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서연 Oct 08. 2022

가을이 시작되고


  창밖으로 가끔 흐린 하늘을 내다보다가 오후 네 시가 훌쩍 넘어 산책을 나갔다. 공원의 나무들은 조금씩 노란빛을 띠기 시작했다. 이른 낙엽도 조금 떨어졌다. 서늘했다. 겉옷의 지퍼를 올리고 스카프를 꺼내 목에 두른 다음 공원은 크게 두 바퀴 돌았다.      

 

  오후 여섯 시 무렵의 작은 카페는 텅 비어 있었다. 며칠 동안, 낮에는 실내와 야외 좌석 모두 사람들로 가득해서 그냥 지나쳤었다. 카페인이 적은 재스민 차를 주문하고 좋아하는 자리에 앉았다. 맑은 연두색으로 우러나던 차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투명한 갈색으로 변했다. 향이 좋았다.      

  

  띠링, 문에 달린 작은 종이 울렸고 누군가가 들어와서 원두를 주문했다. 

  “아, 0000. 한 시간 정도 후에 오시면 가져가실 수 있어요.”

  내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님과 주인의 대화를 흘려들으며 따뜻한 차를 마시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었다. 삼분의 일을 읽고 나서 나는 그 책을 더 보는 걸 포기했다. 정말 내 타입이 아니었다. 전 같으면 그렇더라도 꾹 참고 끝까지 다 읽었는데……, 잘하는 일일까.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돌리는데 벽에 붙은 노트만 한 타원형의 거울 속에 내 모습이 비쳤다. 가을에 떨어지는 건 낙엽뿐이면 좋을 텐데, 머리카락도 기운도 덩달아 떨어지고 있다. 남은 차를 다 마셔갈 무렵, 원두를 주문했던 손님이 카페에 다녀갔다. 나는 가방을 들고 찻잔을 카운터에 가져다 놓았다.      

  

  “저 이거, 좀 전에 오셨던 손님이 잔뜩 주셔서……. 아직 따끈해요.”

  주인이 말하며 찐 밤 다섯 알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얼결에 받아 들며 내가 말했다. 

  집까지 짧은 길을 걷는 동안 알밤이 든 주머니가 따뜻했다. 떨어졌던 마음을 밤이나 도토리처럼 주워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작가의 이전글 오랜만에 제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