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by 레몬소르베

꿈을 꿨다. 아빠가 나왔다.

임신하면 몸에서 불안을 조성하는 호르몬이 나와, 자주 꿈을 꾼다고 한다. 근거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임신을 자각한 이후로 늘 꿈을 꿨다. 자궁이 커지며 방광을 자극해서 잠을 오래 푹 자지도 못하거니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호르몬을 지배했다는 사실도 어느정도 일리가 있어 믿고 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우리는 어느 장소에서 만났으며 나는 아빠를 매우 반가워했다. 아빠는 어디론가 가야 한다고 했지만, 그렇다면 나도 따라가겠다며 어디론가를 뒤따라갔다. 그리고 꿈에서 깼을 때는 내가 아빠가 나오는 꿈을 꿨구나, 라고만 생각했다.


임신테스트기를 하고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병원에 방문하면, 세포들이 내 자궁에 착상을 했다는 것이 초음파로 확인이 된다. 아기집을 확인하면 임신 확인서를 준다. 우리 아기의 출산 예정일은 4월 17일이다.

아기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나는 부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낳아봐야 알 수 있다는 그런 보편적인 감정은 아니었다. ‘무슨 생각으로 날 가진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렇거니와 나는 둘째였으며, 오빠와 연년생 터울이었다. 고작 14개월 차이. 몸도 회복하기 전에 생긴 나는 무슨 생각으로 생성된 사람인가가 궁금했다.


엄마 생신 기념 횟집에 갔다. 아기의 성별이 나왔다고 말해주며, 자연스럽게 엄마의 출산 과정 이야기로 넘어갔다. 엄마는 그냥 내가 생각지도 못하게 생겼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런 것은 없다고, 했으니까 생겼겠지 라는 대수롭지 않은 멘트로 넘어갔다. 계획을 했더라면, 또는 하나로만 족했더라면 이 세상에 없었을 나를 생각하니 운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또 생각해보게 된다.


17주인 현재까지 크고 작은 몸의 변화 들을 느끼며, 아직은 발길질이 엄마의 뱃가죽에 닿지 않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는 이 아이에 대해 나는 매번 생각한다. 혹여나 잘못되진 않을지, 아직 느끼지도 못하고 화면으로만 마주한 생명에 대해 얼마 전 남편이 물었다. 나는 조금 다르냐고. 본인은 말로만 들어서 인지만 하고 있을 뿐 아직 잘 모르겠다고. 신체적 변화에 대해 무언가 달라지고 있다고는 느끼지만, 아이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마음을 먹고 생성한 세포이지만,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가끔 잘 가던 출근길에서도 문득 ‘내가 이걸 왜 해야하지?’라는 마음이 드는 것처럼, 진정 아이를 원했다고 해서 그 외의 모든 요소들을 준비를 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대답할 수 없다. 준비 따위 될 수 없다라고 말하며 그런 것들은 키우면서 다 된다라고 말하는 엄마(들)를 보며, 어느 부분까지 덤덤해져야 하는 것인지 나는 감히 지금은 헤아릴 수 없다.


아빠가 써서 낸 출생 신고서를 얼마 전에 부산에 간 김에 법원에 들려 받았다. 잊고 있었던 아빠의 생일을 알게 되었다. 4월 19일. 아빠는 대졸이었고, 그 때도 건설업을 하고 있었다. 투박하지만 정갈한 글씨로 내 출생 신고서를 써내려 갔을 때 아빠는 무슨 감정이었을까. 울컥하는 감정이었을지, 병원에서 준 서류를 보며 무덤덤하게 옮겨 적었을지, 병원에서 준 서류를 보지 않아도 나의 출생 시간 즈음은 외우고 있었을, 어쩌면 내 탄생을 누구보다 기뻐했을 지는 알 수 없다. 본인에게 물어볼 수 있는 시간은 지났고, 유일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지독히도 아빠를 미워해서 이야기를 이어갈 수 없다. 출생 신고서를 받고서도 출생에 대한 이야기는 그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다. 결국 이 삶이 끝나고 종교가 말하는 것처럼 그 이후의 세상이라는 것에 도래한다면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이따금 나는 아빠를 그렇게 사랑한지도 몰랐으면서, 얼른 이 삶이 끝나고 아빠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성당에서는 믿지 않을 논리지만, 인간의 삶이 환생으로 반복이 된다면 우리 아가가 조금 늦게 태어나 아빠의 생일에 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 물어 볼 것이다.




날 사랑 한거니, 날 사랑 할거지, 나를 두고 가지 않을거지? 이번에는 함께 할거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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