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서연 Jan 11. 2022

어떻게든




  어떡해서든 마감은 꼭 지키자는 마음으로 일을 끝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상상력은 체력에서 나오는 것 같다. 영양제와 피로회복제를 듬뿍 챙겨 먹어도 여간해선 신박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좀 느린 편이라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부담을 견디는데 물론 그 사이에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니다. 여러 시도를 한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본다.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 어느 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다. 무참할 정도의 중간 결과물이 한 번, 두 번, 세 번 나오다가 마침내 코너에 몰린다. 못할 것 같다. 못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수두룩하다. 핑계가 마구 떠오른다. 그러다가 에잇, 나만큼만 하자. 더 잘하려고 하지 말자, 하고 생각한다. 


  사실은 자기 자신만큼만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보통은 평소의 나보다 더 못한다. 허무주의, 우울증 같은 본디 장착하고 있는 지병이 고개를 든다. 그래도 하긴 한다. 나는 꼭 해 낼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뭐 어쩌라고 정신으로 밀고 나간다. 엉망진창이구나 하면서도 슬며시 재밌어진다. 별거 아닌 걸 하며 매번 이러는데 질리지도 않는다. 


  그러는 와중에 옷을 정리했다. 느리게 진행되는 일의 속도에 반비례해서 에라잇, 버려! 하고 과감한 결정을 잘도 내렸다. 평소에는 이거 사놓고 별로 안 입었는데……. 이게 얼마 짜린데(사실 기억도 안 난다) 하며 결정을 못 하던 것도 시원하게 정리했다. 실물을 보지 못하고 인터넷으로 사서 입기만 하면 얼굴을 납빛으로 만드는 옷도 내놓았다. 허리는 크고 종아리는 조이는 옷도 집에서 입긴 뭘, 하며 던져버렸다. 그런데도 옷장 속은 그대로다. 여전히 꽉 차있고 나갈 때마다 입을 것은 마땅치 않다.      


  아무려나 당분간은 자유다. 신나게 놀아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이보영 작가의 소설 낭독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