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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연 May 22. 2024

그처럼 단순한

  모임이 끝나고 커피를 마시러 갔다. 보통 바쁜 사람은 먼저 가고, 네 명 정도가 남아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는데 이번엔 아홉 명이나 됐다. 나는 광화문에서 늘 가던 커피숍이 아닌 블루보틀로 사람들을 데려갔다. 마침 자리에 여유가 있어서 테이블 세 개를 붙이고 앉았다. 블랙커피도 라테도 모두 맛있었다. 

  창밖에 바람이 불었다. 가로수들이 끊임없이 가지를 흔들었고 푸른 나뭇잎들이 팔랑팔랑 나부꼈다. 관광객들이 느릿느릿 지나다니는 오후를 넘어 햇빛이 스러지고 어스름이 깔릴 무렵엔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무리 지어 지나갔다. 

  우리는 얼마 전에 그리스에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고대의 신전인 아크로폴리스도 볼만했지만 일반인들의 장소인 아고라에 지어졌다는 옛 도서관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다는 것에 감탄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인 카잔차키스의 무덤을 찾아갔을 때 누군가 헛개수 페트병에 꽃을 꽂아둔 것을 봤다는 말도 들었다. 다음은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 


  나는 욕심이 없어

  나는 두려움도 없어

  그러니 자유롭지


  곧 동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지인은 날짜를 묻는 물음에 부끄럽다고 답했다. 

  "왜요?"

  "뭐가요?"

  "몰라. 그냥 다 부끄러워."

  그리스에 다녀온 사람도 누군가 묻기 전에는 여행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해외여행을 갈 사람도 다녀온 사람도 왠지 부끄러워하는 분위기. 듣는 사람들도 아, 부럽다, 부러워,라고 말했지만 저마다 부러운 부분도 다르고 취향도 달라서 모두가 동경하는 걸 동경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린 모두 좀 삐딱해서 그다지 공들이지 않고도 대세에서 비켜난 시선으로 세상을 해석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던 누군가가 쿠키와 작은 케이크 몇 개를 샀다. 밖은 어두워졌고, 맑은 유리창 안 환한 공간에서 달고 부드러운 것을 나눠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행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행복했다. 

  그처럼 단순하고 잠깐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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