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le #2 “해바라기 밭에서 잃어버린 것.”

by 만년산마녀

Miracle #2

2023. 08. 01. 월요일


Taize 9일 차 : “해바라기 밭에서 잃어버린 것.”


지옥문의 시작이었다. 나는 몹시 아팠다. 21일 주기로 어김없이 찾아오는 생리통. 마침내 그 지옥문이 열린 것이다. 진통제가 있었지만 3시간 간격으로 먹어야만 효과가 있다. 하지만 잠자는 동안에는 3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나의 복통이 시작된 것이었다. 하체가 전기 고문을 받는 듯했다. 아랫배의 모든 세포들이 억만 개로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거야 이런 고문을 받을 바에는. 약을 먹어야 하는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아침 8시 30분쯤 일어났지만 룸메이트들은 다 나가있었고 나는 움직일 수가 없어서 고통스러워하다 지쳐서 다시 잠들었다.


그러다가 20분 뒤 나는 눈을 떴다. Henri에게 영상이 와있었다. 그는 나를 찾고 있는 듯했다. 같이 아침에 교회에 가기로 했었으니. 하지만 내 몰골과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이 상태로는 만날 수가 없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거짓말을 할까? 원래의 나 같으면 남자한테 내가 생리 중이라고 말을 못 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에. 하지만 그냥 이 순간엔 거짓말하는 것보다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앞으로 6일간 계속 이럴 테니까. 그래서 용기 내서 그에게 내가 지금 생리 중이라서 못 갈 것 같다고 말했다. 보내놓고 나서 너무 수치스러워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한국에서도 이런 말은 잘 안 한다. 어떤 여자들은 친한 친구들끼리는 성별이 다르더라도 생리에 대한 말을 한다. 하지만 나는 민망해서 단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었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너무 아프면 생리통 때문이라고 남자한테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남자에게 지는 것을 싫어했던, 남자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했던, 남자에 대한 대항심이 줄어든 것이다. 한마디로 심리적으로 치유된 것이다.) 겨우겨우 몸을 움직여서 진통제를 먹었다. 밥을 안 먹었기 때문에 40~50분이 지나야지 약기운이 돌 것이다. 탄수화물과 같이 섭취했다면 보통 30분 내외로 효과가 있지만 지금은 먹을 것이 없었다. Henri는 정말 자상하게도 내게 “음식을 가져다줄까?”하고 물어봤다. 나는 정말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고통으로 인해 찡그린 표정과 아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애써 밝은 척 DM을 보냈다.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안 돼. 절대로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어.’ 그리고 그는 Oyak에 일하러 가야만 했었기 때문에 그의 귀한 시간을 뺏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30분 뒤, 누군가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door to door> 봉사자들이었다. 지난 일주일 간은 어른 숙소에서 지냈었기 때문에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아무도 간섭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여기는 young people 숙소라서 9시 예배가 시작되면 숙소에서 안 나온 사람이 없는지 체크하는 것 같았다. 그들도 나처럼 이곳에 처음온 사람들이리라. 여자 두 명과 남자 두 명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는데 꽤 밝게 나한테 인사를 건네왔다. 나는 다 죽어가는 얼굴로 미안하다고 내가 아파서 가지 못했다고 내 사정을 말했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 혹시 생리대가 있는지 물어봤다. 그녀는 짐짓 당황하더니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내 상태를 보더니 심각성을 깨닫고 순순히 물러갔다. 현금이 없는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생리대를 살 수 있을까? Noey의 남자친구 “동민”에게 환전을 해달라고 부탁해 볼까? 나는 “동민”의 연락처를 몰랐기 때문에 Noey에게 환전을 좀 해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하지만 “동민”은 이미 얼마 전에 떠난 다른 한국여자에게 환전을 해줘서 지금 돈이 얼마 없다는 말을 들었다. Noey는 내게 대신에 한국교회에서 이번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왔으니 그들에게 물어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한국 사람들이랑 엮이기 싫어서 이 수도원에 들어온 건데, 한국인에게 부탁을 또 해야 된다니. 분명 그들은 내게 지나치게 많은 질문들을 하겠지? 하. 벌써부터 스트레스가 올라왔다.



그렇게 한동안 침대에서 버티다가 약기운이 돌아서 나는 샤워를 하고 왔다. 그리고 한 가지 심각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어제 샤워하면서 공공욕실에 손목시계를 놓고 온 것이었다. 다시 가보았지만 모든 칸에는 손목시계가 없었다. 몸도 아픈데 더 기분이 우울해졌다. 그 시계는 선물 받은 시계라서 소중한 시계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은 무조건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생리대 a sanitary pad를 사야만 한다. 씻고 막 숙소를 나가서 걸어가는 찰나, 또 다른 기적이 내게 응답했다.


저 멀리서 한국 소년이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13살 남짓 돼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Henri가 머물고 있는 숙소의 바로 옆에서 세 명의 한국 소년들이 지내고 있었다. 나는 정중하게 존댓말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현재 소매치기를 당해서 현금이 없다는 점, 그리고 지금 생활을 위해서 돈이 좀 필요한데 50유로 정도 환전해 줄 수 있는지를 예의 있게 부탁했다. 그 소년은 굉장히 호의적으로 당연히 해줄 수 있다고 하였고, 그는 본인은 교회에서 와서, 다 제공해 주시기 때문에 개인돈 쓸 일이 없다고 50유로로 충분하겠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나는 80유로로 해주실 수 있냐고 하여 그 자리에서 그날 환율로 그의 한국 계좌로 한국 돈을 보냈고 그는 바로 80유로를 내게 주었다. 그 80유로를 받는 순간 나는 눈물이 고였다. 통장에 돈이 있는데도 생리대를 살 수 없는 심정을 아는가? 마침내 나는 생리대를 살 수 있게 됐다. 저 멀리 교회에서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그 길로 Oyak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곳에는 Henri가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아이스크림 파트에서 일하고 있다고는 들었지만, 내가 생리대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왠지 너무 부끄러웠다. ‘아.. 어쩌지..? 나중에 갈까?’ 그러기에는 내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이제 입을 옷도 없었고. 생리 흔적이 묻은 속옷과 옷들도 나는 다 세탁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Oyak이 24시간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짧은 시간 열렸다가 닫혀버리기 때문에 이 기회를 놓친다면 더 큰 재난(?)을 맞이할 수 있었다. Henri에게 오늘 언제까지 Oyak에서 일하냐고 묻자 그는 일이 끝났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어 Oyak으로 갔다.



하지만 Henri는 아직도 아이스크림을 판매하고 있었다. 정신없어 보이긴 했지만 생리대를 파는 곳의 카운터와 너무 가깝게 연결 돼 있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일단 그의 일하는 모습을 추억으로 남겨놓고 싶어서 동영상을 촬영했다. 그리고 우리는 간단하게 서로 인사했다. 그가 바빠 보였기 때문에 너무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얼른 생리대를 구매했다.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고 퀄리티도 그렇게 좋지 않았지만 어쨌든 나는 속으로 “할렐루야”를 외쳤다. 그렇게 급한 용무를 해결하고 나는 비로소 마음에 안정을 되찾았다. 그동안 돌아다니면서도 얼마나 신경이 쓰이고 불편했었는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행인 건 내가 정신력이 굉장히 강한 편 이기 때문에 힘든 것을 잘 숨길 수 있다는 점이다. 아 그리고 물론 진통제도 한몫했다. 오늘 아침이 가장 큰 위기 상황이긴 했지만. 부디 앞으로 남은 기간 잘 버틸 수 있기를.


어느새 점심시간이었고, 나는 생리대 a sanitary pad를 빌려준 Noey에게 새로 산 생리대를 주기 위해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갔다. 왜냐하면 그녀는 나보다도 더 오래 이곳에 머물 것이기 때문에 그녀의 것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준 선물이라며 한사코 내가 주는 것을 받지 않았다. 대신 같이 밥 먹어줄 수 있냐고 내게 물었다. 그래서 나는 엉성한 나무상자를 가지고 와서 앉았다. 왜냐하면 의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른 지역에서 밥을 배식하는 자리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 Noey는 어른 지역에서 배식하는 봉사활동을 했었다. 처음에 내가 동영상을 찍는 모습들을 보고 귀엽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래서 내게 말을 걸었다고. 자신은 내가 온 첫날부터 나를 봤다고 했다. 우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재빠르게 식사를 마쳤고 그녀는 다른 봉사활동을 하러 갔고 나는 명상을 하기 위해서 떠났다.


“침묵의 숲”. 이 숲에서는 큰 소리를 낼 수 없다. 아마도 숲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뜻인 것 같다. 공식적으로는 말을 하지 말라고 적혀 있지만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그전에도 두세 번 이곳에 와서 나는 한국 여자“은경”과 깊은 종교, 사랑,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었다. 그녀는 나를 본 첫날 내가 마음에 든다 했고. 본인과 같이 나중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자고 했다. 내가 이번에 못 가게 된 이야기를 듣더니 그 친구에게 화내지 않는 내 모습이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다. ‘왜 나는 나 자신을 항상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스스로를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됐다.


숲의 입구에 들어서자 두 갈래의 길이 나왔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 그리고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길. 정해진 표지판이 있는 길은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기 때문에 명상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인적이 드문길로 향했다.


Henri한테도 명상을 하러 간다고 말했다. 첫째 주에 나는 밤늦게 도착해서 여전히 소속된 그룹이 없었다. 독일에서 온 “은경”역시 소속된 그룹이 없었다. 나는 그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으나 많은 사람들이 소속되니 그룹이 있어서 놀랐다.


모포를 깔고 막상 명상을 시작하려 하니 아침에 나를 기다렸을 Henri가 생각났다. 그리고 많이 미안해졌다. 그래서 그를 위해서 그림을 그려주고 싶었다. 가방을 정리하던 중 선글라스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맙소사, 손목시계에 이어 선글라스까지? (Seriously?!) 나 다운 사건이었다. Henri한테 물병을 잃어버린다고 놀리고 있지만 사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잃어버리기 여왕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담담했다. 그래 잊자 잊어. 하지만 손목시계는 되찾고 싶었다. 소중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장실에 “손목시계를 찾는 전단지”를 만들어서 붙여보자라고 생각했다. 일단은 다 잊고, 그림을 그렸다. 사실 나는 이곳에 와서 꽤 많은 사람들에게 수채화를 그려줬었다. 고마운 사람들 5명,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해 온 사람들 2명. 그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Henri는 내게 영혼의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그에게는 2장을 그려주고 싶었다. Taize에 와서 그린 그림들 중 제일 영감이 많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빠르게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하나는 우리가 울려 퍼지는 종 앞에서 서있는 모습, 하나는 어제 Oyak앞에서 체스를 두던 모습이었다. 수성펜으로 밑그림을 그린 뒤 한국에서 가져온 미니 수채화로 색칠을 해나갔다. 숲 속 향기와 벌레 우는 소리 새소리는 나를 더 평온하게 해 주었다. 그림 그리는 것은 나의 영혼을 치유해 주는 기분이어서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글 쓰는 것이 내 안에 쌓여있는 독소와 에너지를 배출해 주는 역할이라면, 그림 그리는 것은 내 안으로 에너지를 채워주는 작업이었다. 내 영혼을 치유해 주는. 17살 때 고등학교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시아, 넌 재능이 있어. 미대에 지원해 보도록 해.”


나는 정말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광고, 글쓰기, 그림 이런 분야는 정말 내가 꿈꾸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반대할 것이 뻔했다. 아버지는 공무원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원했다. 내가 7살이 될 무렵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이다. 여자는 공무원이나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 최고로 좋다고.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했다. 그리고 막상 20살이 됐을 무렵, 나는 바로 대학교에 가지 않았다. S은행에 취업해서 공제와 금융상품을 팔았다. 아직도 눈 내리던 날 면접 보던 것이 눈에 생생하다. 19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 나는 취업을 위해서 면접을 보러 갔었다. 40대 중반의 한눈에 봐도 성공한 남자로 보이는 면접관이 내게 말했다.


“근데 너무 어린 거 아니야? 아직 고등학교 졸업도 안 했네?”


남자에 대한 반감이 심했던 나는 내 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프로페셔널하게 웃음을 연기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했다.


“저를 뽑지 않으시면, 평생 후회하실 겁니다. 제가 이 지점을 전국 1등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는 당돌한 내 태도에 빵 터져서 한참을 웃었고.


“그래, 합격. 잘해보자.”


라고 말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보통 합격 소식은 면접보고 5일 뒤에 알려준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너무 마음에 들었던 면접관은 나를 그 자리에서 바로 채용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운이 좋게도 고등학교 졸업식도 하기 전에 나는 이미 은행 직원이 돼 버렸다. 계약직이긴 했지만 조건이 좋았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내게 따듯하고 친절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 회사의 최연소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본인이 나의 아빠 엄마 또래라며 나를 잘 챙겨주셨다. 그리고 입사하자마자 나는 전체 사원 100명 중 세일즈 실적 5위안에 들었다. 게다가 1년 만에 포상휴가를 받아서 태국에 무료로 3박 5일을 다녀왔었다. 그게 내 인생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한국이 얼마나 작은 세상이었는지를.




‘아, 나는 외국에서 살게 되겠구나.’




그곳에서 만난 많은 태국인들이 내게 친절하게 잘해줬었는데, 같이 간 회사 사람들이 나보고 해외체질이라고 외국에서 살아야 된다고 할 정도로 나는 적응을 잘했다. 심지어 영어도 잘 못했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태국 친구 Noey가 친근하게 느껴진 것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두 장의 그림이 완성 돼 있었다. Henri가 독일인 아버지를 뒀다는 말에. 나는 그가 독일어를 다 이해할 줄 알고 한국어를 독일어로 번역한 글을 적었다.(이것은 나의 또 다른 실수였다.) 그러고는 혼자 기쁜 마음에 나는 기념사진을 찍고 손에 묻은 물감들을 지우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Mia!!!!!!!!!!!!!!!”




이곳에서 나를 부를 사람이 없는데? 나는 정말 화들짝 놀랐다. 시력이 나쁜 나이지만 나는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저 만치서 걸어오고 있는 사람은 바로, “Henri”였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을 그가 어떻게 알았지?’


사실 그는 내가 거기 있는 것을 안 것이 아니라 한 청년이 이 숲에 가보라고 추천해 줘서 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도 표지판을 따라서 들어오지 않고 인적이 드문 길을 선택해서 들어온 것이 운명 같아서 신기했다. 예정대로라면 그림을 다 그려서 명상을 시작해야 됐었지만, 뭔가 하늘의 계시를 받은 기분이라 그와 같이 산책하기로 마음을 먹고 자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무척이나 놀랍고, 반가운 표정으로 내 앞에 서 있는 그를 향해 내가 그린 그림을 보여줬다. 그 자리에서 바로 건네주고 싶어서 분홍색 노트 한 장을 뜯으려고 하는 순간, 그는 그러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 단호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나는 ‘그는 내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하고 슬픈 기분이 됐다. 하지만 그는 그림이 망가질 수도 있으니 나중에 달라고 했다. 나는 그 숲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그 특별한 순간 바로 그 그림을 전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우리가 이렇게 우연히 만났는데! 곧 그의 의견에 수긍하고 손에 묻은 물감도 잊은 채 산책을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그가 나를 위해서 <해바라기 밭>의 위치를 알아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며칠 전에 Noey로부터 추천받았던 장소인데 어딘지 몰라서 나는 Taize를 몇 번 와봤다는 Henri에게 혹시 아냐고 물어봤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도 그것이 어디 있는지 몰랐었다. 근데 그곳을 발견하다니 놀라웠다. 알고 보니 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골몰해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Henri는 DM으로 해바라기 밭의 영상과 메시지들을 보냈었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그에게 알려준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날 위해서 그 장소가 어딘지 직접 돌아다녀보며 발견한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깊이 감동했다. 그래서 그 해바라기 밭에 같이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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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생각보다 멀었다. 그 먼 거리를 그가 혼자 걸어가고 사진과 영상을 찍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 길을 가는 동안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얀색 소를 만났다. 울타리 안에 있어서 안전했지만 정말 굉장히 큰 소였다. 인도에서만 흰 소가 있을 줄 알았지 이곳에서 내가 소를 만나게 될 줄이야! 근데 그 소의 표정이 화가 난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겁이 나서 Henri에게 물었다.


“저 소 화난 거 아니야?”


Henri는 절대 아니라고 날 안심시켜 주었다. 그렇지만 그 흰색 소의 눈빛이 화가 나 보여서 나는 작은 목소리로 “우리 이제 그만 가자.”라고 말했다.


그렇게 가다 보니 Taize라고 적힌 빨간색 표지판이 나왔다. 소녀들이 모여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그녀들은 내게 단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Mia 하면 또 사진, 사진 하면 Mia 아니겠는가? 하하하. 진심을 다해 그녀들을 8등신처럼 보이게 여신 각도로 찍어줬다. 사진들 보더니 그녀들은 환호했고, 나는 만족했다. 사실 그다음에 Henri와 나의 사진도 찍어 줄 수 있는지 그녀들에게 부탁하고 싶었다. 근데 정말 그 순간 무엇인지 모르게 너무나 쑥스러웠다. 천하의 내가 부끄러움을 타다니?! 그 순간 갑자기 나는 6살의 “수줍은 소녀” Mia가 돼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서 부탁할 수 없어서 그냥 인사하고 걸어갔다. (아직도 나는 이 순간이 아쉽다. 다시 Taize에 간다면 꼭 그 표지판 앞에서 Henri와 멋진 사진을 찍고 싶다. 셀피 말고 남이 찍어주는 것으로.)


그렇게 여러 여정을 지나 도착한 해바라기 밭. 거의 40~50분가량을 걸은 것 같았다. 날 위해서 이곳까지 걸어온 Henri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첫 번째 해바라기 밭은 해바라기가 별로 없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해바라기 밭은 정말 해바라기가 많았다. 한국에서는 해바라기가 부와 성공의 상징이다. 그래서 다들 조화 해바라기를 가게나 집에 놔두고 , 해바라기 사진이나 그림을 걸어두곤 했다 근데 이 순간은 그런 생각은 나지 않았다. 그냥 너무 많은 해바라기가 있는 것을 처음 봐서 신기했다. 그래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프랑스의 석회수와 나의 영양 결핍, 그리고 생리통으로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록은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영상을 녹화하고 있었는데, 바람이 불어서 내 모자가 날아갈 뻔 한 순간. 그가 내 모자를 잡아서 내가 계속 쓰고 있게 도와줬다.





그 순간, 나는 해바라기 밭에서 “어른 Mia”를 잃어버렸다.








시간(손목시계)

시선(선글라스)

가면(어른 Mia)









Taize는 내가 가장 치중하던 나의 Persona들을 하나씩 가져갔고, 나는 마침내 인정해야만 했다.



‘그래 네가 이겼어. 난 아직 어른이 아니야. 다 자란 척 연기했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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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상념이 교차하는 그 순간. Henri가 수제 딸기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을 안다고 했다. 나는 환전을 해서 돈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위해서 정말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싶었다. 그래서 가자고 부탁했고 그는 기꺼이 들어주었다. 능숙한 그의 프랑스어 실력 덕분에 우리는 딸기 농장과 공장을 겸비한 그곳에서 신선한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었다. 근데 결제를 카드로 한 게 너무 웃겼다. 잔돈 받기 귀찮아서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아무튼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돌아오는데 브랜드가 똑같았기 때문에 맛은 Oyak에서 먹었던 것과 같았다. 하지만 정말 맛있었다. 나는 사실 생리통 때문에 찬 것을 먹으면 안 됐었지만, 그 순간 그 아이스크림은 꼭 먹고 싶었다. 근데 순간 나보다 키가 큰 Henri에게는 아이스크림의 양이 너무 적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스크림을 3개 살 걸 그랬나? 그래서 나는 내가 절반 정도 남은 아이스크림을 그에게 더 먹을래? 하고 권했다.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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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delicious?”

“No! its delicious!”

“"Good. The most important thing is whether you are delicious.”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나는 6살 Mia가 돼 버렸기 때문에. 그냥 그때 그 시절 소녀처럼 할 말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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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나를 위해서 오래된 교회에 데려가 주었다. 아마 그가 아니었다면 그곳에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교회는 소박하지만 성스러웠다. 순결한 사랑을 빌면 이루어 질 것 같아서 두 손 모아 진정한 사랑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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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슬슬 나의 생리통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는 일하기 위해 Oyak에 갔고, 내가 물병 없다고 하자. 내가 먹고 있는 일회용 물병도 물병이라며 사려 깊게 말해 주었다. 나는 원래 물을 많이 먹는 편이고, 밤에 깨서 약을 먹으려면 물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 물을 사러 가려고 했고. 그는 내가 긴 줄을 서는 것을 막기 위해서 미리 물병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다. 하지만 나는 사실 생리대로 사고 싶어서 그냥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근데 판매하는 사람이 남자여서 나는 물만 사서 돌아왔다. 물병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구매하지 않았다. 근데 아이스크림 코너에 Henri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는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그가 나에게 Oyak 파티 영상을 보냈다. 하지만 피 뭍은 옷들을 세탁해야 했기에 못 갔다. 그에게는 글을 써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사실 생리통이 다시 시작돼서 움직이기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생각보다 금방 돌아왔고, 물병을 두고 와서 다시 Oyak에 다녀왔다.


그는 씻으러 가면서도 내 방앞에 와서 인사를 건네곤 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는 계속 웃었다. 나는 샤워장에 빈 공간이 없어서 기다리면서 글을 좀 쓰다가 Henri와 채팅이 불이 붙었다. 해바라기 밭에 서 들려준 그의 가족이야기들이 전부 다 이해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런 이야기 자체를 들려준 것이 나는 고마웠기 때문에 늦기 전에 고맙고 말하고 싶어서 장문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새벽 2시까지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어차피 빨래하러 못 갈 줄 알았으면 아까 같이 Oyak 파티 갈걸 그랬나? 아니다, 아까는 몸이 아팠으니까 쉬어주길 잘한 거야.’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가 브라질 사람이 아닌 벨기에사람인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이상함을 느끼고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다시 물어봤기 때문이다. 그는 바보 같은 오해를 한 나를 너그럽게 이해해 주었다.


그리고 어제 꿈에서 친한 친구 가 놀이구가 무섭다고 엉엉 우는 꿈을 꿨다. 근데 그의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처럼 그를 돌봐주신 분이기에 내 친구가 얼마나 상심했을지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새벽에 보이스톡을 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보이스톡을 거는 동안 Henri와 나는 또 우연히 마주쳤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Henri는 자러 갔다. 나는 40분 동안 샤워를 하고, 1시간 20분 동안 밀린 빨래를 했다. 한국 샤워기는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데 프랑스 샤워기는 고정 돼 있어서 씻기가 너무 불편했다. 빨래하기는 더 불편했다. 빨래하느라 너무 힘들었지만 다 하고 나니 뿌듯했다. 하루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이었던 것 같다. 다채로운 하루가 나는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진심으로 행복했다. 소설을 쓰고 싶어서 아이디어를 구상 중이었지만, 글 쓸 틈이 없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모두가 잠든 새벽 4시 빨래를 널었다. 그리고 초승달을 보며 빌었다. ‘ 부디 이 행복이 계속되길.’ Taize의 새벽 공기는 차갑지만, 깨끗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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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밭 사건 이후로 어린아이가 돼 버린 나는, 이유 없이 설레며 잠이 들었다.




‘내일은 또 어떤 모험이 기다릴까?’




<2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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