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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연 May 29. 2023

파란 의자



  얼마 전,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를 시작했다. 기간은 한 달. 오래된 아파트여서 단지 안의 모든 엘리베이터를 순차적으로 바꾸는데 우리 차례가 된 것이다. 주민들은 모두 계단을 이용해야 했고, 택배와 배달도 모두 1층 우편함 앞에 두고 갔다. 할 수 없이 과일이나 김치, 세제처럼 무거운 건 들고 올라갈 수 있는 만큼만 샀다. 1층에서 휴대폰이나 지갑을 안 가져온 걸 발견했을 때의 망연함이란. 씩씩대며 기어코 올라가 도어록을 누르고 문을 열면, “오늘은 웬일로 한 번에 나가나 했다.” 하며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사랑스러운 가족이 있고.      


  유달리 피곤했던 날, 공사 중인 걸 까맣게 잊고 공동현관 앞에 와서야 아, 엘리베이터! 하고 걸어 올라가다가 3층마다 하나씩 계단참에 놓인 파란 플라스틱 의자를 발견했다. 쳇, 이런 자잘한 배려에 쉽게 넘어갈쏘냐, 했지만 나는 사들고 오던 오이랑 양파, 음료수가 든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잠시 숨을 돌렸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얼마쯤 간격을 두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어느 날 저녁, 나 역시 택배와 우편물을 찾는 척 앞의 두 사람이 계단을 오른 후 조금 시간이 지나 계단을 올랐다. 

  “아아흐!”

  위쪽 어딘가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아흐윽!”

  얼마 후 두 번째 사람도 비슷한 소리를 냈다. 

  “아아아학!”

  쿡쿡 웃으며 계단을 오르던 나도 6층에 이르자 예외 없이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일주일 후면 다시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있다. 겨우 생길랑 말랑하던 근육이 사라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불편함이 환기시켰던 일상의 소중함은 사라지겠지. 파란 플라스틱 의자의 소박한 배려에 살짝 보드라워졌던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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