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의 기회
“홍 차장, 너 때문에 회사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알고 있나?”
대표이사의 목소리가 회의실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다. 회의에 참석한 모든 팀장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장비 정상화가 새벽에 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없었습니다.”
“변명은 필요 없어, 결과가 전부야.”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했지만 이미 나를 죄인으로 결론을 낸 곳에서 어떠한 말도 수긍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대표이사 앞에서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도 않았다.
당시 나는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검수 당일 내가 맡고 있던 마크 카메라 인식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리 알 수 없었던 이유는 장비 정상화가 검수 당일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의 변론을 도와주지 않았고 대표이사의 질타만 이어졌다.
퇴직을 마음먹은 것은 마음이 상해서가 아니었다. 팀장자리에서 팀원으로 내려가서도 아니다. 조직에서 나의 입지, 다시 말해서 나의 업무 분야가 회사 메인의 위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회사에서는 더 이상 나의 미래가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몇 달을 고민했던 것 같다.
‘회사가 원하는 엔지니어로 전공을 바꿀까? 그렇다면 윗 상사가 좋아할 텐데.’
‘아니면, 내가 메인으로 될 수 있는 회사로 이직할까? 하지만 어떤 회사가 그럴 수 있는지 어떻게 알고 가지?’
나도 처음에는 회사를 위한 인재로 변화하려고 했다. 다른 전공 교육을 받고 다른 팀 팀장을 맡으면서 내 전문 분야를 포기하면서 다른 분야를 공부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고유 업무를 시키지 않은 것이 아니었고 업무량만 두 배 세배 늘어났다. 결국,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국 그 사건이 터지면서 고민하던 마음이 확신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10년을 보낸 회사에서 이직한다는 것은 큰 고민이 된다. 모든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을 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정글에서 버려지는 듯한 생각마저 들었다.
‘10년 후 나는 여기에서 어떤 모습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없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대답이 두려웠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직, 배신인가 도전인가
이 시점이었다. 내가 다시 이력서를 정리하기 시작한 때가. 너무 오래 관리하지 않았지만 이력서를 구직사이트에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헤드헌터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3곳을 면접보고 2곳에서 취업 제안이 들어왔다. 하지만 바로 퇴사를 결정하지 못했다.
한국 직장 문화에서 이직은 여전히 미묘한 주제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이직자를 배신자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첫 회사를 1년 만에 나왔을 때도 그랬다. 선배의 소개로 들어간 회사였기에 죄책감이 컸다. 선배에게 전화를 했을 때 그분의 차가운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성우야, 네가 그럴 줄 몰랐어."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나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월급 체불에 시달리면서, 부산과 대전을 오가며 체력을 소진하면서, 과연 무엇을 얻었을까? 회사에 대한 충성? 아니면 무의미한 인내?
"충성심이란 서로에게 가치를 더해주는 관계에서만 의미가 있다."
피터 드러커 –
회사는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주어야 하고, 나는 회사에 기여해야 한다. 그 균형이 깨졌을 때, 이직은 배신이 아니라 당연한 선택이다.
10년 차의 두려움
그런데 왜 나는 그토록 망설였을까?
첫 번째는 '매몰비용의 오류'였다. 10년을 투자했으니 그것을 버리기 아깝다는 생각.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10년은 이미 지나간 시간이다. 중요한 건 앞으로의 10년이다. 지금 이 회사에서 계속 있으면 10년 후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 답이 긍정적이지 않다면, 매몰비용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두 번째는 '나이'였다. 마흔에 가까운 나이에 이직하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젊은 후배들 사이에서 나만 나이 먹은 신입이 되는 것도 부담이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니 오히려 그때가 적기였다. 10년의 경력은 새로운 회사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다. 더 늦으면 정말로 이직이 어려워진다. 50대에 이직을 고민하는 것보다, 40대에 결정하는 것이 현명하다. 지금 현재는 50대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세 번째는 '편안함에 대한 집착'이었다. 지금 회사는 익숙했다. 업무 프로세스도 알고, 사람들도 알고,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안다. 그런데 새로운 곳에 가면? 모든 것을 다시 배워야 한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편안함'과 '성장'은 공존할 수 없다. 편안하다는 것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나는 지금 안전지대(Comfort Zone)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조언
고민이 깊어지는 이때 읽었던 책이 있다. 그 책에서는 고민하는 것을 아직 결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다른 말로 무엇을 선택하든 상관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 자신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
"성우야, 지금 고민하는 건 '이직할까 말까'가 아니야. '변화가 두려운데 어떻게 극복할까'야. 그런데 그 두려움은 이직을 안 해도 언젠가 찾아와. 회사가 망하거나, 구조조정을 당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무너지거나. 그때는 선택권도 없어. 지금은 적어도 선택할 수 있잖아."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두 번째 회사가 문을 닫았을 때, 나는 선택권이 없었다. 급하게 이력서를 돌리고, 불안에 떨며 면접을 봤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좋은 제안을 받았고, 충분히 고민할 시간도 있고, 협상할 여력도 있다. 이럴 때 움직여야 한다.
이직의 기술
결정을 내리고 나니 실무적인 질문들이 쏟아졌다. 어떻게 퇴사 의사를 밝힐까? 인수인계는? 동료들에게는 뭐라고 말할까?
나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웠다.
첫째, 감정적이지 않게. 회사나 상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더 나은 기회가 와서"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현실적으로 이 회사에 나의 전문파트 부서가 없고 백업 인원도 없는 상태에서 나의 전문분야를 살릴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미래를 위해 맞다고 생각했다.
둘째, 충분한 인수인계 기간을 둔다. 최소 1개월, 가능하면 2개월. 나의 명예는 마지막 순간에 결정된다.
셋째, 다리를 태우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른다. 특히 우리 업계는 좁다. 깨끗하게 헤어져야 한다.
새로운 출발의 날
첫 출근 날, 회사 로비에 섰을 때의 그 떨림을 잊을 수 없다. 10년 만에 다시 느끼는 긴장감. 새로운 명함을 받아 들었을 때, 낯선 이름표를 목에 걸었을 때, 나는 다시 신입이 되었다.
첫 주는 정말 혼란스러웠다. 이전 회사의 업무 방식이 몸에 배어 있어서 자꾸만 헷갈렸다. 간단한 결재 하나 올리는 것도 물어봐야 했다. 나보다 어린 후배가 나에게 업무 프로세스를 설명할 때,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자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 회사의 경험이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 새로운 회사가 놓치고 있던 부분, 내가 제안할 수 있는 개선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문제 해결 방식.
3개월이 지났을 때 팀장이 말했다.
"홍 차장 오시길 정말 잘했어요. 잘하니까 계속 일을 드리는 겁니다."
그때 깨달았다. 이직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10년의 경험에 새로운 환경을 더하는 것이었다. 1+1이 아니라 10+새로운 가능성이었다.
교훈: 이직은 리셋이 아니라 업그레이드다
많은 사람들이 이직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당신이 쌓아온 경험, 노하우, 인맥, 전문성은 어디를 가든 따라간다. 단지 그것을 발휘할 무대가 바뀔 뿐이다.
오히려 새로운 환경은 당신의 가치를 더 높여준다. 한 우물만 판 사람보다, 여러 조직 문화를 경험한 사람이 더 넓은 시야를 가진다. A회사의 장점과 B회사의 장점을 결합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이직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만일 지금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라.
"5년 후, 지금 회사에 그대로 있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새로운 회사로 간다면, 5년 후 나는 어떤 모습일까?"
두 답을 비교했을 때, 후자가 더 매력적이라면 움직여야 한다. 물론 이직이 항상 답은 아니다. 현재 회사에서 성장 가능성이 있다면, 굳이 나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정체되어 있고, 배울 것도 없고, 미래가 불투명하다면?
"인생은 B(Birth, 출생)와 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 선택)이다."
사르트르 –
이직도 마찬가지다. 두려움과 안정 사이의 선택. 그 선택은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이직한 지 10년이 지났다. 1년 뒤 비전팀 팀장이 되었고 임원으로 승진했다. 디스플레이 검사 분야에서 나만의 영역을 구축했고, 이후 이차전지 검사 분야에서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전 회사에서는 불가능했던 일들을 하고 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끔 이전 회사 동료들을 만나면 그들이 말한다.
"너, 이직 잘했다."
물론 모든 이직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 잘못 선택하면 후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봐야 한다. 시도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시도하고 배우는 것이 낫다.
마무리: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제목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나이가 많든, 경력이 오래됐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변화를 선택할 용기'가 있느냐다.
첫 회사를 나올 때도 두려웠다. 하지만 나왔기에 두 번째 회사에서 전문 분야를 찾았다. 두 번째 회사가 문을 닫았을 때도 막막했다. 하지만 그 위기가 세 번째 회사로 이어졌고, 그곳에서 10년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 네 번째 회사에서 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있다.
인생은 한 번의 선택으로 끝나지 않는다. 여러 번의 출발이 있고, 그때마다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이직은 그 가능성을 여는 하나의 문이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곳이 답답하다면, 문을 두드려보라. 열리지 않으면 다른 문을 찾아보라. 언젠가는 당신에게 맞는 문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기억하라. 나이는 숫자일 뿐이고, 경력은 짐이 아니라 자산이며, 이직은 도망이 아니라 도전이다.
당신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