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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하 Apr 07. 2021

삶에 띄우는 연서

-앨리스 먼로의 소설집 『디어 라이프』를 읽고

  가끔 맥락도 없이 과거 어느 순간이 떠오를 때가 있다. 고요히 흐르던 시간이 불쑥 끼어든 어떤 장면 때문에 일시적으로 멈춘다. 일상 속에 편편이 끼어드는 기억을 되짚어가며 그때는 보지 못했던 풍경에 눈길이 머물기도 하고, 그때와는 전혀 다른 해석을 덧붙여가며 그 의미를 곱씹어 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시간과 함께 숙성된 향을 맡는다. 이처럼 끊임없이 되살린 기억은 평생 잊히지 않고 언제고 떠올라 생생히 재생될 것이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만 온전히 존재하는 셈이다.



 


  앨리스 먼로의 소설 『디어 라이프』에 실린 작품들은 모두 우리의 기억과 맞닿은 생의 진실을 다루고 있다. 그 속에선 늘 어떤 사건이 일어나지만, 먼로는 그것의 진행 과정을 낱낱이 밝히거나 실체를 드러내는 데 온힘을 쏟지 않는다. 다만 그 일이 인물에게 남긴 잔상을 묵묵히 보여 주거나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실 이면에 흐르는 진실을 고집스레 바라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고집스러움에 배어 있는 그녀의 겸손한 태도이다. 그녀는 결코 단언하거나 쉽사리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본 것을, 느낀 것을 담담히 그려가며 비워둔 공간을 통해서도 말을 걸어온다.    



  웬만한 건 다 쉽고 빠르게 판단하는 이 시대의 문법에 익숙해진 탓일까. 무엇인가를 함부로 이해했다고 말하지 않고 삼가는 마음가짐으로 대하는 이 책을 만났을 때 적잖이 놀랐다. 감히 속단하지 않으며 아이러니한 삶의 속성들을 파헤쳐 번뜩이는 순간을 발라내는 그 솜씨가 낯설면서도 매혹적이었다고 할까. 불가해한 일들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들여다보는 것,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 참혹하고 때론 냉정하기까지 한 생을 냉소하기보단 치열하게 응시하는 것. 먼로는 이런 강인한 태도로 어떤 빛나는 순간을 길어 올린다. 그 결정적인 순간의 아름다움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자갈」을 읽고 잠든 새벽이었다. 꿈을 꿨다. 마음 한 쪽에 늘 각별하게 여기고 있던 언니를 만났다. 그녀는 큰 수술을 앞두고 4년 넘게 다닌 직장을 정리한 상태였다. 우리는 스무 살 언저리에 나눴던 추억의 한 장면 속에서 몹시 행복해하고 있었다. 밝고 따스한 빛이 우릴 감쌌다. 그러다 뜬금없이 장면이 전환됐다. 우리는 푸르른 바다에 있었다. 그녀는 꼭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엎드린 자세로 수면 위에 떠올랐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곤 악악대며 오열하다 쓰러졌다. 그리고 눈을 떴다. 뺨을 만져보니 손바닥 가득 눈물이 묻어나왔다. 온몸의 힘이 다 풀렸다. 그 끔찍한 일이 꿈이란 걸 깨달았을 때도 왠지 두려워 그녀에게 바로 연락하지 못했다. 며칠 뒤 연락이 닿았고, 다행히도 그녀는 잘 지내고 있었다. 그제야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언니를 매우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언니가 언제나 건강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평소 평범하게 주고받던 안부 인사가 절실한 메시지로 뒤바뀐 기분이었다. 



  사실 그때껏 한 번도 그 언니를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새벽의 그 선명한 꿈은 마치 작정한 듯 내 손목을 잡고 감당하지 못할 어떤 순간에 나를 담그고 잔인하게 굴었다. 아마도 「자갈」의 마지막 장면이 내내 마음에 남아 꿈에도 영향을 준 게 아닐까 한다. ‘나’는 ‘그’에게 중요한 건 행복해지는 것이며 모든 걸 받아들이면 비극은 사라지거나 가벼워진다는 말을 듣는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 ‘이제, 안녕.’이라고 말한다. 소설은 끝날 것 같은 지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나’는 ‘그’가 어떤 의미로 그 말을 했는지 알고, 그러는 것이 정말로 옳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의 마음속에서 언니가 여전히 물을 향해 달려가 의기양양하게 자기 몸을 던지고, ‘나’는 여전히 그 기억에 붙들려 있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기를 기다리면서, 첨벙 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리면서.’



  이 장면을 거듭 읽다 보면 먼로의 글이 따뜻하다는 건 어쩐지 좀 불충분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부터 펼쳐놓은 에피소드들과 감정들을 뭉근하게 끓여내는 과정 속에서 차가운 기운과 뜨거운 기운을 시시각각 오간다. 한 번이라도 자신의 인생에서 상처를 외면하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떠올리는 것이 너무 괴로워 도망가고 싶은 일을 겪었을 때, 한시라도 그때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면 모든 걸 걸고서라도 그러고 싶을 때,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그 시간에 몸을 던져 진실을 보는 것이 얼마나 아프고 지난한 일인지. 먼로는 평온한 일상 속에서 아무 맥락도 없이 끼어드는 과거의 한 장면에 붙들리는 순간을 피하지 않는다. 그런 순간 움츠러들지 않으려 애쓸수록 크나큰 고통을 느낀다 해도 똑똑히 바라본다. 내가 그녀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읽는 건 이처럼 삶에 대한 애착을 바탕에 둔 용기이다.  



  책을 읽으며 여러 번 도중에 멈추고 숨을 골라야 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 속에 드러나는 섬세한 면면들의 파동이 강했기 때문이다. 작품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갈수록 그녀가 인생에 대해, 인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려고 자신과 주변을 셈세하게 바라보고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거란 믿음이 생겼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 「아문센」에선 세월을 건너뛰어 옛사랑과 우연히 만나는 순간이 나온다. ‘그’가 한쪽 눈을 더 크게 뜬 그 순간 ‘나’가 본 섬광 같은 번쩍임. 그것은 내가 먼로 소설을 읽으며 발견한 것과 닿아 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사랑에 관한 한 정말로 변하는 것은 없다’고. 



  먼로의 모든 소설은 작품의 끝부분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별 뜻 없이 읽었던 조각조각들이 마지막에 가서 모두 제자리를 찾아가며 전체적인 그림이 띄워지기 때문이다. 그 그림과 마주하면 잠시 멍해지고 한동안 아릿해진다. 끝에 다다라서야 드러나는 풍경은 그때까지 읽어가며 으레 그럴 것이라고 짐작해왔던 부분을 보기 좋게 배반한다. ‘그녀는 케이티의 손을 놓지 않으려 했지만 바로 그 순간 아이는 그녀에게서 떨어지며 손을 놓았다. 그녀는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다음에 다가올 일을 기다렸다.’라는「일본에 가 닿기를」의 마지막 부분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강렬함은 오래도록 나를 쥐고 흔들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이 된 「디어 라이프」의 끝은 이렇게 맺어진다. 지금도 이따금 이 문장들을 떠올린다. 언제나 그렇듯 가장 유약한 언어가 가장 단단하게 나를 지탱해 준다.



  한동안『디어 라이프』의 여운에 먹먹해진 상태로 생각했다. 우리는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고. 그리고 떠올렸다. 내게 남은 장면들, 순간들, 흐르는 시간을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어떤 기억들을. 우리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만 온전히 존재하는 거라면 내가 잊히는 것보다 내가 잊는 것이 더 서글픈 일이다. 한때는 피하고 싶었던 기억들, 되새기기 두려웠던 순간들조차 잊지 않고 모두 기억하고 싶다. 껴안는 쪽이 더 아플지라도. 삶은 우리에게 순순히 호의를 베풀지 않지만, 있는 힘껏 그것에 다가가려고 할 때 조금이나마 닿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때가 온다면 이 책의 제목처럼 삶을 향한 아주 긴 연서를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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