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다녀왔다. 처음 계획은 남편과 나만 가는 거였는데 아이들이 일정을 조정하겠다고 해서 방을 하나 더 얻었다. 올라오던 가을 태풍은 다행히 중국으로 진로를 바꿨지만 그 여파로 여행기간 내내 비 예보가 있었다. 가방을 싸며 나는 가져가려던 흰 바지와 긴 원피스 따위를 꺼내놓고 비올 때 입어도 좋을 옷으로 바꿔 넣었다.
제주에 도착한 첫날 저녁, 남편은 흑돼지를 먹고 나오다가 빗물이 흥건한 계단에서 미끄러졌다. 첫째는 여행 기간 내내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우리가 있는 동안 제주의 북동쪽은 비가 왔고 안개가 자욱했으며 남서쪽은 거짓말처럼 해가 쨍쨍했다. 바람은 고루 세게 불어서 내 우산은 몇 번이나 뒤집혔다. 비가 그쳐서 제주에서 산 귤우비와 우산을 차에 두고 내리면 얼마 안가 어김없이 소나기가 왔다.
듣던 대로 밥값은 좀 비쌌지만 다 맛있었다.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제주도의 빗소리와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자는 것도 좋았다. 실컷 늦잠을 잤고 일어난 후에도 침대에서 휴대폰을 보며 뒹굴뒹굴하다가 11시 즈음에 아이들과 만나 아점을 먹고 하루를 시작했다.
“아빠, 넘어진 건 괜찮아요?”
둘째 날 이른 점심을 먹으며 아이들이 물었다.
“응, 아무렇지도 않아. 넘어지는 순간 ‘워낙 민첩하게’ 난간을 꽉 잡아서 허리는 계단에 닿지도 않았어.”
남편이 굼뜬 액션을 선보이며 대답했다. 지난밤 남편은 근육 이완제와 쌍화탕을 먹고 잤다.
“너는 어때?”
내가 큰딸에게 물었다.
“아직 약간…….”
떠나는 날은 날씨가 아주 좋았다. 아이들은 제주에서 유명한 빵집 두 군데를 들러 내겐 그림의 떡인 빵을 잔뜩 샀다. 가져갔던 앨리스 먼로의 책은 가는 비행기와 오는 비행기에서만 조금 읽었다. 푹 쉬다 온 것 같은데 다녀와서 나는 촌스럽게 몸살이 났다.
며칠이 지났다. 제주에서 사 온 빵이 끄트머리만 조금 남았다.
그래도
그림 같은 섬 제주는 언제나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