 시설차이가 실감난다.

가져온 의료 CD를 등록하고 식사를 하면서 기다리는데 디저트가 보인다. 불현듯 지난달 내 생일에 공부방 학생들이 케이크를 사 들고 와 축하해 주던 모습이 떠오른다. 폐렴으로 고생한 선생님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했다던 아이들이 벌써 그립다. 그때는 패혈증으로 죽지않아서 참 다행이다라고, 사랑받을수 있음이 행복하다고 그런 순수한 마음을 받을 수 있어서 참 따스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행복이 아련히 느껴진다. 다만 정신적 충격에 숨 쉬는 게 힘들 뿐.



“의사들의 실력 차인 크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치료하는 환자 수가 많기에 데이터가 많고 임상적 경험이 축적되었을 뿐입니다. 다발 골수종의 경우에는 1차 치료는 전국 어디를 가든 똑같은 약과 방법을 씁니다. 물론 1차 치료제보다 좀 더 임상 결과가 좋은 약도 있습니다만 아직 보험이 통과 안 되어서 약값만 1억이 넘지요. 내가 너무 돈이 많아서 어쩔 수가 없다 하면 그 약을 써도 됩니다만 1차 치료제도 작년에 보험을 통과한 효과 좋은 약입니다. ”


서울에서 항암을 할지 부산에서 항암을 할지 고민하는 나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삼성병원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선생님. 우선 저는 이 병에 대해 아직 정리가 안 된 것 같습니다. 저처럼 젊은 사람은 평균보다는 오래 사나요?”


내가 가장 묻고 싶었던 말. 그래서 나는 얼마나 살 수 있나요….


" 10명의 환자 중 1~2명은 무슨 약을 써도 효과가 없습니다. 이분들은 6개월에서 1년을 넘기기가 어렵지요. 그리고 또 1~2명은 10년 넘게도 삽니다. 재발이 늦게 되어서. 나머지는 그 중간입니다. 물론 젊은 사람들은 더 오래 살긴 합니다만 이병은 젊은 사람이 거의 없어서 누적된 임상 결과치는 별로 없네요. "


10년! 내가 다발 골수종을 검색해 본 이래로 가장 길게 나온 숫자다!





부산에 내려가서도 치료 잘 받으세요라고 적혀있는 진단서를 들고 수원역으로 이동하는데 한결 숨 쉬는 게 부드러워졌다.


“ 앞이 안 보였는데 이제 좀 보이는 것 같아, 엄마”


10년이란 단어를 들으니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전 병원에서 나를 진단하셨던 선생님도 물론 훌륭하시겠지만 마치 내가 당장 죽을 것처럼 계속 말씀하셨다. 환자로서는 의사 선생님에게서 나오는 한마디가 천금의 효과를 주기도 하고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만약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어투로 아이들을 대해야지! '


꿈같지만 관해 후 나의 일상을 그려본다..


“ 엄마 말 듣기 잘했지? 이것만으로도 서울 올라온 보람이 있네?! ”


사실 삼성병원 예약하고 일주일 동안 마음이 하루에도 열 천 번은 바뀌어서 괜히 서울 가보는 게 아는가 하는 의심이 많이 들었다. 올라가다 내 몸에 큰일 날 수도 있고 올라간다 한들 앞으로도 항암을 서울로 왔다 갔다 해야 한다는 게 엄두도 안 났기 때문에.

그런데 다행히 삼성병원 다녀오면서 멍하던 머리가 정리되었다.

그래 나는 10년도 더 살 거야! 희망 회로가 다시 돌아간다.

희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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