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3프로 안에 들 거야!

by 나옹


첫 사이클 안에서 네 번째 항암 주사를 맞는 날.

아침으로 먹은 미역국을 결국 병원 화장실에서 게워 냈다. 분명 저녁에 먹는 항암제는 괜찮은 것 같은데 요 며칠 아침마다 속이 불편하다. 추측하건대 아침에 먹는 감염 예방약 때문에 것인 같다. 다발 골수종은 면역세포의 하나인 형질세포가 암세포가 된 것이라 감염에 매우 취약하다. 대부분의 다발 골수종 환자들이 감염에 의한 패혈증으로 사망할 정도로. 나 또한 발병을 모르고 있다가 얼마 전 패혈증으로 사망할 뻔했었지. 거기다 기립성 저혈압이 심해졌다. 앉았다 일어나면 눈앞이 깜깜하고 어지러워 움직일 수조차 없고 살짝 부딪히기만 했는데 다리에 멍이 엄청나게 생긴다. 불현듯 내가 혈액암 환자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듯이. 외래 진료를 보기 전 너무 힘들다 호소하니 항암 주사실 침대 하나를 내어준다. 이름을 묻더니 교수님께 전달해 속을 편하게 하는 주사 처방이 내려왔다. 덕분에 편하게 침대에서 기다리며 대기할 수 있었다. 항암 환자들이 아주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으니 간호사들의 배려가 눈부시다.

외래를 보기 위해 채혈을 하고 1~2시간을 기다려 검사결과가 나오면 외래 대기 명단에 오르고 다시 한 시간 정도를 기다리면 드디어 교수님을 만날 수 있다. 이번에는 편하게 대기했다.


“음…. 특별히 말씀드릴 건 없고요. 헤모글로빈수치가 9네요.”


'9라니!'


항암 첫 사이클을 했을 뿐인데 헤모글로빈 수치(빈혈 수치)가 6에서 9로 올랐다! 내심 항암을 시작하고 몸 상태가 떨어져서 걱정했는데 약이 잘 듣는다는 말이 아닌가!


“유전자 검사결과도 나왔는데 불리한 유전자는 없습니다. 이러면 치료가 효과적일 겁니다”


“!”


희망의 ' 희 ' 자가 보인다.!


“2주 후에 볼게요”


교수님과 상담 후 위장장애를 유발하는 약도 뺐다.

이제 주사실에서 한 사이클의 마지막 주사를 맞으러 가면 된다.

항암 주사실에 도착 알림을 하고 나면 그제야 내 몸무게에 맞춰 항암제 약을 짓기 시작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한 시간 정도 대기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나의 항암 주사는 배에 맞는 주사이기 때문에 10초면 끝이 난다.

이제 다음 사이클을 시작하기 전 2주 동안 경구 항암제만 복용하면서 집에서 쉴 수 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음이 얼마나 크나큰 행복인지 잃고 나서야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동안 못 먹었던 음식들을 다 챙겨 먹어야지!'


삶에 대한 욕구인지 음식에 대한 욕구인지 식욕이 갑자기 폭발할 시작 했다.


“암은 못 먹어서도 죽는 병이기도 하니 항암 동안에는 잘 먹어야지!”


PET CT 촬영을 앞두고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중년의 여성분이 당부의 말로 건네셨던 말이다. PET CT 촬영이 가능한 지하실은 아무래도 암 환자 전용이다 보니 환자들 나이대가 연로하시다. 그런데 젊은 사람이 지나다니니 많은 분이 쳐다보고 말을 걸어오셨었다.

그때 들었던 당부의 말을 가슴에 품고 정말 착실하게 잘 먹기 시작했다. 잘 먹을 수 있음이 이토록 감사한 일인지 전엔 알지 못했다. 몇 달 전 걸린 폐렴으로 살이 10킬로가량 빠졌다. 이어진 암 진단으로 인한 식욕부진으로 나는 20대 이후 다시 몸무게 앞자리가 4로 바뀌었다. 그런데 조혈모세포 이식 전인 항암 6 사이클이 끝날 무렵 나는 10킬로가 다시 그대로 쪘다. 항암 하면서 너무 잘 챙겨 먹은 탓이리라.




무사히 첫 사이클이 끝나고 두 번째 사이클이 시작되었다.

“M 단백 수치가 200에서 50으로 떨어졌네요!!”


차분하신 교수님이 살짝 흥분하시면서 말을 이으셨다.


“아주 좋아요! 사실 200이면 찾아보기 드물 정도로 굉장히 높은 수치였거든요”


교수님 모니터를 빠르게 훑어보니 헤모글로빈 수치도 9.8이다!


“골수 내 암세포가 죽으니 이제 정상 세포들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면서 정상 기능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약이 잘 듣는구나! ’


엄청난 기쁨이 샘솟는다.

희망의 '희' 자가 완성되었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긍정 회로가 무한히 다시 돌기 시작했던 것이.

아파진 나의 몸도 나이고 항암을 하는 나도 나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 내 삶이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물론 그 아름다운 감정이 오래 지속하진 않았다. 다시 수많은 경우의 수와 걱정들이 나를 잠식하지만 암 진단을 받고 처음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청명한 가을하늘.


‘재발률이 87%라고? 그럼 내가 나머지 13% 안에 들면 되지!’


호기롭게 하늘을 보며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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