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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연 Sep 14. 2022

안부를 묻다


  해가 저물 무렵 버스를 탔다. 빈자리에 앉아서 서서히 내려앉는 어둠과 환하게 불을 밝힌 거리를 바라보았다.      


  “여보세요! ……나예요.”

  뒷자리에서 구멍이 숭숭 뚫린 것처럼 컬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화 중인 것 같았다.

  “……”

  “저녁은 드셨어요?”

  “……”

  “네, 잘하셨어요. 약은요?”

  “……”

  “개구……, 아니 저한테 구라 치시는 건 아니시죠?”     


  하차 벨을 누르고 일어서며 보니 뒷자리에 흰머리의 깔끔한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노인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 모습 너머의 어린아이를 상상하곤 한다. 시치미를 떼고 앉아 있지만 순간적으로 똘똘한 개구쟁이가 떠올랐다.      


  요즘 나는 자주 내 안의 어린 소녀에게 안부를 묻고 가만히 대답을 기다린다.

  “괜찮아? 조금이라도 속상하면 말해. 무조건 네 편이 되어줄게.”

  이렇게 혼잣말을 한다.

  때로는 팔을 쓸어내리며 “난 너를 믿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 있는 문제가 사라지면 행복할 거야, 따위의 말은 개구라다. 아침에 눈을 뜨고 새로운 하루를 선물 받았다면, 순간순간 그냥 사소하게 행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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