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le #1 “떠날지 말지 고민하는 길.”

by 만년산마녀




Miracle #1


2023. 07. 31. 일요일

Taize 8일 차 : “떠날지 말지 고민하는 길.”




악몽.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중후한 남자 두 명이 잡혀왔다.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두 남자는 본인들이 감옥에 가지 않을 것을 확신하는 듯했다. 이 꿈은, 예전에도 꾼 적 있는 꿈이었다. 분위기 자체가 너무 무서웠다. 그들의 비리가 공표되면 정부는 100억의 돈을 물어야 했다. 경찰들을 잡아와서 벌금을 물게 하려 했으나 그들은 느긋했다. 그리고 그들이 한 명은 폭발로 수 천만 명을 죽게 했고, 한 명은 또 다른 잔인한 죄를 저질렀다. 그리고 부검과 연루된 그들의 죄를 밝혀낸 연구원이 있었는데 솥뚜껑 같은 뚜껑이 두 명에게 전달되고 그 두 명은 비릿한 미소와 함께 그 안에 있는 총을 챙겨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네 명의연구원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바닷물 위로 시체가 떠올랐다. 하늘 위로 공허해하는 정의로운 경찰들(나 포함 ) 앞에 피로 다잉 메시지가 뜨는 데. 그녀들의 나이가 핏물로 남는다. 22,26,26,2.... something.. 그 순간 나는 잠이 깼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나를 프랑스에 오게 만든 원인제공자, J에게 간단하게 말했다.그녀의 우울증을 치료하기위해 이곳에 제안 받은 회사도 거부하고 왔지만, 그녀는 나를 버리고 다른 외국인 친구와 북유럽을 여행중이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고, 생리가 시작 됐다. 최악의 스타트였다.




다들 분주하게 짐을 쌌다. 알고 보니 아침 10시까지 짐을 빼야 하는 것이었다. 생리의 시작을 몸이 무거워진 나는 악몽과 함께 오전 9시 40분에 깼고 생리대가 없어서 휴지로 덧대며 왜 14살 때랑 달라진 게 없는지 정말 속상해하면서, 난 이 길을 계속 가야만 하는 아이인지 고민하면서 괴로워했다. 다시 초경을 시작했던 가난한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것을 저주했던 나날들. 남자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고 눈물흘리던 나날들.




룸메이트 할머니 Anne은 첫 예배 이후 떠났다. 그나마 어제 이야기를 좀 나누고 What’s app을 교환한 게 다행이었다.




Anne에게 사진을 보내야 하는데 나는 알 수 없었다. 오늘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너무나 괴로웠다. 혼동되고 혼란스러웠다. Paris city 열차에서 도둑맞아서 현금이 없었다. 신용카드는 있었지만 Oyak에서는 카드 결제가 안 됐다. 생리대를 살 수 있는 city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했다. 언제까지 이 생활을 버틸 것 인가. 시티로 떠나야 하나?




나는 이미 이틀 전에 2주 차 연장 면접을 통과해서 머물러도 좋다는 허락을 미카엘로부터 받았다. 흰머리의 심사관이었던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명쾌하게 웃으며 “O.K. you can stay!!”라고 외쳤다. 10대가 아닌 나는 심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20살 때 공지영 님의 책 소개 기사를 보고 처음 이곳을 알았다. 나는 수녀가 되고 싶었다.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떠나고만 싶었다. 하지만 가족들을 위한다는 핑계로 학교 대신 은행에 취업하며 큰돈을 집에다 보내고 있었다. “내”가 없는 인생이었다. 그러다 작년에 스토커로 힘들어하던 내게 채채가 <쇼코의 미소>라는 책을 선물해 주었다. 그 소설 속에 단편의 수도원 이야기가 나온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내가 20살 때 가고 싶어 했던 곳이라는 것을. 그 소설에서는 Taize라는 단어는 어디에도 없었으나 나의 집요한 구글링으로 나는 그곳이 Taize인 것을 확신했다. 스무 살 무렵부터 꿈꿨었고 그 소원을 드디어 이룬 내가 일주일 더 머물고 싶다고 말했을 때. 미카엘은 정 말 유쾌하게 웃었다. 그리고 나에게 2주 차에 새로 오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직업을 받으라고 안내해 주었다. 하지만 그 직업을 받으려면 어제 “DORA DORA”에 11시 30분까지 갔었어야 했다. 날짜를 착각한 나는 그 사전 교육 모임에 가지 못했다. 스트레스가 차올랐다. 괜찮다. 어차피 생리가 시작한 이상 나는 곧 사경을 헤매게 될 것이고 얼른 신용카드를 쓸 수 있는 city로 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Paris행 기차표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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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고 짐을 싸고 나오니 오전 11시. 걷다가 교회 가려다가 태국에서 온 봉사자 소녀를 만났다. 어제 생리대 2개를 빌려준 소녀 “Noey”였다. (그 생리대는 간밤에 다 써서 나는 휴지로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차마 그녀에게 더 빌려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내게 먼저 말을 걸어주며 같이 밥 먹자고 해준 우호적인 아이였다. 사실 이곳에서 명상과 깨달음을 얻고 싶었던 나는 많은 대화를 나고 싶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밝게 다가온 그녀의 미소에 나 역시도 반사적으로 친절하게 됐었다. 그렇게 그녀가 이곳에 온 다른 봉사자 한국 남자아이와 몰래 사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녀가 한국인인 나에게 친절할 수밖에 없었던 하나의 이유였으리라. 그랬던 그녀는 어제 생리대와 함께 초콜릿과자를 주었다. 역시 같은 여자였다. 생리가 시작하면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복통과 식욕을 동반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여자들이 공감할 것이다. 특히나 나는 예전에 진통제 없이 시골에 갔다가 주변에 약국이 없어서 전철에서 쓰러지기 직전까지 갔다. 결국 전철 안에 있던 누군가가 911을 불렀고 나는 응급실로 실려갔다. 비가 오던 날이라서 더 몸이 아팠었지. 다행히 이번 여행에 25알의 진통제가 있었다. 이것이 없었다면 나는 벌써 실려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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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할지 말지 계속 고민만 하는데 한국 소녀 “은경”을 만났다. 그녀는 나보고 사랑이 넘치는 아이라며 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녀가 산 책에 긴 편지를 써서 내게 주었다.



아직 한 번도 사랑에 빠져 본 적도 없고. 정말 친 남동생 이외에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사랑이 뭘까?라고 묻는 내 질문에 그녀는.



“Sia. 너 자체가 이미 사랑이야. 나는 너처럼 사랑이 넘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참 잘 컸다.”



은경의 말은 굉장히 위로가 됐고, 동시에 잘 이해가 안 됐다.



내가 과거에 경험한 수많은 끔찍한 사건들은 남자라는 종을 경멸하게 만들었었고. 겉으로는 예의 있게 대하지만 항상 속으로는 경계하고 멀리했던 나였다. 14살 때부터 경험한 너무 많은 크고 작은 성희롱들과 성추행들은 내가 정말 그들에게서 질려버리게 만들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이런 경험을 한 한국 여자들이 전체에 70%가 넘는다는 것이다. 다들 쉬쉬하거나 감추기 바쁘고 사실상 신고해도 도리어 여자가 낙인찍히는 세상. 피해자는 숨어 살고, 가해자에게는 제대로 된 처벌을 줄 수 없는 이 답답한 제도를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좋아했고. 진심을 교류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면 행복했다. 이것이 내 인생의 딜레마였다. 13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이곳에 온 것도. 사실은 친구 “J”의 우울증을 낫게 해 주기 위해서 같이 가자는 산티아고를 가려고 한 것이 아닌가. 비록 나의 양쪽 무릎에 연골이 없다고 할지라도, 비행기 사기를 당해서 1100유로가 공중 분해 됐다고 할지라도. 나는 가방을 싸서 이 땅에 왔다. 그러나 그녀는 발이 다쳐서 산티아고에 안 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홀로 네덜란드로 떠나 버렸다. 그렇다면 나도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해보자 해서 Taize에 왔던 것이다. 그녀에게 같이 갈 것을 제안했지만 교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던 그녀는 지루할 것 같다며 홀로 떠났다.




비행기 사고, 현금 전재산 소매치기, 친구의 떠남, 산티아고 못 가게 됨. 그리고 이 여행을 오기 위해 제안받았던 회사에 입사도 놓친 상황이었다. 일주일 내내 악몽을 꾼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거기에 생리가 시작해서 우울감과 신체적 고통까지 더했으니 정말 수녀가 되고 싶었다. 속세와 연을 끊으면 행복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 오래된 염원을 마침내 이루고 말리라. 나는 이 수도원에서 수녀가 되는 방법을 찾았다. 인간들에 대한 친절들은 도리어 내 영혼을 다치게 할 뿐이었다. Taize의 풍경은 평화로운데 내 마음은 전쟁통이었다.



독일에서 유학 중인 한국 여자 “은경”은 오늘이 떠나는 날이기 때문에 나와도 더 이상의 깊은 대화를 피하는 느낌이었다. 머무를지 떠날지 고민하는 내게 그녀는 “그럼 당연히 머물겠네.”라고 말했다. 그날 처음으로 그녀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한국에서 온 다른 여자에 대해서 말해주었는데 내 이야기를 그녀에게 했다고 했다. 그녀는 회사에서 급하게 호출이 와서 5일 이곳에 머물다가 갑작스럽게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녀는 나와 대화를 한 번도 안 나눠본 한국 여자였는데. “그럼 Sia 씨는 더 머물겠네요. Taize에.”라고 말하고 갔다고 했다. 뭔가 무례한 느낌이라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왜 다들 내가 이곳에 당연히 머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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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city를 향하는 버스는 2시 5분 차였다. 다음차는 4시 5분이었고. 나는 그전까지 한국 여자 “은경”과 Noey에게 작별 엽서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선물할 Taize 목걸이를 사 왔고 식사 후 홀연히 사라진 “은경”에게 엽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갑자기 기적이 일어났다.




갑자기 펜이 굴러 떨어진 것이다. 나도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파란 티셔츠와 파란 모자를 쓴 푸른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 그 펜을 빠르게 주워줬다.




언제 내 앞에 앉아 있었지? 굉장히 가까운 거리였는데 나는 그가 내 앞에 앉아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었다. 그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펜을 주워서 건네주며 펜이 망가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시력이 나빠서 전혀 망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지구본 크리스털이 깨져있었다. (하지만 이 펜은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이 펜은 내가 정말 아끼는 펜이었다. 가격을 떠나서 돌아가는 지구본이 달려있는 것과 오로라를 닮은 디자인, 그리고 무엇보다 물이 묻어도 지워지지 않은 잉크의 펜이라서 좋았다. 그래서 큰맘 먹고 가져왔던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와 나는 통성명을 이어 나갔고 처음엔 내가 벨기에가 영어로 베르지움 인 것을 몰랐었기 때문에 그가 브라질 사람인 것으로 오해했었다. 그의 이름은 Henri였다. 하지만 그는 왕자는 아니라는 농담을 건네며 나를 웃게 했다. 영국 왕자 헨리는 유명하지만, 사실 그보다 한국에 Henry라는 이름을 쓰는 중국계 가수가 있었고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기에 나는 더 쉽게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남자들에 대한 혐오증과 경계심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남자들 이름을 잘 못 외우는 병에 걸려 있었다. 일종의 PTSD인데 약간 심각했다. 어느 정도냐면 1년 동안 같은 반이었던 남자애 이름을 기억을 못 한다거나, 같이 엄청 친해진 남자의 이름도 기억을 못 하는 등 내 의도와는 다르게 저절로 잊어버리곤 했었다. 이것이 단순한 기억력의 문제가 아닌 것을 나는 나중에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알았다.




그리고 곧이어 그 옆에 있던 한 여인이 우리에게 사탕을 권하며 나누어 주었는데. 그녀는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어서 한국말로 내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서 나를 놀라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Henri와 가족인지 물었는데 그 소년의 말로는 아니라고 처음 본 사이라고 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그에게 나는 이곳에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게 됐고. 파리에서 소매치기당한 것까지 털어놓고 있었다. 놀랄 일이었다. 고작 몇 분 뒤 나는 떠날 예정인데 (2시 버스를 탈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이미 나는 자연스럽게 이 소년과의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크게 웃었고, 설명하기 힘든 영혼의 평온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는 함께 방 배정을 받으러 일어났다.




처음에는 줄이 어딘지를 잘 모르겠어서 헤맸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나가고 있는 Noey의 남자친구, 한국 봉사자 "동민"에게 말을 걸었다.




“한국 분 이시죠?”


“네? 네.”


“Noey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하하. 비밀은 지켜 드릴게요. 방 배정받는 거 어디로 줄 서면 되나요?”




그가 안내해 준 곳으로 우린 줄을 섰지만, 그 줄이 아니었다. 하하. 하는 나중에 동민과 친해져서 이것을 두고두고 놀렸다.



그렇게 2시간의 우여곡절 끝에 방 배정을 받았다. 우리 모두 직업을 받아야 했는데 그는 Oyak에서 일하고 싶어 했다. 사실 나는 이미 직업을 받아서 첫 째날 새로 오는 사람들을 안내해 주는 안내요원 일을 해야 했었는데 어제 모임에 가지 않아서 어떻게 일이 진행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 편으론 Henri와 함께 일을 하고 싶어졌다. 그와 일하면 힘들어도 시간이 금방 갈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그는 1분도 쉬지 않고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었고, 그 모든 이야기들은 모조리 다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덕분에 나는 Taize에 와서 제일 많이 진심으로 깔깔대며 웃었다. 그는 내 영혼을 치유해 주려 온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남자에 대한 경계심이 심했었기 때문에 속으로는 “Sia, 남자는 조심해야 돼”라고 마음을 다잡곤 했다. 그러나 나의 다짐을 무너지게 만드는 사건이 터졌다. 그가 늘 들고 다니던 꽤 고급스러운 물병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 이후로도 그 물병은 일곱 번 정도 잃어버렸다가 다시 돌아왔는데 그 순간마다 나는 치유받았다. 왜냐하면 그 모습은 내 모습이랑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늘 잘 넘어지고, 늘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나는 아버지에게 심하게 혼났었고. 그러지 않기 위해서 늘 조심했지만 사실 잘 되지 않아서 스스로를 미워하곤 했었었다. 성인이 되고 심리학 공부와 스스로에 대한 마음 치유를 많이 노력하면서 극복했지만 아직도 내 안에는 그 시절 받은 상처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지구 반 바퀴를 날아서 온 이 낯선 땅에서 처음 만난 한 남자가 내게 몸소 실천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네가 받은 상처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며, 너는 실수해도 된다. 이것은 이렇게 유쾌하고 재미난 해프닝일 뿐이다라고. 그때 받은 상처들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물병을 찾아서 그에게 돌려주러 갈 때마다 그 메시지가 내 영혼을 울렸고 나는 상처받은 어린 시절을 보듬어 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었기 때문에 혹시나 해서 인스타를 교환해 뒀었다. 근데 정말 우리는 잠시 서로 떨어지게 됐었는데 그가 먼저 DM이 왔다.


'무슨 직업을 가졌나요?'


나는 직업을 지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Oyak에 빈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우리는 방배정을 받고 짐정리를 해야 했는데, 나는 서둘러서 짐정리를 했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룸메이트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생리대를 좀 얻었다. 내일은 제발 환전을 할 수 있기를. 진통제를 삼키고 나는 다시 돌아갔다. 통증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도 그의 물병을 빨리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후 우리가 무언가를 가지러 각자의 방으로 왔었을 때 다른 누군가의 Taize지도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는 적힌 방 번호를 보고 주인을 찾아주고 싶어 했고, 여자 숙소였기 때문에 내가 기꺼이 함께했다. 방을 두드려도 답이 없기에 우리는 그 방안에 그 종이를 놔두었다. 나는 나중에 그방 사람들에게 그 친절은 Henri가 한 거라고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그 기회를 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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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같이 예배를 드리다가 4시 5분 city로 가는 차를 타고 한국 여인 “은경”이 독일로 돌아간다는 것이 생각났다. 나는 그녀에게 편지와 목걸이를 전해주고 싶었기에 잠시 인사하러 간다고 했다. 그러자 Henri는 같이 가자고 했고 우리는 뛰기 시작했다. 나의 하얀색 에코백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들어있어서 꽤 무거웠는데 그가 자연스럽게 나에게 맡기고 뛰라고 했다. 마치 가족에게 맡기듯이 내 가방을 맡기고는 나는 아무 의심 없이 뛰었다. 처음 만난 남자에게 내 전재산이 들어 있는 가방을 맡기다니 뭐에 홀린 것 같았다.




그렇게 뛰어간 버스엔 그녀가 이미 타 있었다. 얼른 따라 올라간 버스에서 목걸이와 편지를 주었고 끌어안고 제대로 된 끝 인사를 할 수 있었다.




“남기로 결정했구나?”


“네, Taize가 제게 응답을 해왔거든요. 잘 가요. 인연이 닿으면 또 만나요. 고마웠어요.”




비록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진 모르겠지만 나는 나답게 감사한 인연에 최선을 다 했다. 그렇게 그녀를 떠나보내고 Henri와 나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미난 일이었다. 불과 4시간 전만 해도 나는 저 버스를 타려고 했었는데.






현금도 없고,


생리대도 없고,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오직 내 오래된 질문에 대한 신의 응답만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사랑이 무엇인가요?”












그 이후 그는 짐을 정리하고 식사를 같이 했다. 나는 그에게 신기한 요리들에 대해서 그한테 배웠다. 사실 내 영어 실력은 5살 어린아이 수준이라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게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새로웠기에.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노을을 보러 다녀왔다. 손톱달이 떠있었다. 노을과 함께 떠있는 그 모습은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끝 (노을) 은 또 다른 시작(달).






그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고 내게 제안했지만 내가 현금이 없다고 말하자 본인이 사주겠다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 얻어먹지 못하는 나였지만 왠지 이번에는 그래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흔쾌히 승낙하고 함께 줄을 서서 아이스크림을 받았다. 줄은 말도 안 되게 길었지만 그와 이야기하는 시간들이 좋았고 그래서 재밌었다. 1시간이나 기다려서 작은 아이스크림을 받는 것은 동양, 특히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도리어 이 만화 같은 상황이 너무나도 신나고 즐거웠다. 그러다 그가 외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와 종종 체스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와도 나중에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Henri가 말했다.




“why not now?”






그렇게 그의 아이폰으로 우리의 대결은 시작했고, 결과는 나의 참패였다. 예전에 몇 번 둔적이 있었지만 열심히 익혀두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한국형 체스 “장기”만 뒀으니.. 하지만 그는 부족한 나를 재촉하지 않고, 계속 양보하며 6~7번을 한 수씩 물러줬다. 예전의 나 같았으면, 특히 남자가 나를 봐주려고 하면 화가 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나도 화가 나지 않았다. 그냥 나는 그저 체스를 더 잘하고 싶었다. 나중에 열심히 연습해서 꼭 제대로 된 그의 체스 상대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 있었고 그가 사준 딸기 아이스크림이 조금 남아서 녹아있었다. 나는 그것을 후루룩 마셨다. 그 순간 내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딸기 아이스크림이었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고, 신기하게 숙소가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형국이었다. 여자의 숙소는 왼쪽라인, 남자들의 숙소는 오른쪽 라인이었다. 잘 자라고 인사하며 내가 막 가려는데 그가 살짝 안아주며 이마에 입 맞추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당황할 새도 없이 내 방으로 걸어왔는데 뭔가 어안이 벙벙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그냥 외국인 특유의 인사인가? 브라질 사람들은 아무래도 아시아인보다는 개방적이니까. (이때까지도 나는 브라질 사람으로 알았다. 아버지가 독일사람이고 어머니가 브라질 사람이라고 알아들었었다. 오해한 이유는 한국에서 말하는 벨기에를 부르는 호칭이 다르기 때문이다.) 키스한 것이 아니라 그냥 살짝 닿은 건가? 나는 아이처럼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면 나의 착각인가? 그냥 외국인들의 의례적인 인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샤워하러 가는 길에 그를 다시 마주쳤고 우리는 웃으며 인사했으며 씻고 나와서 나는 다시 나는 꿀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Taize에 와서 처음으로 악몽을 안 꾼 밤이었다.






<1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