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나와 남편은 동생과 아버지를 만나 밖에서 이른 저녁을 먹은 후 과일을 사서 아버지 집으로 갔다. 그날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엄마의 생신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동안 내가 우겨서 사던 케이크를 생략했고, 엄마 이야기를 더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아릿한 마음을 공유하고 있었다.
남편은 거실 한구석에 놓인 안마의자에 앉아 있고, 우리는 티브이를 틀고 채널을 바꾸다가 지구가 1초에 30km로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속도를 못 느끼지?”
내가 물었다.
“지하철 안에 타고 있을 때도 그렇잖아. 달리는 건 알지만 속도를 고스란히 느끼지 않으니까, 나름 편안하게 졸기도 하고 휴대폰도 보고…….”
동생이 말했다.
“어휴, 난 저 사람이 싫더라.”
막 돌린 채널에 나온 연예인 A를 보고 아버지가 말했다.
“어, 나도 A 싫어하는데. B도 별로고.”“나도 나도.”나와 동생이 연달아 대답했다.
“너희들도 그래! 자네는?”
싱긋 웃으며 아버지가 남편에게 물었다.
“저도 그래요.”
남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은 각자 달랐지만, 우리는 왠지 살짝 안심하며 하나의 껍질 속에 든 땅콩처럼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포도랑 무화과 닦아주세요.”
동생이 말했다.
86세의 아버지가 몸을 일으켜 냉장고를 열고 사 왔던 과일을 찾았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아버지는 딸기나 포도는 물론이고 사과도 배도 참외도 수박도 항상 뽀드득 찬물에 씻어주었다. 깎고 자르는 건 엄마에 이어 나와 동생이 했다.
“어, 무화과네. 아빠, 무화과.”
아버지 집에서 가져온 무화과를 본 둘째가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이 잘 익은 무화과를 골라 조심스럽게 씻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