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산타 할아버지가 364일을 쉬는지 알았다.
크리스마스 시즌 이후에, 난 왜 산타가 1년에 딱 하루만 일하는지 깨달았다. 그냥 납득이 갔다. 그리고 산타가 없는 사실에 안도했다. 이 지구가 아이들에게 무료로 선물을 주고 싶어 하는 나이 든 어르신을 매해마다 정기적으로 과로시키는 잔인한 곳은 아닌 것 같아서.
크리스마스, 서비스직 3대 명절 중 하나.
(출처:unsplash)'이거 쏟았다간 해고로 안 끝난다' 작은 초록색 끌차 위에 예약으로 들어온 48개의 홀케이크를 올린다. 생크림이 묻은 빵은 이렇게 무겁구나. 부들부들 팔이 떨려왔다. '후-' 심호흡 한 번 하고, 개당 5만 원에 가까운 무서운 빵 덩어리들을 다시 커다란 냉장고 차에 조심스럽게 쌓아 올린다. 이것도 내가 미처 몰랐던 '바리스타'의 업무 중 하나였을까?
아, 딴생각하지 마. 이런 거 다 따지면 일 못 해.
머리를 비우는 걸 시작으로 매장의 3대 빅 이벤트 중 하나인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됐다.
베이커리는 어디까지나 사이드인 브랜드의 카페였는데, 12월이 되자 완전히 빵집으로 주객전도 됐다.
바리스타이자, 베이커리 직원이자.. 아, 그냥 잡무 해요
그래. 카페에서 근무하게 되더라도, 정말 문자 그대로 '커피'만 만들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근데, 이건 좀 아니지 않아? 예약한 손님의 이름이 적힌 케이크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당일이 제일 바쁠 줄 알았는데, 전후 2주가 가장 바빴다. 우리 매장을 방문하는 서울의 크고 작은 회사의 팀장, 부장님들은(일할 땐 어떤 모습인진 모르겠으나) 직원들을 아끼는 분들 같았다. 예약 케이크 대부분이 법인카드가 아닌 개인 카드로, 부서 내 사원들 앞으로 준비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빨리 그 케이크를 찾아서 우리 고객님들의 직원 내리사랑을 이뤄줘야만 했다. 케이크만 따로 모아놓은 커다란 냉장고 3개를 다 뒤져서 간신히 케이크를 고객님께 픽업했다. 그렇게 한숨 돌리려던 찰나, "죄송한데, 여기 커피 언제 나와요?" "아, 죄송합니다. 바로 준비해 드릴게요" 다시 바리스타로써의 업무가 시작됐다. 음료 제조가 끝나면 케이크 예약/픽업도 나가고, 테이블 정리, 주차 할인 넣어주기- 등의 업무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걸 다 하면 사무업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야, 나 카페 취직했어" 연말이 다가오자 서로 바빠 연락을 못하던 친구들 몇 명과 연락이 닿았다.
"오, 바리스타 된 거야?" 아-. 뭐라 말하지.
"나? 잡무 하는데"
공휴일은 공복으로, 휴게 없이 일하는 날인가?
모든 직원이 출근하는 크리스마스 당일이 됐다. 그래, 이런 날에는 인간적으로 직원이 많아야지. 바쁘더라도 수월할 거라 생각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직원들이 순서대로 휴게 시간을 다녀왔다. 정말이지 너무 바빠서 내 휴게시간이 오면 밥은 둘째치고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후 5시.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도 내 휴게 시간이 오지 않았다.
(출처:unsplash)입사 초반, 내 사무업무는 일주일 중에 하루, 한가할 때 해도 문제없는 그런 업무였다. 하지만 내 윗사람들의 업무는 중요하고 바빴다. 그 바쁜 크리스마스 날, 근무 시간 안에 예외 없이 사무 업무를 해야 했으니, 자동적으로 사무업무가 적은 내가 그 외의 업무(음료 제조, 고객응대 등등..)를 모두 맡아서 해야 했다. 정말이지, 이 날은 너무 바빴다. 여기저기서 나를 불러대며 하던 업무를 내게 맡기고 사무 업무를 처리하러 갔다. '저 이제 쉬러 가도 되나요?'라는 질문 한 마디 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빴다. 물 한 잔 제대로 마시지도 못 한채 업무가 계속 진행됐다. 저녁시간이 다가올 때쯤, 고용 노동청에 신고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아, 아닌가? 원래 공휴일은 이렇게 공복으로, 휴게 없이 일하는 날인가? 싶을 때쯤, "매니저님, 혹시 이 친구 휴게 보내셨나요?" 상황이 종료됐다.
사회 초년생이라 미련했나 보죠.
매니저님은 내게 연신 미안하다며 휴게시간을 30분 더 붙여서 재빨리 식당으로 보냈다. 와, 밥이다. 주문한 지 5분도 안 돼서 밥이 나왔다. 크리스마스에 우리만 일하는 건 아니지. 근데 왜 이렇게 억울하지. 밥을 넣자 배고파서 쉬고 있던 뇌가 활발하게 푸념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냥 말할 걸 그랬나. 나 밥 먹으러 가야 한다고. 누구 눈치를 봤길래, 정당한 휴게시간도 요구하지 않았을까. 난 그런 거 당당하게 말할 줄 아는 성격인 줄 알았는데. 한편으론 재밌었다. 뭔가, 사회 구성원이 된 것 같아서. 오늘 근무시간은 총 10시간. 앞으로 퇴근까지 5시간 남았는데, 그때까지 이 밥 한 끼로 버틸 수 있으려나. 집에 가서 배달 음식 시켜먹지 뭐.
밥을 먹고 1평도 안 되는 휴게공간으로 돌아와 잠깐 눈을 붙였다. 매장이 금방 시끄러워졌다. 퇴근길에 매장에 들려 케이크를 픽업하러 또 한 차례 손님이 몰린 거겠지. 누워서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였다. 아, 그러거나 말거나. 난 쉴 거야. 사무실 한편에 작게 자리 잡은 이 휴게 공간에게 방음까지 바라는 건 사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