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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배운 도둑질; 독서(讀書)

by 들풀생각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내가 딱 그 짝이다.


독서 말이다!


독서는 소설과 같은 문학이나 베스트셀러를 읽어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뒤늦게 배웠던 것 같다. 처음에 남들처럼 이런 부류들을 좀 읽어보려 했다. 그러나, 영 재미가 안 나서 책을 읽는 소질이 없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늘, 주변에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의 현란한 말솜씨를 부러워했다. 괜스레 주눅도 들었다.


뒤늦게 알고 보니 다들 횡설수설 했더만. 특히, 문학만 많이 읽은 사람들…


본보기를 들어본다.


역사와 철학을 모른 체 소설만 읽은 사람들은 박경리 선생의 ‘토지’동학사상민족주의 그리고 근•현대사를 잘 모르고 읽는다. 또,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자본주의(Capitalism)미군정 역사를 모르고 본다. 그러고는 그 책들을 다 읽었다고 자랑하며 거드름을 피운다. 수박 겉핥기로 읽고서 그 소설을 쓴 작가님들께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속내는 모르겠지만, 작가님들은 자기 책들을 그냥 재미로 읽어 주면 좋다고 마음을 편하게 말씀해 주기도 하더라.)


마치, 냉전시대의 역사와 철학을 모른 체 George Orwell의 ‘Animal Farm’을 읽는 것처럼…


참고로, 나는 2022년 3월 1일부터 오늘까지 책은 철학과 같은 고전 원서와 법률학 교과서 외에는 따로 읽지 않는다.


어리석은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그래서 사람 성격, 잘 안 바뀐다 했나 보다.


그러던 내가 2007년 초 광화문 교보문고 원서코너로 다가간다. 그리고, 우연히 책 한 권을 집어 든다.

경제 교양도서인 그 책의 제목은 “The Great Depression Ahead”이다. 저자는 Harry S. Dent다. 무려 375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양장본에 가격은 ₩43,670이다.

친구를 기다리다가 심심해서 읽은 그 책을 1시간에 20쪽가량을 읽었다. 너무 놀라서 바로 사버렸다. 그날부터 일요일까지 도서관에서 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다 읽었다. 사회과학을 영어원서로 읽은 최초의 책이 되어, 서재에 신주로 모셨다.


너무 기뻐 밤잠을 설쳤던 뭉클한 마음, 아직도 기억에 뚜렷하다.


이날부터 배운 도둑질이 지금껏 이어져오고 있다.


독서라는 것은 알다가도 모를 일인 것 같다. 무슨 말이냐 하면, 넓고 깊게 읽고 생각할수록 더욱더 재미가 난다. 나이 들어 눈도 몸도 다 익어간다. 그런데 생각은 더욱더 깊고 뚜렷해진다. 50대 중반에 들어선 나를 돌이켜 보니 지난 3년간 지적으로 크게 성장한 듯하다. 앞으로 더 그러리라 믿으니 기분이 너무 좋다.


어쨌든, 나도 남들처럼 독서 후 크게 바뀐 모습을 짧게 적어보려 한다.




한때 인문 고전독서를 하면 ‘리더가 된다느니, 부자가 된다느니, 머리가 좋아진다느니’ 하는 책들이 많이 팔렸다.


정말로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무슨 대화를 위한 얄팍한 지식 쌓기와 한 시간 또는 하루에 한 권씩 읽는 법 따위의 책이 여전히 많이 팔린다고 한다.

솔직히, 책 만권 이상 읽었다며 떠벌이는 사람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루에 1권을 읽는다면, 1년에 365권, 10년에 3,650권, 그리고 30년에 10,950권이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한 권의 책을 한번 읽는데 3개월~6개월 걸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낮은 지능 탓에 3번 이상 읽어야 줄거리가 정리된다.


내 잣대를 들이 대면 모두 헛소리로 들린다.


이 정도 가지고는 해당 작가와 작품의 명예감정 및 사회적 신용과 명성에 대한 직•간접적인 침해를 가하는 위법 또는 불법행위에 해당되지 않겠지?


내 생각엔 인문 고전독서를 하면 그런 허황된 것보다는 자존감, 인내심, 겸손한 마음, 논리적 사고 능력과 감성적 공감과 같은 추상적인 가치가 많이 길러질 듯한데. 그리고, 이것들을 자기 삶과 엮을 때 상승효과(Synergy Effect)가 생길 것 같은데…


어쨌든, 이 가운데서 내가 독서를 통하여 얻은 가장 큰 것은 바로 겸손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한다.


나는 어떤 일을 하면서 지적으로 교만한 마음이 들 때는 내용면에서 지금 읽는 책 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 것을 꺼내서 본다. 그렇게 하면 지적허영이 금방 사라져 버린다. 그 까닭은, 정밀하게 읽으면 읽을수록 그간 이해하였다고 자부했던 것이 읽을 때마다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 그릇됨을 깨달을 때, 여기저기서 함부로 남발했던 앎의 겉치레 때문에 창피해 고개를 못 든다. 그제야 내가 아는 사실이 참된 이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부터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이제야 비로소 존중과 배려로 타인을 대한다.


벼가 익는다고 해서 억지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익게 되면 스스로 그러하게 된다.




또 다른 이야기로 독서로 얻은 겸손의 효과를 증명한다.


우리의 대표 캐릭터인 뽀로로(Pororo)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뽀로로는 귀가 없거나 덮여있다.

그래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을지도 모른다.


놀라지 말라. 내가 그렇다는 것이다!


여태껏 그래 왔고 지금도 그렇게 산다. 그래서 뉘우치고 앞으로 그러지 않으려 이 글을 쓴다.


어떤 사람들이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는 까닭은, ‘그들은 배움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때의 배움이란, ‘세상에는 절대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우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타인의 뜻을 경청하는 행위 자체가 바로 타자에 대한 배려이며 존중이다. 이것이 상호존중으로 이어져 공동선 또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추구할 사회형성에 주춧돌이 된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자기 존중 또는 자존감이라는 사회적 기본가치가 바탕이 되어야 실현이 가능하다.


스스로를 높이는 방법 중 최고는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하는 것이다.


이는 사물의 본성을 직접 또는 간접으로 체험하여 깨닫는 것인데 독서는 직접 경험의 한계를 잘 보완해 주는 도구이자 수단이므로 잘 써먹어야 한다.


간추리면,

넓고 깊은 독서를 통하여 인내심을 기르고 자존감을 키우며 타인을 존중하는 것을 체득함으로써 사회적 배려정신을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사회적 정의 또는 개인적 선을 추구하는 길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고전을 끊임없이 읽어야겠다!


이것저것 어수선하게 많이 읽지 말고 한 권이라도 제대로 여러 번 읽어야겠다. 그것이 겸손을 배우는 또 다른 한 가지가 되지 않을까?


‘교만하면 비굴해지지만, 겸손하면 당당해진다!’


뱀의 발(蛇足)

뜻으로 세운 삶의 길을 똑바로 가려거든 늘 책을 펼쳐라. 거기에 바람과 달램 그리고 북돋움의 속삭임이 있다.

사는 동안, 배움의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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