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잘 버리는 바리스타

외식경영 전공자의 외식업계 퇴사기 [카페, 2편]

by 투투

나는 쓰레기 잘 버리는 바리스타가 되고 싶었

카페에 출근하게 된 나는 한동안 내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다. 잠깐, 나 바리스타가 된 건가? 카페에 취직하면 다 바리스타인가? 나는 스스로가 의심스러웠지만 근무표에 나는 명확히 '바리스타'로 적혀있었다.


(출처:unsplash)

픽업 이후 제일 먼저 배웠던 업무(?)는 '쓰레기 버리기'. 내 몸보다 커다란 100L 쓰레기봉투 4개와 과일 껍질, 생크림이 무겁게 엉켜진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초록색 작은 끌차에 퍼즐 맞추듯 잘 쌓아 올린다. 온갖 영수증이 엉켜있는 일반 쓰레기는 맨 아래, 그 위로 플라스틱, 공간이 된다면 종이 박스를 싣고 음식물 쓰레기는 이 모든 것들의 맨 위에 조심스럽게 올린다. 유리가 담긴 봉지는 어쩔 수 없이 다른 한 손으로 든다. 그렇게 나는 뚜껑 닫기 다음으로 쓰레기 버리는 법을 배웠다. "다녀오겠습니다" 피크가 끝난 점심 시간대엔 어김없이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 "죄송합니다, 지나가겠습니다"

엘리베이터 앞 빼곡히 줄 서 있는 직장인들 사이로 나는 이 커다란 쓰레기 끌차를 사람들의 옷에 스치지 않도록, 밖으로 잘 끌고 나가야만 했다. 연신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를 내뱉으며 1분도 채 되지 않는 쓰레기 장까지 진땀을 빼며 걸었다. 한동안은 일이 미숙해 버리는 시간이 한참 걸렸다. 정리도 미숙해서 늘 100L의 큰 쓰레기를 묶을 땐 다른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여느 때처럼 도움을 받아 쓰레기를 버리던 나는 생각했다. 혼자서도 쓰레기를 잘 버리는, 바리스타가 되고 싶다고. 목표가 너무 우스운가? 그때는 그랬다. 얼른 혼자서 1인분을 해내고 싶었다.


카페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면 다 바리스타인가?

나는 외식 관련 자격증 8개를 보유하고 있다. '바리스타'라는 직업에 걸맞은 자격증도 2개나 보유하고 있긴 했지만 주 전공은 요리였고, 여전히 쓴 건 뱉고 달달한 것만 삼키는 '어린애 입맛'이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던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퇴사하던 그날까지, 나는 "쓴 맛" 그 자체인 커피에 정을 못 붙였다.

(출처:unsplash)

한창 근무할 때 직업이 뭐냐는 지인들에게 나는 1차로 '프랜차이즈 카페에 근무한다'라고 소개했고 좀 더 정확히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면 그제야 '바리스타'라고 소개했다. 그러면 대부분 멋진 커피 머신을 사용하며 커피 위에 예쁜 그림을 그리고, 처음 들어보는 낯선 원두 이름을 줄줄 말하면서 커피 맛이 이러쿵저러쿵 설명할 줄 아는 멋진 사람을 떠올리더라. 하지만 내가 한 건 그냥 카페 아르바이트생이랑 다를 게 없는 업무였다. 바쁜 피크 타임이 오면 음료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힘들었다. 원두의 원산 지니, 맛이니 그런 것보다는 어플을 통해 계속해서 들어오는 배달 주문을 더 신경 써야 했다. 어째 주객전도가 된 기분이었다. 커피의 맛보다는 쓰레기 버리기, 주문 전화받기, 계산하기가 더 중요했으니까. 나는 퇴근 때마다 내 근무표를 보며 생각했다. 커피 맛도 모르는 내가, 바리스타 흉내를 내도 되는 걸까? 바리스타가 맞나?


자격증은 있는데, 실력은 없어요

입사하고 한 달, 두 달이 되었을까. 나는 우리 매장을 방문해서 음료를 구매하는 고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음료에 이 정도 값을 지불하게 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입사 초반 내 음료는 엉망이었다. 그래서 나는 매장에서 '자격증'이 무려 '8개'가, 심지어 커피 관련 자격증은 '2개'나 있다는 것을 숨겼다. 자격증이 실무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하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못할 줄은 몰랐다.


바닐라 라떼, 카페 라떼, 모카 라떼,

라떼의 늪

(출처: unspalsh)

흔히 카페에서 따듯한 라떼 한 잔을 주문하면 갈색의 폭신 폭신한 거품 표면 위에 하얀 우유로 그려진 예쁜 그림이 둥실 떠 있는 음료를 받아볼 수 있다.

커피의 표면 위에 우유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라떼 아트'라고 부른다. 이 라떼 아트를 예쁘게 하려면

'우유 스티밍(milk steaming)'을 잘해야 한다.

스티밍은 간단하다. 작은 비커처럼 생긴 '스팀 피쳐'의 눈금에 맞춰 찬 우유를 부어준다. 그리고 커피 머신에 있는 기다랗고 뜨거운 스팀 완드를 잘 닦은 뒤 세게 열어 고여있던 공기를 빼주고 스팀 피쳐에 살짝 넣어 2~3초 안에 고운 입자의 거품을 내준다. 거품이 잘 나온 우유를 에스프레소 샷이 담긴 컵에 부어주며 그림을 그린다. 이 모든 과정은 1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글로 써보니 전혀 어려울 것 없는 과정 같지만, 이 우유 스티밍이 정말 제멋대로다.

(출처: unsplash)

매니저님은 항상 라떼 주문이 들어오면 픽업 전에 일일이 음료 뚜껑을 다 열고 음료 품질을 검사했다.

라떼 메뉴가 컴플레인이 제일 잘 들어오는 메뉴이기도 했고, 어쨌든 브랜드의 이름에 걸맞은 품질의 음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운영 방침 때문이었다. 사실 어떤 분야든 자격증이, 아니 운전면허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이게 있다고 해서 내가 엄청난 실력자가 아니란 것을. 내가 느끼기에 자격증은 그냥 '아~이거 뭔 지 조금은 알아요'의 '조금'을 증명해주는 작은 수단의 단위일 뿐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이후로 실무에서 처음 만지게 된 스팀 피쳐와 머신. 낯설기 그지없었다. 당연히 난 한동안 만들어내는 모든 라떼를 다 빠꾸(?) 당했다(불통과했다는 말이다).

그래, 내가 봐도 이건 팔면 안 된다. 한동안은 의욕적으로 우유 스티밍을 잘해보려 했으나, 수많은 불통에 금방 흥미가 꺾여버렸고, 라떼 주문이 들어오면 긴장부터 했다. 2018년도에 내가 응시했던 바리스타 2급 자격증 기준으로, 라떼 거품은 1.5 ~2cm쯤이었던 것 같다. 이것보다 우유 거품이 적으면 라떼가 기분 나쁜 물 우유처럼 나왔고 거품이 두꺼우면 손으로 들었을 때 '와 이거 진짜 거품이네-'라는 생각이 드는 가벼운 음료가 나온다. 내 손은 한동안 정확히 물 라떼, 거품 가득 라떼만 엄청 만들어댔다. 하필이면 겨울에 입사해서 하루에도 라떼만 50잔 넘게 만든 것 같다. 그놈의 라떼. 난 한동안 라떼는 꼴도 보기 싫어했다.


하루의 마무리는 무조건 쓰레기장

(출처:unsplash)

날씨가 추워지고 연말이 다가와 가족, 회사 사람들과의 외식 후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시간이 많아지던 12월을 앞둔 겨울. 매장이 바쁜 만큼 쓰레기도 2배가 되었다. 쓰레기를 하루에 2번 버려야 할 정도로, 쓰레기가 많았다. 점심 피크 때 다 버리지 못한 쓰레기를 마저 버리러 나가면 밖은 까만 밤이 되어 있었다. 야외 주차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차들도 다 어디론가 가버렸고, 담배연기가 구름처럼 올라오던 야외 흡연실도 맑았다. 너무 고요해서 쓰레기를 싣고 가는 초록 끌차의 바퀴소리가 큰 트럭 소리처럼 들렸다. 이때는 잔머리가 조금 늘어, 쓰레기를 천천-히 버리고 바깥공기를 30초 정도, 마음껏 마셨다. 그리고 잠깐의 사색. 이 겨울이 끝날 때쯤이면, 난 혼자서 쓰레기를 잘 버리고 있을까? 라떼 아트는 좀 그리고 있을까. 계절이 바뀌고 난 후에도 이곳, 이 자리에 내가 있을까? 답을 들을 생각이 없는, 의미 없는 물음표를 쓰레기장에 잔뜩 쏟아 버리고 다시 머리를 정지시킨다. 생각이 많으면 일을 할 수 없으니. 그러고 나면 긴 하루가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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