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집 가까이에 작은 공원이 하나 있다. 도시를 정비하다가 선사시대 자취인 조그마한 고인돌 무덤이 나와 그곳을 공원으로 만든 듯하다. 공원의 바깥 둘레가 얼추 1.71km이고 높이는 글쎄 잘 모르겠다. 작은 산인 이곳의 둘레는 어림잡아 1.4km이다.
나는 날마다 이 공원을 돌며 그날에 있었던 일을 생각한다. 하루 동안 남을 시새움하거나 깔본 일이 없었는지를 되새긴다. 만약, 있다면 나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바로 뉘우친다.
주말엔 세 바퀴를 먼저 돌고 나서 마지막으로 산 둘레를 한 바퀴 돌며 운동을 마무리한다. 여기를 돌면서 오늘은 무슨 글을 남길까도 생각한다.
그동안 너무 책 읽기에 관한 글만 써서 오늘은 남들처럼 그곳에서 가끔 만나는 다람쥐와 딱따구리, 날마다 보는 나무와 풀 그리고 꽃에게 말을 거는 것을 써보려 한다. 잘되면 글감이 더욱 많아져서 글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푹푹 찌는 날씨라 조금만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일요일 아침 7시 반에 일어나 8시에 집을 나섰다.
8시밖에 안 되었는데도 너무 덥다. 아침부터 참매미가 크게 운다. 눈치 없이 내 손에 닿을 정도 높이에 매달려 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며 살금살금 다가가서 잡는다. 꽥!!! 너무 크게 울어서 운동하던 사람들이 쳐다본다. 눈치가 보여 바로 놓아준다. 약삭빠른 놈 그리고 눈치 없는 나. 너무 비교되네.
공원을 한 바퀴밖에 돌지 않았는데 땀이 주르륵 내린다. 불과 2개월 전만 해도 날마다 10km 이상을 걷거나 달렸다. 그러나, 이제는 걷기만 한다. 60대 이후 내 몸을 생각해서다. 나는 늘 10년 후의 내 모습을 그리며 살아왔는데 꽤 효과가 컸다. 다행히 먹는 양을 줄였더니 생각한 만큼은 아니지만 살이 좀 빠졌다.
너무 더워 아무 생각도 안 나던 찰나, 여러 수필가들을 흉내 내며 자연에게 말 걸기로 했던 것이 떠오른다.
먼저, 공원을 세 바퀴를 돌고 나서 산속에 들어간다.
들어가자마자 자주 보던 소나무가 보인다. 어색하지만 “안녕! 잘 지냈어?”라고 해본다. 그런데, 자꾸 드라마 악귀에서 이상야릇한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하던 김태리가 떠오른다. 헛웃음을 짓는다.
‘이게 아닌데!’ 하며 계속 둘레를 돈다. 이번에는 청설모와 다람쥐 그리고 뱀도 보인다. 저들의 모습을 잘 묘사해야 하는데 글 솜씨가 모자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어물쩍 넘어간다.
그리고 도중에 만난 불도그를 닮은 아주 작은 개와 마주한다. 아주 쪼맨한 (개) 눈을 부릅뜨며 어르렁거린다. 개는 훌륭하다에 가끔 나오던데 이름을 모르겠다. 좁은 산길에서 나와 전면 대치중이다. 주인이 억지로 줄을 당겨 이끌고 간다. 참으로 못생겨 하마터면 ‘뭐 이딴 (개) 다 있노!‘하며 욕할 뻔했다. 하기야 사람이나 길 오른쪽으로 다니도록 되어있지 니한테는 적용되지 않는 법이지.
중간중간에 이름 모를 꽃과 풀 그리고 나무들이 즐비하게 있다. 그러나 이들 또한 이름을 잘 몰라 비스듬히 스쳐 지난다. 뭔가 꼭 쓰고 싶지만, 그냥 ‘들풀들이네!’ 하고 쓰윽 비껴간다.
아침부터 배드민턴을 하는 중년의 동호회 사람들이 있다. 모두 힘이 철철 넘쳐 보인다. 서로들 이겨먹으려고 온갖 힘을 다 쏟아붓는다. 무리 지어하는 경쟁은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라 억지로 꾸며본다. 아무튼, 이들은 오늘 써야 할 스스로 그러한 자연들이 아니라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어느새 둘레길 마지막에 다다른다. 처음에 마음먹었던 대로 많은 것을 써보고 싶었으나 어휘력의 절대 부족으로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독서량의 부족을 많이 느끼며 반성한다.
그냥 내려오기가 멋쩍어 모두를 뭉뚱그려 인사만 하고 산을 내려가기로 한다.
“야들아! 거시기 다음 주에 또 오께.”
역시 나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민법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와 같은 글을 쓸 때가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생활 수필을 쓸 자격도 형편도 못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