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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연 May 10. 2022

3일 동안 봄



  막연히 남서쪽으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다가 목포와 강진에 다녀왔다. 목포에 숙소를 잡고 첫날은 차로 갈 수 있는 신안의 섬들을 몇 군데 다녀왔다. 티브이에서 봤던 담 위의 풍성한 동백나무와 연결된 큰 얼굴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보라 섬에서는 모자가 날아가지 않도록 부여잡고 바다 위에 놓인 데크를 걸었다. 그 중간에 있는 섬에서 아직 라벤더가 피지 않은 라벤더 정원까지 씩씩하게 걸어갔다가 돌아왔다. 당뇨 때문에 매일 걷다 보니 걷는 것은 조금 자신이 생겼다.      


  다음날 강진에서 월출산을 처음 보았다. 그렇게 엄청난 바위산이 그곳에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다원을 찾았고, 오래된 정원에 갔고, 김영랑 생가와 다산초당에 갔다. 언제나 관광이 아닌 참한 여행을 하자고 마음먹지만, 정작 새로운 곳에 가면 다시 못 올 곳처럼 욕심을 낸다. 

  “그만! 나머지 일정은 다 잊고 쉬자.”

  가파른 다산초당에서 내려온 내가 말했다. 남편도 순순히 동의했다. 

  꽃 이름의 카페 2층에 놓인 빈백 소파에 기대 한참을 쉬었다. 멀리 갯벌이 펼쳐져 있었다. 눈을 감고 깨끗한 바람이 살그머니 스쳐가는 걸 느꼈다. 부담이 돼서 다 마시지 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든 유리컵이 구슬땀을 흘렸다. 새소리와 함께 아래층에서 담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끔 들려왔다. 가방에 둔 휴대폰을 꺼내지 않고, 시간이 뭉텅 제멋대로 사라지게 두었다.


  마지막 날은 목포에서 높고 긴 케이블카를 탔다. 한 칸에 여덟 명 정도가 탔는데, 우리 부부 외에는 7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분들이었다. 휘청, 승강장에서 떠난 케이블카가 위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악!”

  마지막에 타서 나란히 있지 못하고 마주 앉은 남편의 손을 꽉 잡았다. 

  “아이고, 아직도 무서운 갑다.”

  “우리 나이 되면 무서운 거 하나도 없다.”

  “야, 야, 내려오는 거 마주 온다. 빨리 찍어라.”

  내 옆에 앉았던 분이 일어나서 사진을 찍었다. 

  저기…… 앉아서 찍으시면 안 될까요, 란 말이 새어 나오지 않게 고개를 돌렸다. 아래쪽으로 멀리 바다가 보였다. 케이블카는 기둥에 다가갈 때마다 조금씩 덜컹거렸다. 

  초록불이 깜빡이는 횡단보도를 향해 뛰지 않고, 젊어 보이겠다는 마음도 사라져 가고, 강제로 정제된 탄수화물과도 이별했지만 아직 무서운 게 많다.      


  남편은 강진에서 청자 컵을, 나는 목포에서 함초소금과 햇양파 그리고 표고버섯을, 아이들을 위해서는 목포의 한 제과점에서 유명한 빵을 샀다. 이제 어디서든 목포나 강진이란 말이 들리면 그곳의 아는 골목 몇 군데를 떠올리며 다정하게 귀를 기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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